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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독서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김이삭

2024.08.02. ~ 2024.08.05. (4)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김이삭 저
래빗홀 출판
2024년 06월 12일 출간



“여성들은 할 수 있는 저항을 계속했다”

미치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여자들
천지신명에게 외면받고도 살아남은 존재들의 이야기

“우리가 괴력난신을 읽고 쓰는 이유가 다름 아닌 해방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_조예은(소설가)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아도 용기는 남았다” _이수현(소설가, 번역가)

첫 장편소설 《한성부, 달 밝은 밤에》의 드라마화를 확정 짓고, 장편소설과 에세이, 다양한 앤솔러지 소설집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소설가 김이삭이 첫 소설집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래빗홀, 2024)를 출간한다. 데이트폭력 가해자를 피하여 고택에 머물던 여성의 기이한 체험담 〈성주단지〉, 학교의 금기를 어긴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학교 괴담 〈야자 중 ×× 금지〉, 옹녀의 시점에서 다시 쓴 ‘변강쇠전’ 〈낭인전〉,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혐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오컬트물 〈풀각시〉, 조선 후기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의 마을에서 벌이지는 괴이한 이야기 〈교우촌〉까지 호러 장르의 미학과 문학적 완결성을 모두 갖춘 단편소설 다섯 편이 묶였다.

수록작에는 각각 귀신과 괴물, 논리적이지 않은 힘으로 대표되는 ‘괴력난신’이 등장하고, 작품 속 인물들은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연대와 위로를 청한다. 비정상으로 낙인찍혀 주변으로 밀려난 인물들에게 괴력난신은 낯설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비슷하여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이삭의 소설이 으스스한 호러적 재미와 함께 통쾌한 해방감을 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4년 여름, 서늘하고도 다정한 김이삭의 세계를 만나볼 시간이다.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겠대요. 이 동네 매물은 1학기 시작 전에, 주로 겨울에 나온다고, 여름에 나오는 집들은 세입자가 중간에 나간 거라서 문제가 많다고요. 때가 안 맞는 걸 어쩌겠냐면서 꼭 구해야 하는 거면, 기준을 좀 낮추래요. 집은 안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걸 포기한 집이 어떻게 집이냐고요.

누군가 학과 사무실에 전화해서 박사과정 학생인 ○○○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거나 요즘 뭘 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대학원생 조교들이 별생각 없이 답해줄 수도 있잖아요. 그게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어느새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더니 두서없이 늘어놓는 제 말을, 그 정신 나간 이야기를 그는 귀 기울여 들어줬어요. 지영이처럼요. 그때 제가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는지,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 네? 맞아요. 지금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계시죠. 근데…… 듣기만 하잖아요. 안 믿잖아요. 그건 듣는 게 아니에요.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소리를 듣는 거죠.

역시 안 믿으시네요. 솔직하게 이야기해달라고 하셔서 말해드린 건데.
저 안 미쳤다니까요?

광명고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학교였다. 배화학당이나 이화학당이라고 불리던 학교들처럼 역사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근방에 있는 그 어떠한 학교보다 긴 역사를 지닌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붉은 벽돌과 갈색 나무로 지어진 본관은 광명고의 역사를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았는데 광명고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곳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본관은 광명고 ‘괴담’의 중심이기도 했다. 괴담과 학교처럼 잘 어울리는 조합도 없겠지만, 알음알음 퍼져 있는 모호한 괴담과 뚜렷하면서도 구체적인 교칙이 병존하는 곳은 광명고뿐이었다.

아영은 그날 이후로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광명고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소녀라면, 세 사람이 창문을 통해 본관에서 나왔다는 걸 알고 있던 소녀라면, 틀림없이 그때도 본관을 보고 있지 않았을까?
세 사람의 마지막도 지켜보지 않았을까?
목검으로 문을 부숴버리던 모습을?
정말로 그러했다면, 아영은 소녀도 같은 방법을 쓰기를, 그곳에서 나오기를 바랐다.
더는 그곳에 갇혀 있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과부로 살고 싶어 지아비를 죽인 것도 아니고, 혼인하는 족족 지아비라는 이들이 뭍에 놓인 생선처럼 죽어 나가는 것을 나보고 어찌하란 말인가. 처량한 신세를 생각하자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물방울이 눈가를 적셨다.

젊은 여인이 홀로 살기에는 참으로 흉악한 세상이었다. 혼인하지 않으면 어찌 혼인하지 않냐며 들볶고, 과부가 되면 수절을 하라며 들볶았다. 지아비가 있는 여인은 더했다. 밭일과 길쌈, 빨래와 청소 그리고 끼니까지 도맡아야 했다. 지아비와 시부모의 구박은 덤이었다.

“저기…… 통성명부터 합시다. 나는 옹가. 자네는?”
“저는 변가입니다. 강쇠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변강쇠…….”

옹녀는 강쇠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그럼 나와 함께 살자. 내 팔자 무상하여 상부하고 자식 없어, 같이 살 이가 그림자뿐이었다. 너도 고운 얼굴 젊은 나이이니 홀로 살기 무섭지 않더냐. 우리 둘이 같이 살자.”
끝이 살짝 찢어져 늑대 눈처럼 보이던 강쇠의 두 눈이 토끼 눈처럼 동그랗게 떠졌다. 분명 강쇠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이었는데, 그 느낌이 묘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강쇠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옹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찾았다. 마음씨는 비단결 같고 용모는 천상 선인 같으며 수명은 삼천갑자 동방삭 같은 이를.
나의 낭군을.

“임자. 임자는 갑자생이고 나는 임술생이지. 다른 때에 태어나 다르게 살아왔으나 이렇게 부부가 되었으니 백년해로는 못 하여도 죽을 때까지 해락(偕樂)하다 한날한시에 죽읍시다.”

할머니네 가문은 모든 길함을 안채와 사랑채에 몰아주고, 모든 흉함을 별당채로 보냈다. 일종의 거래인 셈이었다. 가문은 별당 여아에게 의식주를 제공해주고, 별당 여아는 별당에 머물면서 가문의 액운을 막아주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언니’가 별당에 들어오기 전까지, 별당 여아와 가문은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 그것도 수백 년 동안.

이제껏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면서 크고 작은 의문들을 모아본 저는 드디어 옛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산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만났던,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여인이 했던 말을 기억해낸 게지요. 거기 동굴에 사는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동굴에 사는 괴물이라. 동굴 안 그자는 사람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 본능도 같은 말을 하였지요. 저건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정신 나간 여인의 헛소리라고 치부했던 말이 실은 진실의 편린이었던 겁니다. 저는 진실을 구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요. 박해에 대해서라면, 저도 좀 알지요. 저는 박해를 역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교우촌이라는 소문을 냈답니다. 그런 소문이 퍼지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거든요. 구원의 피신처를 찾는 교우가 오기도 하고, 박해에 앞장서는 포졸과 외교인이 오기도 하지요. 보세요. 오늘은 탁덕마저 이곳을 찾아주셨잖아요? 천주께서 저희 마을을 정말 가련히 여기시나 봅니다. 특히 굶주리는 아버지를요. 탁덕, 괜찮으세요? 식은땀을 흘리시네요. 이런, 도망을 치시면 곤란하지요. 제 고해 성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걸요. 가장 큰 죄를 고하지 못했답니다. 이제 막 저지르려는 죄를요.


한국의 여성 SF작가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용해서 현재 여성들에게 처해진 상황을 묘사하는 것들을 보면 너무 매력적이고 멋있다. 특정한 상황들에 완벽한 비유를 하여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을 빠짐없이 서술하고 거기에 전통 문화, 판타지, 현실까지 노골적으로 연출하는 점이 정말 신기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함축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테스트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많은 작가들이 이런 것들을 해내고 자신들의 사상을 표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의 문제점들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이 책에는 총 다섯 가지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내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글은 <교우촌>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야자 중 xx 금지>이다. 책소개를 참고하자면, 이 이야기들은 모두 어떤 과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괴담이나 전래동화를 이용하여 데이트 폭력, 여성 청소년의 연대, 조선시대의 여성혐오,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 등에 대해 이야기 한다. 단순히 어떤 사실만을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재미도 없고 독자들의 불만도 생길 수 있을텐데, 김이삭 작가는 너무 매력적으로 호러와 미스터리를 담아 이야기를 풀어냈다.

마치 어떤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서 매우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최근에 다양한 여성예능이 늘어나고 있는데, <여고추리반>과 같은 컨텐츠도 그렇고, 그 외로는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장르의 게임, 혹은 <파묘>나 <곡성>같은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작품의 줄거리가 똑같거나 그런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책을 읽는 것 뿐인데도 티비를 보는 것 같고, 영화를 보는 것 같으며, 게임을 하며 내 캐릭터의 방향을 정하는 것 같이 흥미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당시에 내가 적어놓았던 감상평을 보자면, "이 소설은 판타지인 척 하고, 귀신이 나오는 공포물인척 하면서 실상은 너무나도 현실을 잘 비유하고 있어서 진짜 재밌다. 이 대사역시 안 믿으시네요. 솔직하게 이야기해달라고 하셔서 말해드린 건데. 저 안 미쳤다니까요?는 진짜 소름이 돋았다. 작가님의 의도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세상은 여자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스토리로 이렇게 표현을 하니까 정말 소름이 돋는다."라고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것 아영은 그날 이후로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광명고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소녀라면, 세 사람이 창문을 통해 본관에서 나왔다는 걸 알고 있던 소녀라면, 틀림없이 그때도 본관을 보고 있지 않았을까? 세 사람의 마지막도 지켜보지 않았을까? 목검으로 문을 부숴버리던 모습을? 정말로 그러했다면, 아영은 소녀도 같은 방법을 쓰기를, 그곳에서 나오기를 바랐다. 더는 그곳에 갇혀 있지 않기를 바랐다.도 너무 좋다. 우리가 벽을 부숴버리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오랫동안 갇혀 있던 소녀도 세상으로 나오길 바란다는 이 문장이 너무 좋다. 괴담 이야기인데도 너무 임팩트가 커서 나 읽기 너무 힘들고 뻐렁쳐..."

이렇게, 현재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소리친다. "함께 나아가자! 함께 일어나자!" 그게 단순히 그저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작가들이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이끌어 나가주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나에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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