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8. ~ 2024.04.12. (65)
애가
박경리 저
다산책방 출판
2023년 10월 31일 출간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한국 장편소설
“삶에 고통이 없었다면, 문학을 껴안지 못했을 것이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한국 문학사에 남긴 또 다른 걸작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아우르며 격변하는 시대 속 한민족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대하소설 『토지』. 한국 문학사에 다시없을 걸작을 남긴 작가 박경리의 장편소설이 다산책방에서 새롭게 출간된다. 원전을 충실하게 살린 편집과 고전에 대한 선입견을 완벽하게 깨부수어줄 디자인으로 새 시대의 새 독자를 만날 준비를 마친 이번 기획의 두 번째 작품은 박경리의 첫 장편 연재소설이자 첫 연애소설인 『애가』다. 속물적인 세상에서 사랑을 지키고 이에 따른 고통을 감당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통해 씌여진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박경리의 낭만성을 느껴보기 바란다.
이지러지는 하늘의 별빛, 나뭇잎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진수는 눈을 감으며, 그 흰 팔을 민호의 목에 감는다.
"이대로 죽고 싶어요."
"나는 영원히 살고 싶소, 진수하고."
"영원이란 일순간, 한 찰나 속에 있어요."
"나는 감상주의자는 아냐."
"말씀 마세요, 절박해져요."
민호는 이상한 심경에 빠져 있었던 만큼, 그러한 여행자들을 보았을 때, 그 배를 탄 사람과 이렇게 서 있는 자기 사이에 무슨 알지 못할,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 같은 것을 느낀다.
"저 배가 지나감으로써 끊어져 버리는 사람과 사람의 인연처 럼 진수와 나의 인연도 그러한 거야.' 민호는 또다시 그의 생각이 자기와 진수를 결부시키고 있는
것을 깨닫고 자기의 미련을 크게 비웃어본다.
"바람도 묘하게 축축하고..."
"지금은 썰물이 돼서 그렇지만 밀물 때가 되면 물결 소리가 아주 기막혀요. 혼자 걸으면 사람이 이렇게도 고독할 수 있는 가? 그것은 참말 견디기 어려운 두려움이에요. 아마 그런 감정 이 절정에 달하면, 저 달빛이 부서지고 있는 바다에 뛰어들고 말 거예요."
"설희 씨도 그런 것을 느껴요?"
"너무 그것이 심해서 큰 탈 났어요. 남들은 절 보고, 부지런 하고 퍽 건설적이란 말을 해요. 그것은 제가 집안의 살림을 맡 아서 사니까 그렇게 보는가 부죠? 그 말 속에는 어쩌면 실리적 이고 정감이 메마른 인간이란 비웃음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그릇되게 본 저의 일면이에요. 저는 매일매일 참말 끝없는 공상을 하고 살아요. 그런 속에서도 마음 어느 구 석이 뚫어져 버린 것처럼 자살 같은, 아까 말씀한 어쩔 수 없이 바다에 뛰어드는, 그런 충동을 빈번히 느끼거든요."
"자살의 충동을 느낀다?"
"바닷물이 쿵쿵 치는 밤, 그런 밤에 이 거릴 거닐면, 전 이상 스러운 힘에 이끌려, 저 바닷속에 뛰어들어 갈 것만 같아요. 그 때 자기 자신을 억제하는 힘이란 그야말로 실오라기처럼 가늘 고 힘이 없는 거예요.”
"설희 씨, 그만, 그만해요. 나는 설희 씨가 그만 없어질 것 같 아서 갑자기 불안스럽소." 민호는 손을 내젓는다.
'이 천사가 영원히, 영원히 나에게서 떠난다.'
"행복할 적에는 그것이 바로 시니까, 저는 시를 잊어버려요. 그렇지만 슬플 적에는 시를 읊어요."
“얼마나,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그러나 내가 죽는 날까지 선생님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만을 명심하고…… 그렇지만 내가 죽는 날에는 선생님을 불러오리라 생각했어요.”
“우리에게는 앞날의 설계가 없지요? 그렇지요, 선생님?”
……제가 이 선생의 사랑을 독점한다는 것은, 이 선생 앞에 진수라는 여자가 완전해야 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어요. 한 사람의 죽음이나, 또는 이별로써 독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 진수는 누구의 죽음 같은 것을 바라는 여자는 아냐. 너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실과 선善을 말하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 우리는 진실했다. 그러나 그 진실의 결과는 악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누구의 죄랄 수는 없어. 우리는 그렇게 아슬아슬한 이별과 해후 속에 휘말려 들어갔을 뿐이니까. 아무튼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할 게고, 우리의 진실은 그냥 버려질 수는 없는 것이라 나는 생각해.’
출국을 열흘 앞두고 <애가>를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내가 <애가>를 다 읽고 비행기를 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적북적에도ㅋㅋㅋ 완독으로 표시를 해놨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뒷내용을 모르는 것이었다...! 실제로 60%만 읽은 상태였다... 황당해서 전자책을 구매한 후에 앞부분을 훑어보고, 멈췄던 부분 쯤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는 박경리 작가의 <푸른 운하>를 정말 좋아한다. 폭풍같은 시기의 젊은 남녀가 각자가 처한 상황과 각자의 성격에 맞추어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살아가고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를 결정하는 이야기이자 동시에 애틋하고 우울한 로맨스를 담고 있는 소설이 재미있어서였다. 다산책방에서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재판하면서 이전까지 마로니에북에서 14년 이후로 재쇄하지 않았던 박경리 작가의 단/장편 시리즈들이 모두 재출간되었다. 이런 부분에서 너무 즐거워서... 심지어 표지도 예쁘다! 그래서 가장 먼저 고른 것이 <애가>였다.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는데, 읽는 내내 <푸른 운하>보다는 좀 더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그 시절 로맨스라는 점이 재미있었다.
민호는 진수와 설희를 두고 그녀들을 사랑하면서 갈팡질팡한다. 무엇이 옳다고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민호는 결국 마음이 따라가는대로 행동하다보니 진수를 선택하여 불륜이라는 결과를 내놓는다. 이로 인해 설희가 좌절하게되고, 최후에는 선택받은 진수마저도 떠나가게 된다. 어찌보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남성"이 모든 것을 잃게된다는 이야기를 하고있다는 생각이 들어 통쾌하기도 했다. 모두가 신사인척하며 점잖게 굴지만, 실로는 그저 바람을 피고 있는 사람들이고, 어린 연인을 갈라놓은 악역이 되어있는 인물이거나 그런 것이다. 인물 관계가 복잡하지는 않은데, 사람들이 모두 성격이 한두바퀴 꼬여있어서 그런 부분이 좀 웃겼다.
재미있는 소설이고, 그 시대 분위기도 대략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항상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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