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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독서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정보라

2024.07.11. ~ 2024.07.12. (2)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정보라 저
래빗홀 출판
2024년 1월 29일 출간

소설 > SF/판타지


치열하게 저항하고 사랑하는 작가
정보라의 첫 자전적 SF소설

당신의 손을 맞잡고 망가진 세상과 맞서며
함께 꾸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진심의 사랑

“이토록 천연덕스럽게 섬뜩한 소설이 또 있을까.” (황인찬, 시인)
“때때로 현실이 소설보다 더 터무니없고 더 마술적이고 더 잔혹할 수 있잖아요.” (정보라 인터뷰에서)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에 이어 2023년 국내 최초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정보라가 해양 생물을 주제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SF연작소설을 선보인다. 작가 본인이 살고 있는 바다 도시 포항의 풍경과 더불어, 그의 가족과 이웃, 친구와 똑 닮은 인물들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가 담긴다. 수록된 여섯 편의 이야기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치열한 투쟁과 투병을 이어온 기록이자,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약한 손을 마주 잡고 깊은 사랑을 나눠온 장면의 모음이다.

자꾸만 말하는 해양 (외계) 생물과 마주치는 ‘나’와 ‘남편(위원장님)’은 정체 모를 검은 양복 군단에게 연행되지만, 기묘한 사건들에 휘말리는 와중에도 이들은 “열받으니까” 잘못된 일에 목소리를 내고 시대의 불합리와 대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물들의 코믹한 행보와, 분노가 가득 담긴 ‘속사포 랩’ 같은 문체를 따라 읽다 보면 절로 웃음이 터지지만, 작가가 겨냥하는 주제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해고 처분과 장애인의 이동권을 무시한 시설, 작은 나라의 이권을 호시탐탐 노리는 21세기 제국주의, 잔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다양한 현안이 다뤄지며 이에 맞서 조금씩 세계의 변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용기 있는 걸음을 보여준다.


나는 위원장님이 각종 해양 생물을 해체하는 식생활에 참관하는 관계가 되어 다시는 문어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은 무너져버렸다. ‘문어’와 ‘무너져’로 말장난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써놓고 보니까 그렇게 됐지만 괜찮아 보이니까 굳이 고치지는 않겠다.

우리는 항복하지 않는다. 나와 위원장님은 데모하다 만났고 나는 데모하면서 위원장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도 함께 데모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교육 공공성 확보와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 해방과 지구의 평화를 위해 계속 함께 싸울 것이다. 투쟁.

쟈(남편을 뜻한다)는 교수가 될 줄 알았는데 빨갱이가 돼가지고 데모하는 게 뉴스에 나오더니 이제는 게한테까지 데모하는 걸 가르치고 남세스러워서 원…….”

“이길 것 같으니까 싸우는 건 아니잖아요.”

как страдание. То есть, в самом деле, я сам так хотел приключение, совсем недавно, сам так думал, что это вроде абсолютно прекрасное, очаровательное, а на самом деле, оказывается, что всё это только беда, самая большая-пребольшая беда…….
(있잖아, 모험이란 그저 고생의 다른 말일 뿐이야. 그러니까 사실은 나 자신도 모험을 그토록 원했었는데, 얼마 전까지도 말이야, 모험이란 아주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알고 보니까 그저 골칫거리일 뿐이야, 전부 아주 굉장히 커다란 골칫덩어리일 뿐이라고…….)

“당신들의 바다가 아닙니다.”


이 책은 출간된 직후에 바로 구매했었는데, 출국을 보름 앞두고 있는 상태였는데다가 약속이 너무 많았어서 결국 읽지 못하고 책장 한 켠을 차지하게만 두고 출국하게 되었다. 전자책을 기다린다고 하고는 3월 중순에 전자책이 출간되었을 때, 바로 구매하기는 했는데 읽지 못했다. 놀러다니기 바쁘기도 했고... 그러다가 결국 여름이 다 와서 읽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름이 다 와서 읽기에 괜찮은 소설이다 싶다.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수산시장의 느낌을 풍기고 있으니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산시장이고 문어가 세상을 지배하는 SF이야기겠지만, 이 글의 작가가 정보라 작가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렇게 단순히 내용을 추측해서는 안된다. 나도 어떤 다른 점이 분명히 존재할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책을 골라 잡았으니까. 

나는 최근에 <아무튼, 데모>라는 정보라 작가의 데모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 사실 내가 정보라 작가를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자세한 개인사정까지는 몰랐다. 내 성격이 그렇기도 하고, 내가 이 사람의 작품을 좋아하는거지 이 작가의 일거수 일투족을 궁금해한 것은 아니었기에... 근데 <아무튼, 데모>를 읽으면서 작가님이 뒤늦게 결혼을 하셨고,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남편분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떤 데모를 다니시는지도 알게 되었기도 하고, 어떤 마음으로 데모에 임하고 계신지도 알 수 있었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를 읽으면서 느낀 가장 첫 감상은 "어? 이거 정보라 작가님 이야기 아냐?" 였고, 두번째 감상은 "아, <아무튼, 데모>를 읽은 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였다.

내가 류이치 사카모토를 사랑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음악이 나의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라는 이유였고, 그를 더더욱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가 모든 불의를 참지 않는 사람이며,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 옳은 방식으로 사용하며 세상을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보라 작가 또한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신이 어떤 일을 행함에 따라 달라질 결과값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원래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물론 아닐 수 있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정보라 작가님이 이 글을 본다면 코웃음을 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러신 분 같다. 류이치 사카모토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최근에 보고 있는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라는 웹툰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었다. "우리가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는 것은, 어디에선가는 고통받고 있다는 것 아니겠어?". 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대략 이런 대사였다. 이 대사를 보고는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와 <아무튼, 데모>를 떠올렸다. 정보라 작가와 류이치 사카모토를 떠올렸고, 박경석 대표도 떠올랐고, 세상의 수많은 활동가들이 떠올랐다. 내가 관심을 크게 갖지 않아 이름 한 자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굳건하게 세상을 나아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떠올렸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다양한 바다생물들을 소제목으로 삼고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한국의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글의 매력이 정보라 작가의 특유의 매력이자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내가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만약 단순히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막아야 한다!"고 외친다면 사람들의 일부는 불만을 표출할지도 모른다. 너는 너무 까다롭고 세상을 힘들게 산다고. 그냥 포기하라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 나는 소극적이지만 종종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내 의견을 공유한다. 지인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매일같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깐깐한 여성이 되어있다. 항상 화가나있다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심리 깊은 곳에 진실을 교묘히 섞은 신기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은 전혀 다른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 이거...'라는 생각만 떠올리더라도 그 독자의 속에서는 아주 작은 불씨가 틔워지겠지.

책을 읽는 내내 재미있다는 생각과 함께 작가님의 속사정을 듣는 것 같기도 하면서, 진실이 숨겨진 전래동화를 읽는 기분으로 즐겁게 책을 넘겼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있으며, 어디선가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세상을 망가뜨리고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와닿아 분노했다.

정보라 작가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남길 때마다 하는 소리 같지만... 나는 정보라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가 너무 멋지고 부럽다. 자신의 의견이 확실하고 관심 있는 이야기에 대해 분명히 외치며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그 강렬함을 동경한다. 이번 책은 더 강렬했다. 다른 책들이 보여주던 것보다 더 날것이기도 했고... 책 한 권을 통해 이렇게나  큰 세상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항상 작가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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