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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독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2024.07.30. ~ 2024.07.30. (1)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클레어 키건 저
홍한별 역
다산책방 출판
2023년 11월 27일 출간


2023년 4월 국내에 처음 소개된 『맡겨진 소녀』로 국내 문인들과 문학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은 클레어 키건의 대표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다산책방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작가가 전작 『맡겨진 소녀』 이후 11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소설로, 자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른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같은 해 오웰상(소설 부문), 케리그룹 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었으며, 특히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평을 보내며 이 소설이 키건의 정수가 담긴 작품임을 알렸다.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과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의 은밀한 공모를 발견하고 자칫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키건 특유의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문체로 한 인간의 도덕적 동요와 내적 갈등, 실존적 고민을 치밀하게 담아냈다. 저자의 열렬한 팬으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 킬리언 머피는 직접 제작과 주연을 맡아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있으며 현재 모든 촬영을 마친 상태이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다른 아이들은 작은 동굴 같은 곳에 자리 잡은 산타에게 선물을 받으려고 줄을 섰지만 로레타는 바싹 긴장한 채 펄롱의 손에 매달렸다.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아가.” 펄롱이 말했다. “아빠랑 같이 있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펄롱은 다른 아이들이 그토록 반기는 것을 겁내는 자기 아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고 이 아이가 용감하게 세상에 맞서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펄롱 씨 선원들이 이번 주에 시내에 왔었나요?”
“제 선원은 아니지만요, 저 부두에 화물이 들어왔었지요, 네.”
“외국인들을 들이는 게 신경 쓰이지 않나 보네요.”
“누구나 어딘가에서 태어나지 않았겠습니까.” 펄롱이 말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요.”
“주님을 그 사람들하고 비교할 수는 없지요.”

한참 뒤 위층 커튼이 움직이더니 어린아이가 밖을 내다봤다. 펄롱은 억지로 자동차 키에 손을 뻗어 시동을 걸었다. 다시 길로 나와 펄롱은 새로 생긴 걱정은 밀어놓고 수녀원에서 본 아이를 생각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펄롱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네드가 심히 힘들어했던 것, 어머니와 네드가 늘 같이 미사에 가고 같이 식사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불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것을 생각하며 그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펄롱으로 하여금 자기가 더 나은 혈통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서, 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의 은총이 아니었나.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맡겨진 소녀>를 통해 클레어 키건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모든 문장 문장이 너무 다정하고 따뜻했으며 동요처럼 다정하고 시처럼 아름다워서 좋아했다. 사람이 쓰는 글은 그 작가를 그대로 녹여낸다고 생각하는데,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는 작가가 얼마나 섬세하고 민감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햇살이 물결에 반사되어 빛이 반짝인다는 문장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 문장 하나, 하나에는 자연과 비유로 드러나있고 동시에 그걸 바라보는 인물과 거기에 비유되는 인물의 감정선까지 모두 표현되니 말이다.

클레어 키건의 다양한 작품을 읽어보겠다고 다짐한 바와는 다르게 바로 읽지는 못했는데, 보통 이 작가의 글들이 짧고 책이 얇기 때문에 비교적 신작인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미리 구매해놓고 시간이 되는 때에 드디어 읽었다. 시기상으로라면 크리스마스에 읽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나는 한여름에 읽게 되었다. 책이 어떤 시기를 담고 있다면 그 시기에 보는게 가장 좋을텐데. 하지만 표지를 보고 여름날의 바닷가라고 생각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야기는 가을에 시작해서 겨울까지 이어진다.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나 하나만의 인생을 걸어 나가기도 힘들다. 클레어 키건의 이야기는 항상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 내가 챙길 수 있었던 것들, 누군가가 행하고 있는 다정, 누군가가 사무치게 외로워하는 감정들. 이야기는 책의 제목처럼 정말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배달부 펄롱은 우연한 계기로 한 소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이 수녀원의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성격과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고, 조금 더 섬세하고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라면 먼저 손을 뻗기 마련이다. 클레어 키건의 글은 폭신한 쿠션과 같은 글이라서 확실히 이런 겨울의 이웃간의 배려와 소통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조금 더 따듯해지는 것 같다.매우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은 후에 마음 속에 남는 감정은 너무나도 큰 파도를 일으킨다. 클레어 키건의 글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