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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독서

<바깥 세계> 녹차빙수

2024.04.15. ~ 2024.04.29. (15)

바깥 세계

녹차빙수 저
구픽 출판
2023년 05월 30일 출간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호러.공포소설


어떤 단편을 읽든 당신의 취향은 완벽하게 재탄생할 것이다
한국형 위어드 픽션의 새 장을 열 작가 녹차빙수의 첫 소설집 출간

녹차빙수의 단편들은 공포 소설이면서 환상 소설이고 스릴러적인 성격도 갖추면서 블랙 코미디적 면모도 갖추고 있다. 이중 작가의 작품 성격에 가장 가까운 것은‘위어드 픽션’이 아닐까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사변소설의 일종으로 등장한 위어드 픽션은 “미지의 대상에 대한 공포”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H.P. 러브크래프트, 아서 매컨 등의 작가로부터 클라이브 바커 등을 거쳐 현재의 차이나 미에빌, 제프 밴더미어 등의 작가까지 이어지는 전통적인 장르다. 한국형 위어드 픽션의 정수라 할 만한 작가 녹차빙수의 작품집 『바깥 세계』는 작가가 그동안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성실하게 발표한 수십 편의 단편들 중 10편을 선별하여 엮은 책으로 작가의 첫 종이책 출간작이기도 하다. 
평범하거나 혹은 사회에서 외면받은 주인공들이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미지의 존재를 만나 그 상황에 휘말리거나, 가까스로 생존하거나, 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리는 이 단편들 속에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 대한 기묘한 풍자도 담겨 있어 현실감을 더한다. 유튜브와 한국의 무속 문화를 절묘하게 풍자한 호러 「단지」, 가장 과학적이면서도 가장 비이성적인 연구실 감상기 「필하율 학생의 직업 체험 보고서」, 한국 출판계에 대한 극사실적 묘사가 빛나는 호러 판타지 「요술 분무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종교에 관한 웃픈 풍자 「충청도에 있는 교회」 등에서는 작가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다. 
그 어느 범주에도 함부로 집어넣으면 안 될 것 같은 독보적인 개성과 소재의 「과학 무당과 많은 커피」와 「잉어의 보은」은 물론이고, 표제작 「바깥 세계」는 가히 한국의 러브크래프트라 할 만한 완성도를 보여 주고 있는데 크툴루 신화 속에서 탄생한 듯한 미지의 존재들과 무방비 상태의 인간에 대한 묘사는 독자들을 며칠간 악몽에 시달리게 할 만하다.
『바깥 세계』에 수록된 10편의 단편들 중 그 어떤 단편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수록작들은 모두 독자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야기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결말을 예상하든 수록작 모두는 독자들의 예상을 완벽히 벗어날 것이며 취향 역시 새롭게 탄생할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ㅅㅎ그런데 구획의 곳곳에서 무당 옷을 입은 사람들이 실험에 매진하고 있는 연구원들 주변에서 북과 꽹과리 소리에 맞춰 펄쩍펄쩍 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저건 랩 샤먼이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실험에서 초상적(超常的) 요인에 의한 오차 발생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하늘과 신불에 치성을 드리고 있는 거지.”
“초상적 요인이요?”
“완전히 동일한 실험을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조건에서 진행하더라도 실험에는 항상 오차가 생겨. 이것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현상이야. 아무리 인간이 주의를 기울여 세밀하게 실험을 진행한다고 해도 이러한 오차는 절대로 완전히 제거될 수가 없지. 이와 같은 오차는 인간의 실수에 의한 착오, 발생 원인을 자연적인 범위 내에서 명확하게 식별해 낼 수 있는 정오차, 그리고 발생 원인을 특정해 낼 수 없는 우연오차로 나뉘어. 여기서 초상적 요인은 일부 우연오차의 원인이 되고 있는 초자연적 현상을 말해. 예를 들자면 연구실의 기운이 안 좋거나, 터가 나쁘거나, 수맥이 흐르거나, 그날 일진이 나쁘거나, 연구자한테 삼재가 들었거나 하는 것들 말이야.”

하늘에 빛나는 거대한 금이 가 있었다. 그게 뭔지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틈이 점차 커지더니 그 안에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모습을 한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
괴물의 첫 인상은 색채가 정말로 현란하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사실상 모든 색이 있었다. 구토와 섬망을 유발하는 요란스러움 때문에 천지분간이 힘들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 괴물은 확실히 어떠한 구조인지 현재까지도 알아낸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정확히 그려 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뒤틀린 원근감과 난생처음 보는 질감으로 특징되는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형태의 전체적인 인상이 인간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면에 대해서는 나를 포함해 이견이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미친 것같이 들뜬 눈과, ‘공허’라는 한 단어 외에는 더 이상 묘사를 진전시킬 수 없었던 벌려진 입만은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책을 아예 안읽던 사람이었는데, 2022년 11월쯤 부터 책에 관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10 년에 한 권도 제대로 안읽던 사람이 한 달에 한 권을 읽기가 쉽진 않았다. 2023년 1월부터 한, 두 권씩 읽기 시작해서 오디오북과 전자책, 종이책 모두 읽으며 책 읽는 양을 늘려갔다. 그러다가 23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시기쯤부터 장르, 작가, 출판사를 구분하며 특징별로 작품을 골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지금 하는 이유는... 내가 책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던 23년 2월 쯤... SNS에 여러 출판사, 편집자, 관계자 들의 계정을 구독했는데... 그때 구독하며 가장 많이 관심을 가졌떤 분이 구픽 사장님(?)이시다. @guzmaofficia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인 출판사라고 소개하신 것도 멋있어보였는데, 구즈마님을 구독하면서 이 분이 하시는 이야기나 의견, 공유하는 내용들을 보면 여러모로 본받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민음사나 문학동네같은 유명 출판사밖에는 몰랐던 나에게 "아 출판 시장이 이렇구나..."를 알게 해주신 분이랄까?뭐, 그래서 굳이 지금 왜 이 분이야기까지 했느냐...면 이 분을 구독하다가 <바깥 세계>의 출판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너무너무 궁금하고 너무너무 기대되는 작품이 되었다. 도서전에서 구매를 하고 구독중이고 팬이에요 라는 오타쿠세레나데를 하고 싶었는데, 도서전을 처음 가봤던 터라 책을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짐이 무거웠고, 이래저래 지쳐있었기 때문에...(그날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기사도 났자나 ㅋㅋ) 그냥 구경만 하고 그 자리에서 책을 사지는 못했다. 이후 <바깥 세계>를 전자책으로 구매하게 되었는데, ... 진짜 살면서 안읽은 교양서적이 너무 많아서 교양서적과 독서모임 책들을 먼저 읽느라고  읽고싶은 책을 영원히 읽지 못하고 미루다가 그렇게 일 년이 지나버리게 되었다.해외로 넘어온 후 퇴근하고 밤마다 <바깥 세계>를 읽었는데, 일이 힘들고 피곤하다보니 진도를 잘 나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이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적은 분량으로 오랫동안 잘 읽었다. 총 10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가장 첫번째 이야기인 <불륜 연구소 취재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런 생각을 해서 이런 글을 이런 장르로 이렇게 쓰는 사람이 있다고?! 네 그게 바로 녹차빙수님입니다... ㅋㅋㅋ 이걸 읽고는 사실 음 좀 충격이다 독특한 분이시구나... 내가 이 책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잉어의 보은> 이었고, 생명공학도로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 것은 <필하율 학생의 직업 체험 보고서>였다. 이게 넘 황당하고 진짜 재미있어서 ㅋㅋㅋ 동기들한테 읽어보라고 추천함 ㅋㅋㅋㅋ장르문학이라는 것이 가진 매력을... 나는 지금까지 SF나 아포칼립스 소재 등으로만 흥미롭다고 느끼고, 폭 좁은 시선으로 '판타지는 내 취향이 아니야.' 정도로 생각했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이나 <그분이 오신다> 같은 작품들도 있지만 그것도 일종의 SF라고 생각했다(걍 혼자 글케 분류해버림). 그런데 <바깥 세계>를 읽고는 정말 완전히 내가 너무 편협하고 폭좁고 틀리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책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넓고 크고 높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