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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독서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박서련

2024.09.19. ~ 2024.09.20. (2)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박서련 저
민음사 출판
2022년 01월 21일 출간


『체공녀 강주룡』 『더 셜리 클럽』의 작가
박서련 첫 소설집
기만적인 레벨 업 세계를 거부한 이들이 일으키는 반전과 전복의 서사,
다시 쓰는 게임의 법칙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서련 작가는 이후 7년 동안 소설집과 장편소설, 짧은소설집, 다양한 주제의 앤솔러지와 에세이까지 장르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다방면의 소설과 글쓰기라는 실험과 모험을 감행해 왔다. 그러면서도 2018년 한겨레문학상, 2021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이루며 지금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공고히 자리 잡고 있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박서련 작가가 데뷔 후 발표한 작품들을 엮은 첫 소설집이다. 데뷔작 「미키마우스 클럽」부터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까지, 일곱 편의 작품으로 박서련 작가가 지나온 적지 않은 시간을 느슨하게 연결해 오롯이 담고 있다. 작품마다 박서련 작가가 그사이 발표한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과도 겹치고 맞물리는 접점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여성의 자유와 삶이라는 근원적인 고민을 중심에 두고, 그로부터 교차하고 확장해 나가면서 차근차근 만들어 간 박서련 작가만의 다채로운 여성 서사를 만나 볼 수 있다.


너는 내가, 세상이 만만하구나. 네가 그런 표정으로 무고를 주장할 때마다 사람들이 다 믿어 주고 상대 여자가 나쁜 사람이 되곤 했겠지. 그러니 세상 물정 모르는 듯이 보이는 가정주부 정도면 네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당신은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그에게 겁을 먹거나 말려들기에는 당신이 너무 어른이다.

당신은 전날과 같은 시간에 S대생에게 문을 열어 주면서 속으로 그 여자의 구부정한 어깨와 잡티가 많은 피부와 짙은 눈 밑 그늘에 점수를 매긴다. 행여나 이 사람이 내 아이의 첫사랑이 될 일은 없겠다. 당신은 그런 생각까지 했는데, 그 점이 차라리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놓이는 점은 전날 같은 일을 일으킬 자지가 여자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엄마, 엄마라고 그만해. 계속 욕 쓰면 아이디 정지 먹어.
엄마가 왜 욕이야? 내가 네 엄만데.
당신은 마음을 가다듬고 적진으로 들어가 상대의 마지막 수호석을 파괴한다. 아이가 간신히 내뱉은 말이 당신의 귓전을 윙윙 돈다. ××, 울어? ××, 괜찮아? 모니터에는 승리를 알리는 메시지가 뜨지만 당신은 더 이상 승자의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

우, 리, 만, 제, 정, 신, 인, 것, 같, 지, 않, 냐.

생리가 하루만 늦어져도 씨발 임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씨발 임신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나면 조용히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 정보가 급해졌고 수중에 그럴 돈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졌고 돈이 있거나 없거나 거의 매번 엄마 생각이 났다. 며칠 그렇게 패닉 상태로 지내다 지쳐 자포자기에 이를 즈음이면 생리가 시작되었고 그러면 아 신이시여 존나 감사합니다 섹스 같은 거 다시는 안 할게요라고 백 번도 넘게 맹세했다.


독서모임 9월 도서로 추천받은 책이어서 읽게 됐다. 제목이 정말 특이했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라니. 내가 파과를 통해 예상실패한 중노년 여성의 능동적인 삶 살아가기에 대한 이야기일까?하고 기대하면서 봤는데 또다시 아니었다. 나는 이제 책 소개를 좀 읽어보고 책을 골라야겠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ㅠㅠ

이 책은 총 7개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다양한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존재하는데 여성들의 삶을 묘사하지만,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사실 읽으면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특히나 책의 제목이자 가장 첫 단편인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청소년 아들을 두고 있는 중년 여성들의 여성이 아닌 아들의 엄마로서의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동시에 여성으로서 이미 (마치) 탈락한 듯한 모습들과 동시에 이제는 인격적으로도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중년 여성의 시선으로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사실 읽으면서 굉장히 불편했다. 딸만 둘인 우리 엄마를 떠올리니 본인도 여자면서 아들있는 엄마라고 다른 여자들을 저런 시선으로 보는게 기분 나빴고, 중년 여성으로서 젊은 남성에게 저렇게 무시당하니 기분 나빴고, 드디어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며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게 된 주인공이 결국은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엄마'라는 타이틀과 자신이 무시했던 여성들의 상징성을 가진 단어들이 욕으로 이용되거나 무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니 말이다.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 없다. 여성들은 굳이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매일을 이렇게 산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미키마우스 클럽>도 마찬가지고, <보>도 마찬가지고, <곤륜을 지나>도 마찬가지고, <기미>도 마찬가지고 <그 소설>도 마찬가지다. 읽으면서 으악, 으악! 내가 이걸 왜 읽어야 하지! 하고 비명을 지르며 속에서부터 들끓는 절망과 분노에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마지막에 나오는 <A Queen Sized Hole>은 그래도 좀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그렇다고 박서련 작가의 이 단편집이, 이 단편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런 책들을 여성들이 읽어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 이렇게 현실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여성들의 감정을 잘 묘사한 작품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성별을 가진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왜 항상 이런 책들은 2030여성들만 읽는 것인가? 그들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이미 현실인데! 그래서 여자들끼리 고개 끄덕이면서 맞아맞아 이게 문제야~ 라고 할게 아니라,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읽으면서 아, 네가 이런 고민을 했구나... 이런 사연이 있었겠구나 하는 의견나눔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2030 여성 외에는 페미니스트라고 욕을 하거나 다들 그렇게 살아왔는데 너는 뭐가 문제냐고 짜증을 내는 등...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마음이 많이 복잡하고 무겁다...

정말 좋은 책이었다. 이렇게까지 소설을 통해 현실을 녹여내는 능력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만을 표현하는게 아니라 실제로 현실까지 녹여서 사람들이 자신의 사연이나 지인의 사연으로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너무 대단한 것 같다. 정말 좋은 책이고... 사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1020 남학생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