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30. ~ 2024.08.30. (1)
2024.08.31. ~ 2024.08.31. (1)
파과
파쇄
구병모 저
위즈덤하우스 출판
2018년 04월 16일 출간
한국 소설에 가장 강렬하게 새겨질 이름, 조각(爪角)
지금껏 우리가 기다려온 새로운 여성 서사의 탄생
한국 소설에 가장 강렬하게 새겨질 새로운 여성 서사를 탄생시킨 구병모 작가의 『파과』가 재출간되었다. 40여 년간 날카롭고 냉혹하게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아온 60대 여성 킬러 ‘조각(爪角)’. 몸도 기억도 예전 같지 않게 삐걱거리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조각은 새삼스레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게 된다.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는 모든 것,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연민을 느끼며, 조각의 마음속에 어느새 지키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다. 『파과』는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뜨거운 찬사다.
사람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각자의 전화기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고 밀려오는 인파에 몸을 움츠리며, 그들 사이에 한 명의 노인이 들어왔는지 말았는지에 대해서는 곧 잊어버린다. 항목이 분류되지 않은 폐지처럼 인식에서 치워버린다. 또는 인식 자체를 처음부터 하지 못한다.
아가씨. 아니 애엄마, 울지 마. 이런 거 가지고 울면 어쩌려고 그래? 이제 엄마 될 사람이. 그러더니 목소리를 조금 낮추며, 세상 모든 노인이 다 저런 거 아니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요. 그나마 별로 노인 같지도 않은 아저씨가 꼭 저 필요한 때만 골라서…… 그때 전철은 다음 역에 정차하기 위해 서행하면서 안내 방송을 내보내고, 젊은 여인은 가방을 챙겨 일어나며 악을 쓴다.
지금 만난 게 저 사람인데! 모두 그런 건 아니라고 해봤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조금 전 앉은 일수가방의 남자는 그리 금방 잠들지 않았을 법한데도 모른 척 눈을 감고 있으며, 젊은 여인은 이번 역이 내릴 곳이었는지 아니면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는지 50대 여인의 위로를 뒤로하고 승강장에 내려선다. 열차 문이 닫히고, 임부가 비운 자리에는 망설이던 50대 여인이 다시 앉았으며, 둘러선 사람들은 눈 감은 남자를 한 번쯤 흘겨보기는 하지만 곧 이 소동을 잊어버린다.
은퇴한 방역업자 가운데 말로가 좋은 경우는 흔치 않고 경력이 오래된 업자의 은퇴란 대개 현장에서 불의의 사망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식당이나 세탁소 혹은 절간으로 들어가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착에 방해가 되는 것은 방역이라는 일의 특수성이었다. 병적인 습관이나 중독과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계속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마약이나 도박과 닮았다. 45년간 사람 죽이는 걸 업으로 하고 살아온 사람이 이제 와서 사람 입에 들어갈 통닭을 튀기거나 사람이 입을 재킷 원피스 등속을 클리닝하며 산다는 것은 포란(抱卵)에 임하는 늙은 이리만큼이나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방역 현장에서의 사망이 아닌 자의 반 타의 반의 은퇴와 휴식과 그 뒤 소일이란, 세상 무슨 일을 하고 어떤 회사에 다녔던 사람보다도 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강도 높은 부정과 삭제를 필요로 하리라는 게 조각의 생각이었다.
방역업을 한다는 놈이 향수라니 제정신 아니라고 조각은 생각했으나 그것이 타고난 체취이며 일 나갈 적엔 오히려 향기를 중화시키는 탈취제를 써야 할 정도라는 해명에는 할 말이 없었고, 실은 젊고 능력 있는 놈일수록 전봇대에 영역 표시하는 개처럼 현장에 자신의 흔적이나 체취 등의 표지를 고의로 남기며 거들먹거리고 싶어 한다는 걸 조각은 모르지 않았으므로 그 해명이란 것도 똥개 방광 터지는 소리일 뿐이었다.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사람은 이거 오래 못 해. 그것이 분노가 되었든, 거짓말에서 비롯한 긴장이나 후회가 되었든 상관없어. 특히 모욕을 견디는 일이 제일 중요하지. 왜냐면 너는 여자고, 그만큼 현장에서 모욕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할 일이 많을 테니까.
어느 날 아침 네가 눈을 떴을 때 내가 누운 채 움직이지 않는다면, 네가 발로 치고 짖어대도 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때도 너는 저리로 나가야 해.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구해오라는 게 아니야. 그때 나는 이미 살아 있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너는 살아야지. 만일 저 문을 열지 못하면 너는 배고픔에 지쳐 결국 내 시체를 뜯어먹을 거다. 그래도 나는 별로 상관없다. 그걸로 너한테 잠깐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하지만 언젠가는 시취가 밖으로 새어 나갈 테고, 배수관을 타고 벌레들이 들끓어 사람들이 들이닥치겠지. 그들이 너를 보면 안락사를 시킬 거란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주인의 시체를 먹은 개는 더 이상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판단도 그렇고, 변질된 고기를 먹었으니 사람들에게 세균이나 질병을 옮긴다는 우려…… 하지만 무엇보다…… 네가 너무 늙어서 누구도 너를 맡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인연이라곤 주워진 것뿐이라 해도.
?이거 소질 있네.
순간 소녀는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서 류를 올려다보았는데, 류는 지금을 무마하기 위한 판에 박힌 위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를 칭찬이라도 할 것처럼 감탄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조각은 주인 여자가 내민 손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 귤을 받아 껍질을 벗긴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꼭 남더러 갈 곳을 끈질기게 묻더라. 당신 지금 자기가 뭐 하고 있는지 정말 알기나 해? 아는 건 단 하나, 목적지는 몰라도 하여튼 가고 있다는 사실뿐이지.”
저 인간을 죽이기 전에는 여기를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여기 보존 잘해야 한다는 건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라는 게 아니야. 여기 망가져서 뽑아내면 힘을 못 쓴다고. 한동안은 보리차 주전자도 들기 힘들다고. 왠지는 나한테 묻지 말고. 그냥 그렇게 생겼고 그렇게 불공평하게 만들어졌다고. 몸이.
구병모 작가의 책은 <파과>와 <파쇄>를 읽은게 처음이었다. <위자드 베이커리>가 중학생때였나... 학교에서 유행을 할 때에도 나는 <해리포터>의 아류라고 생각해서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제목이 그러니까 그냥 관심을 갖지 않았던 거다. 책을 잘 읽지 않는 학생이었기도 했고. 그런데 다 커서 보니까 구병모라는 작가는 너무 유명한 사람이었고, <파과>는 영화로 제작되어 곧 개봉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작년부터 가열차게 독서를 시작했고, 가장 먼저 추천받았던 책이 구병모의 <파과>와 조예은의 <칵테일, 러브, 좀비>였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두 작품은 엄청난 대중픽이고,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맨날 SF랑 해외소설만 읽은 탓일까... 이야기의 초반에 서울 지하철이 나오는데 그게 너무 낯설어서 이상했다. 나에겐 가장 익숙한 장면인데 말이다. 그리고 임산부에게 임산부석을 양보하지 않는 아저씨가 나오고, 어떤 할머니가 나온다. 그리고 그 할머니가 자리양보를 안하던 아저씨를 죽인다. 아, 할머니 킬러의 이야기라더니 이렇게나 실생활에 녹아든 연출이라니... 주체적인 노년 여성의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인데,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삶에 지친 안타까운 여성의 하소연에 가까웠기 때문에 읽는 내내 좀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아쉬운 느낌이었달까.여성이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황에 놓여지게 된 수동적인 그녀의 삶을 그녀는 포기하고 싶었던 것...이랄까. 영화 <차이나 타운>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저래 좀 아쉬운 마음이었고. 류라는 인물에 대한 설정도 딱히 마음에 차지는 않고 오히려 조각과의 관계가 ... 별로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다.파격적인 이야기이긴 하다. 그런데 어쨌든 여러모로 좀 실망스러웠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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