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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독서

<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2024.08.28. ~ 2024.08.28. (1)

등대로
To The Lighthouse

버지니아 울프 저
최애리 역
열린책들 출판


의식의 흐름'이라는 실험적인 서술 기법을 발전시키며 20세기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이 작품은 등대에 가고 싶어 하는 한 아이의 바람으로 시작한다. 부정적인 말들을 무심하게 내뱉는 아버지와 아이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자상하게 달래는 어머니, 울프는 바닷가의 낡은 저택을 배경으로 한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그려 간다.

인물들의 머릿속에 무수히 각인되는 인상과 순간순간 떠오르는 철학적 깨달음은 '등대를 향한 여정'을 따라 유려한 문장들로 엮인다. 작가 자신이 '평생 어느 때보다도 쉽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으며, '내 영혼에 열린 어떤 열매에도 이제 손이 닿을 것 같다'고 했을 만큼, <등대로>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의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울프는 또한 <등대로>를 통해 자신의 유년 시절과 부모의 삶을 재현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그녀는 오랜 기간 부모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힌 채 살아왔지만 이 작품에서 그들의 온전한 초상을 그려 냄으로써 그 기억들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 버릴 수 있었노라고 말한다. 주인공 램지 부인과 램지 씨의 모습을 통해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는 그녀는 그들을 관찰하는 릴리에게 자신을 투영해 작품을 쓰는 도정 그 자체를 또 하나의 등대행으로 승화시킨다.


손수레, 잔디 깎는 기계, 포플러 나무들이 내는 소리, 비 오기 전에 희어지는 잎사귀들, 깍깍대는 까마귀들, 탁탁 벽에 부딪히는 빗자루, 사락거리는 옷자락 ─ 그 모든 것이 그의 마음속에는 그처럼 뚜렷한 빛깔로 분명히 새겨져서, 그는 이미 자기만의 암호를, 자기만의 은밀한 언어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높직한 이마와 예리하고 푸른 눈, 흠잡을 데 없이 솔직하고 순수하며 인간의 약점을 보면 흠칫 찌푸려지는 눈매는 준엄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엄격한 인상을 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아이가 냉장고 사진 둘레를 말끔하게 오려 내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가 담비를 두른 붉은 법복 차림으로 판사석에 앉거나 국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뭔가 엄숙하고 중대한 업무를 지휘하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는 틀린 말을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결코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며, 그 누구의 기분이나 형편을 맞추기 위해서도 언짢은 말을 돌려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물며 자기 자식들, 자기 몸에서 난 자식들이라면 마땅히 어린 시절부터 인생이란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만 했다. 사실들은 내 멋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희망들이 무산되고 빈약한 조각배들이 암흑 속으로 가라앉아 가는 저 이상향으로의 여행이란(이 대목에서 램지 씨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작고 푸른 눈을 가늘게 뜨고 수평선을 지긋이 바라보곤 했다) 모든 용기와 진실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좀 더 골똘히 생각에 잠긴 것은 빈부의 문제, 여기서나 런던에서나 날이면 날마다 자신이 눈으로 보는 일들에 대해서였다. 팔에 가방을 끼고 과부들이나 고생하는 아내들을 직접 방문할 때면, 급료와 지출, 고용과 실업 상태 등을 물어 공책에 따로 줄을 쳐 만든 칸에 가지런히 적어 넣으면서, 자기가 그저 개인적인 분노를 무마하고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선을 베푸는 한낱 아녀자가 아니라 ─ 그런 지적 훈련을 받지 못한 그녀로서는 감탄해 마지않는 ─ 사회 문제를 밝혀내는 연구자가 되기를 소망했다.

내일 등대에 갈 수 있을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램지 씨는 성내듯 잘라 말했다.
어떻게 알아요? 그녀는 물었다. 바람이 바뀌기도 하잖아요.    
그녀가 한 말의 어처구니없는 불합리함이, 여자들이 하는 생각의 어리석음이 그를 화나게 했다. 그는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왔고, 박살이 나서 떨고 있는데, 그런데 그녀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그의 자식들로 하여금 불가능한 것에 희망을 걸게 만드는, 요컨대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돌층계에 발을 굴렀다. 「이런, 빌어먹을!」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뭐라 했기에? 그저 내일 날씨가 좋을 수도 있다고 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기온이 이렇게 떨어지고 바람이 정서풍일 때는 아니지.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배려가 그토록 놀랍게 결여된 채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 문명의 엷은 베일을 그토록 제멋대로 거칠게 찢어 버린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인간다운 예의를 무참히 짓밟는 것으로 여겨져서,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멍멍하고 눈앞이 아득한 채로, 마치 그 우툴두툴한 우박이 퍼붓는 것이나, 구정물을 덮어쓰는 것을 감내하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만일 그녀가 막연히 짐작하는 바, 그림이 대상에 대한 찬사가 되어야 한다면, 그녀의 찬사는 그런 형태를 띠었다. 어머니와 아이는 불경한 느낌 없이도 하나의 그림자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었다. 여기 빛이 있으니 저기는 그림자가 져야 한다는 식으로.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며 흥미를 보였다. 전적으로 진지하게 과학적인 입장에서 받아들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가 지금껏 그림에 대해 생각했던 것은 전혀 반대라고 그는 설명했다.

도대체 왜 아이들은 자라서 이 모든 걸 잃어야 하는 것일까? 제임스는 그녀의 아이들 중에 가장 예민하고 재주가 많았다. 하지만 다들 제각기 뛰어난 데가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프루는 사람들에게 천사처럼 상냥했고, 요즘은 가끔, 특히 저녁에 보면 너무 아름다워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앤드루는 ─ 그녀의 남편조차도 그가 수학에 대단한 재능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낸시와 로저는 둘 다 망아지처럼 온종일 들판을 쏘다니는 나이였고, 로즈는 입이 너무 크긴 하지만 손재주가 놀라웠다. 변장 놀이를 할 때면 로즈가 의상을 만들었고, 그 밖에도 뭐든지 만들었다. 식탁을 차리고 꽃을 꽂고 하는 일들을 가장 좋아했다. 재스퍼가 새들을 쏘는 건 마땅치 않지만, 그것도 한때이겠지. 다들 그러면서 크는 법이다. 하지만 도대체 왜, 하고 그녀는 제임스의 머리 위에 턱을 지긋이 누르며 자문했다. 왜들 그렇게 빨리 자라는 거지? 왜 학교에 가야 하는 거지? 그녀는 언제까지나 어린아이가 있었으면 했다. 아기를 품 안에 안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러면 또 사람들은 그녀가 폭군이라느니 지배적이라느니 권위적이라느니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이의 머리칼에 입술을 대어 보며, 이 아이도 다시는 이렇게 행복하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다 멈칫했다.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고 남편이 얼마나 화냈던가를 상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지금이 장차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행복할 것이었다.

릴리는 그에게 당신은 평범하지 않아요, 뱅크스 씨, 하고 아첨의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는 아첨을 좋아하지 않았고(대개의 남자들은 좋아하는데,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자기가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 조금 창피해져서 그가 어쩌면 자기가 한 말은 그림에는 적용되지 않으리라고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커피라고 부르는 액체가 있지요.」 뱅크스 씨가 말했다.
「아, 커피 말인가요!」 램지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는(릴리는 부인이 아주 격앙되어 열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짜 버터와 깨끗한 우유가 더 문제라는 것이었다. 열렬히, 웅변적으로, 그녀는 영국 낙농 체계의 부당함을 묘사하고, 우유가 어떤 상태로 집집마다 배달되는가를 이야기했으며, 자신은 그 문제를 상당히 알아보았다며 자신의 비판을 입증하려 했다. 그러자 식탁 여기저기서, 가운데쯤 앉은 앤드루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치 금작화 덤불에서 덤불로 불길이 옮겨붙듯이, 그녀의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고, 그녀의 남편도 웃었으며, 좌중의 놀림감이 된 그녀는 온 사방의 불길에 둘러싸여 깃발을 내리고 포대를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반격이라야 고작 뱅크스 씨에게 영국 대중의 편견을 공격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일례로 그 야유와 조롱을 가리켜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실은 종종걸음을 치거나 서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 모든 담소 후에 잠깐 조용히 서서, 한 가지, 정말 중요한 한 가지를 골라 따로 떼어 내고 모든 감정과 잡다한 군더더기를 추려 낸 다음 오롯이 눈앞에 들고 재판정으로 가져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곳에는 그녀가 그런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선임한 판사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것은 좋은지, 나쁜지, 옳은지, 그른지? 우리 모두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등. 그래서 그녀는 민타와 폴의 약혼이라는 사건의 충격에서 몸을 바로 하고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엉뚱하게도, 창밖의 느릅나무 가지들에 의지하여 자세를 유지했다. 그녀의 세계는 변하고 있는데, 나무들은 고요하기만 했다. 그 사건은 그녀에게 뭔가 움직이기 시작한 느낌을 주었다. 모든 것은 질서가 잡혀야 했다. 그녀는 이것도 바로잡고 저것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릅나무의 고요한 위엄과 바람에 가지들이 멋지게 솟구치는 것(마치 파도에 들린 뱃머리 같았다.

그리하여 모든 불이 꺼지고, 달도 지고, 가는 비가 지붕을 두들기면서, 거대한 어둠이 퍼붓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그런 홍수를, 넘쳐 나는 어둠을, 이겨 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어둠은 열쇠 구멍과 틈새로 기어들고, 창문의 블라인드 주위로 새어 들고, 침실로 들어와, 여기서는 물병과 대야를, 저기서는 빨갛고 노란 달리아꽃이 담긴 화병을, 또 저기서는 서랍장의 각진 모서리와 단단한 형체를 집어삼켰다.

아름다움이 잊게 만드는 사소한 동요, 문득 떠오르는 홍조나 창백함, 묘한 뒤틀림, 빛이나 그늘 같은 것이야말로, 어떤 얼굴을 잠깐 알아볼 수 없게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번 보면 그 후로는 사라지지 않는 특성을 부여하는 것인데. 그 모든 것을 아름다움이라는 표면 아래 매끈하게 다듬기는 훨씬 간단했다. 하지만 부인이 사냥꾼 모자를 눌러쓰거나 잔디밭을 가로질러 달려가거나 정원사 케네디를 나무랄 때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더라? 릴리는 생각했다. 누가 말해 줄 수 있을까?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

그녀는 지나온 바다를, 섬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뭇잎 같던 형체는 차츰 윤곽이 흐려지고 있었다. 섬은 아주 작고, 아주 멀었다. 이제는 해안보다 바다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파도가 사방에서 그들을 둘러싸고 솟구쳤다 가라앉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어떤 파도에는 통나무가 뒹굴고, 또 다른 파도에는 갈매기가 앉아 있었다. 여기쯤이야, 그녀는 손가락으로 물살을 훑으며 생각했다. 배가 가라앉은 곳은. 그러고는 반쯤 잠에 취해 꿈꾸듯 중얼거렸다. 우리는 죽었노라, 제각기 홀로.

재빨리, 마치 무엇인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그녀는 캔버스를 향해 돌아섰다. 저기 있었다 ─ 그녀의 그림이. 그렇다, 녹색과 청색으로, 가로세로 달리는 선들로, 무엇인가에 대한 시도의 흔적인 그림이. 아마 다락방에나 걸리겠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없애 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 그녀는 다시 붓을 집어 들며 생각했다. 그녀는 층계를 바라보았다. 비어 있었다. 캔버스를 바라보았다. 분명치가 않았다. 갑자기 강렬하게, 마치 한순간 그것을 분명히 본 것처럼, 그녀는 거기 한복판에 선을 그었다. 됐다, 완성이다. 그래, 그녀는 극도로 지쳐서 붓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바로 이거야.


읽은지가 좀 됐다고 기억이 잘 안난다. 아무래도 읽으면서 글이 어렵다고 느껴졌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은 언제나 관심을 갖고 읽기는 하지만 읽으려고 하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탓에 읽기가 어렵다. 그래도 독서모임의 세계고전문학 빙고에 포함된 도서라서 꾹 참고 꼼꼼히 읽으려고 노력했는데... 독후감을 너무 늦게 쓴 탓도 있겠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으면 특정 남성들의 불쾌한 행동이나 말투에 대해 콕 찝어 "얘들아 이거 짜증나지 않니?"하는 표현들이 녹여져 있어서 그게 정말 재미있고 웃기다. 등대에 가기를 기대하는 아들에게 기회가 되면 가자꾸나. 라고 말 한번 해주지 않고 단호히 내일 등대에 갈 수 있을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램지 씨는 성내듯 잘라 말했다. 어떻게 알아요? 그녀는 물었다. 바람이 바뀌기도 하잖아요. 그녀가 한 말의 어처구니없는 불합리함이, 여자들이 하는 생각의 어리석음이 그를 화나게 했다. 그는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왔고, 박살이 나서 떨고 있는데, 그런데 그녀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그의 자식들로 하여금 불가능한 것에 희망을 걸게 만드는, 요컨대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돌층계에 발을 굴렀다. 「이런, 빌어먹을!」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뭐라 했기에? 그저 내일 날씨가 좋을 수도 있다고 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기온이 이렇게 떨어지고 바람이 정서풍일 때는 아니지.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배려가 그토록 놀랍게 결여된 채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 문명의 엷은 베일을 그토록 제멋대로 거칠게 찢어 버린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인간다운 예의를 무참히 짓밟는 것으로 여겨져서,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멍멍하고 눈앞이 아득한 채로, 마치 그 우툴두툴한 우박이 퍼붓는 것이나, 구정물을 덮어쓰는 것을 감내하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라고 하는 부분들이 짜증난다기 보다는 그를 더더욱 우습게 만들었다. 보통 이런 장면들은 남성들의 권위적인 모습과 여성들의 감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보통일텐데, 버지니아 울프는 오히려 그깟 말 하나 못해주다니! 하면서 그를 웃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장면들이 뒤에도 꾸준히 나오는데, 이건 정말 버지니아 울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단순히 이런 남자들을 '엿먹이는(ㅋㅋ)' 장면 외에도 버지니아의 문학적 특성은 많이 있을 것이다. 인문학에 재능이 없는 나는 잘 모르는 여러가지 분석적 특징들 말이다. 그런 것들을 몰라도 버지니아 울푸의 글은 전체적인 장면을 훌륭하고 아름답게, 전체적으로 묘사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손수레, 잔디 깎는 기계, 포플러 나무들이 내는 소리, 비 오기 전에 희어지는 잎사귀들, 깍깍대는 까마귀들, 탁탁 벽에 부딪히는 빗자루, 사락거리는 옷자락 ─ 그 모든 것이 그의 마음속에는 그처럼 뚜렷한 빛깔로 분명히 새겨져서, 그는 이미 자기만의 암호를, 자기만의 은밀한 언어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높직한 이마와 예리하고 푸른 눈, 흠잡을 데 없이 솔직하고 순수하며 인간의 약점을 보면 흠칫 찌푸려지는 눈매는 준엄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엄격한 인상을 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아이가 냉장고 사진 둘레를 말끔하게 오려 내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가 담비를 두른 붉은 법복 차림으로 판사석에 앉거나 국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뭔가 엄숙하고 중대한 업무를 지휘하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라던가 그녀는 지나온 바다를, 섬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뭇잎 같던 형체는 차츰 윤곽이 흐려지고 있었다. 섬은 아주 작고, 아주 멀었다. 이제는 해안보다 바다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파도가 사방에서 그들을 둘러싸고 솟구쳤다 가라앉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어떤 파도에는 통나무가 뒹굴고, 또 다른 파도에는 갈매기가 앉아 있었다. 여기쯤이야, 그녀는 손가락으로 물살을 훑으며 생각했다. 배가 가라앉은 곳은. 그러고는 반쯤 잠에 취해 꿈꾸듯 중얼거렸다. 우리는 죽었노라, 제각기 홀로.같은 장면들이 그렇다. 읽으면 이걸 도대체 어떻게 번역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눈으로 문장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소설들은 가능하다면 원서로 읽어보고 싶지만, 수능 영어도 힘들게 읽는 내게는 꽤나 고난이 예상되기에...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읽어보기로 하고 책은 덮어두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휴머니스트의 번역이 더 취향이어서 좋아하는데, 열린책들의 번역도 꽤나 훌륭하다는 말이 많아서 이번에 <등대로>를 열린책들의 번역으로 읽었다. 읽는 내내 버지니아 울프의 서정적인 문장들을 잘 번역해준 것 같아서 열린책들에서 몇 권의 책을 더 구매했다. <등대로>를 통해서 열린책들의 고전문학에도 관심을 갖게 됐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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