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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독서

<고요의 바다에서>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2024.09.06. ~ 2024.09.18. (13)

고요의 바다에서
Sea of Tranquility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저
강동혁 역
열린책들 출판
2024년 07월 15일 출간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독특한 서정성이 빛나는 아름다운 걸작

* 이다혜 작가, 김보라 영화감독 추천
* 전 세계 24개 언어 출간, 약 50만 부 판매
* 버락 오바마,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매체 선정 [올해의 책]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로 자리매김한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의 신작 장편소설. 독특한 서정성과 세상을 향한 고요한 애정이 빛나는 이 작품은 20세기부터 25세기까지 5백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섬세하게 엮어 낸다. 방대한 시간과 다채로운 인물들이 아름다운 필치로 수놓인 『고요의 바다에서』는 우리에게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종말에 가까운 위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차분하게, 또 묵직하게 묻는다. 이 작품은 전 세계 24개 언어로 출간되어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버락 오바마와 유수의 매체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꼽혔으며, HBO 시리즈로 영상화가 확정되었다.


숲과 호수와 작은 마을 들이 물러나고 평원으로 바뀐다. 초원은 처음에는 흥미로웠다가 지루해지고 그다음에는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초원이 너무 많다는 것, 그 점이 문제다. 규모가 잘못됐다. 기차는 끝없는 풀밭을 지나 지네처럼 기어간다. 이쪽 지평선에서 저쪽 지평선까지 모든 것이 보인다. 끔찍할 만큼 지나치게 노출된 기분이다.

「여긴…… 하늘이 참 많다, 그치?」 에드윈이 한마디 던져 본다. 진흙도 아주 많고.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진흙이 많다. 에드윈의 시야가 미치는 한 저 멀리까지 진흙이 햇빛에 반짝거린다.
「탁 트인 공간과 맑은 공기밖에 없어.」 레지널드는 두려울 만큼 아무 특징이 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말한다. 저 멀리에, 너무 멀어서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농가 한 채가 있다. 하늘은 시비라도 걸듯 파랗다.

앞서가는 거대한 수송 트럭이 계속해서 중앙선을 넘으려 했다. 인간이 모는 것일까, 아니면 소프트웨어 결함일까? 어느 쪽이든 불안했다.

「그들은 상륙해 수백 명이 살 수 있는 마을을 여럿 발견했지만 전부 버려져 있었습니다. 더 멀리 나아가 본 그들은 숲이 묘지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이 부분을 설명하기란 딸을 낳기 전에는 쉬웠으나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유해가 든 카누들이 나무 위 3~4미터 지점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실비가 아닌 인간의 유해야. 실비가 아닌. 실비가 아니야. 「다른 마을의 해변에서는 백골들이 발견됐고요. 천연두가 이미 도착했었기 때문입니다.」

「뭐, 전 이 방법으로 아이한테 들어가는 돈을 벌어요.」 올리브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고 좆 까, 남자한테는 절대 그딴 질문 안 할 거면서라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어쨌든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둘, 그 남자와 올리브뿐이었으니까.

우리 대부분은 상당히 비(非)클라이맥스적인 방식으로 죽지 않을까? 우리가 떠났다는 사실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눈에 띄지 않고, 우리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의 서사에서 하나의 플롯 포인트가 될 뿐인 것 아닐까?

난 팬데믹으로 죽었어야 했어. 올리브는 이제 자신이 그 사실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뽀글뽀글 이는 거품처럼 쾌활한 다섯 살짜리 딸이 그녀 앞에 앉아 씩 웃었다. 그 순간 또 다른 구급차의 불빛이 천장에서 깜빡거리며 지나갔다. 그때 올리브가 알게 된 사실은, 딸에게 마주 미소 지어 주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팬데믹 시대의 삶이 주는 이상한 교훈이었다. 삶은 죽음의 면전에서도 고요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시뮬레이션 안에 살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났을 때 그 소식에 대한 알맞은 반응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것. 시뮬레이션 안에 산대도 삶은 삶이다.


세상이 끝날 것임을 알면서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그런 질문이 던져지며 소개된 책이었다. SF를 좋아하기 때문에 당연히 펼쳐보기로 했고, 항상 보관함에 넣어만 두는 다른 책들과는 달리 바로 구매해서 바로 펼쳐보았다. 그러다보니 책이 출간된지 두 달만에 책을 읽게 되었는데, 보통 이런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ㅋㅋㅋ) 뒤늦게 출간일을 알게 된 후에 좀 신기해했다.

이야기는 영국에서 캐나다로 넘어가는 귀족 가문의 차남을 주인공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이야기도 나오고, 내가 현재 토론토에서 생활하며 뉴욕을 오가며 여행을 다니고 있기에 흥미가 생겨 작가에 대해 알아보니, 작가는 토론토 출생으로 뉴욕에서 살았었다고 한다. 최근에도 뉴욕에서 살고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야기 초반에 나오는 캐나다의 황무지에 대한 묘사들을 조금 더 자세하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2016년에 갔던 영국 런던은 집들이 아주 빼곡하고 최대한 공간을 활용해 쓴 나라였다. 한국과 비슷했다. 산이 많은 한국은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높은 건물이나 산이 보인다. 하지만 캐나다는 달랐다. 나는 처음에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허허벌판만 있는 캐나다 동부가 너무 낯설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초반에 숲과 호수와 작은 마을 들이 물러나고 평원으로 바뀐다. 초원은 처음에는 흥미로웠다가 지루해지고 그다음에는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초원이 너무 많다는 것, 그 점이 문제다. 규모가 잘못됐다. 기차는 끝없는 풀밭을 지나 지네처럼 기어간다. 이쪽 지평선에서 저쪽 지평선까지 모든 것이 보인다. 끔찍할 만큼 지나치게 노출된 기분이다.라며 설명하는 부분이 나는 작가가 캐나다 동부에 살며 느낀 감정을 대변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친밀감이 느껴졌다. 오래된 도시에는 나무가 많다고 하지만, 토론토에서 조금만 벗어나 주택가가 많은 동네로 오면 허허벌판이 전부다. 아주 넓고 끝나지 않는 잔디공원을 보는 느낌이다. 나는 그게 재미없다고 느꼈고, 살면서 처음으로 산을 보고 싶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가 항상 불쾌함을 느꼈던 이유가, 작가가 말하는 끔찍할 만큼 지나치게 노출된 기분이다.와 같은 마음이기에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긴…… 하늘이 참 많다, 그치?」 에드윈이 한마디 던져 본다. 진흙도 아주 많고.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진흙이 많다. 에드윈의 시야가 미치는 한 저 멀리까지 진흙이 햇빛에 반짝거린다. 「탁 트인 공간과 맑은 공기밖에 없어.」 레지널드는 두려울 만큼 아무 특징이 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말한다. 저 멀리에, 너무 멀어서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농가 한 채가 있다. 하늘은 시비라도 걸듯 파랗다.라고 묘사되는 부분도 그런 마음과 관련된 공감이었다. 하늘이 정말 맑고 넓다. 하늘이 끝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봤던 하늘과는 다르다.

송금과 미렐라와 빈센트를 제외하면 현재(2024년)보다 200년 뒤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언제쯤 종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나 했는데, 캐나다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나 코비드19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나름 최근의 공감대를 끌어낸다. 그러면서 꺼낸 것이 은은하게 던져오는 앞서가는 거대한 수송 트럭이 계속해서 중앙선을 넘으려 했다. 인간이 모는 것일까, 아니면 소프트웨어 결함일까? 어느 쪽이든 불안했다.와 같은 이야기인데, AI에 대한 비난이라도 하려는걸까 하면서 읽었다. 이야기는 나에게 공감대를 만들어내거나 새로운 정보(피송금인 등)를 주었기 때문에 흥미롭긴 했지만, 이게 대체 왜 종말과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도대체 이렇게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열되는 이유가 뭔지 고민했다. 각 이야기의 끝마다 의문을 들게 하는 요소가 나오긴 했지만, 그게 특별히 무엇이 원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니 이 작가가 이야기를 클라이막스까지 끌어올리는대로 느리고 천천히 따라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이런 것도 어쩌면 사람들의 성향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 사람들은 넓은 평지를 바라보고, 아주 거대한 대륙을 차로 건너며 아주 느리고 느긋한 삶을 산다.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바쁘게 살아야하는 한국인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러니 클라이막스로 끌어당기는 속도가 느린 것도 어느정도 나라가 갖는 성격과 특징이 관련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재미있었다. 개인의 성향과는 또 다르게 그런 것들이 느껴지기도 해서...

이야기가 뒤로 가면서 작가가 의도한 다양한 문장들(소프트웨어 결함일까?, 우리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의 서사에서 하나의 플롯 포인트가 될 뿐인 것 아닐까? 등)이 나열되고, 종말과 끝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감정들(그것이 팬데믹 시대의 삶이 주는 이상한 교훈이었다. 삶은 죽음의 면전에서도 고요할 수 있다는 것., 시뮬레이션 안에 산대도 삶은 삶이다.)이 나열된다. 이야기는 알 수 없는 다양하고 느린 이야기와 평범한 삶의 배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과는 달리 조금 파격적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차분히 끝난다. 우리가 정말 누군가의 서사에 이용당하는 플롯 포인트일 뿐일지라도, 그렇다면 다른 이들도 나의 삶에 플롯 포인트가 되어지는게 아닐까. 우리는 서로 그런 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우리는 감염병, 전쟁, 죽음, 종말을 눈 앞에 두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책이 두껍기도 하고 손에 잘 잡히지 않아 느긋하게 읽었지만, 그래도 여운이 남고 마음 속에 큰 덩어리를 하나 남긴 것 같은(갑갑하다는 뜻은 아니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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