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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독서

<아무튼, 데모> 정보라

2024.04.08. ~ 2024.04.09. (2)

아무튼, 데모

정보라 저
위고 출판
2024년 03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_‘소설 쓰고 번역하고 데모하는’ 작가 정보라의 첫 에세이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데모’라고 답하는 사람, 처음 만났을 때도 오랜만에 만났을 때도 인사말은 언제나 “투쟁”인 사람, ‘작가의 말’에 소설보다 시위에 관한 얘기를 더 많이 쓰는 사람, 정보라 작가의 첫 에세이 『아무튼, 데모』가 출간되었다. 다양한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고, 서명대에서 서명을 받으면서 만난 사람들, 그들에 관한 애정의 고백이자 우리가 함께 가고자 하는 유토피아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설집 『저주토끼』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라고 썼다. 이것이 소설가 정보라가 소설을 쓰는 마음의 시작이라면, 『아무튼, 데모』 마지막 장에 쓴 “나는 데모하러 나가서 동지들을 실제로 보면서 실제로 땅을 딛고 같이 행진하는 것을 좋아한다. 글자 그대로 걸을 때마다 조금 더 좋은 세상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데모꾼’ 정보라가 데모하러 가는 마음의 시작이다.


‘참사 백 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 기억은 이런 것이다. 세월호 참사 백 일 때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유가족분들이 광화문으로 오는 길에 차 벽으로 가로막혔다. 나는 서명대를 지켜야 했으므로 서울광장에 가지 않고 광화문에 남았다. 경찰이 아무래도 차 벽을 치워주지 않고 서울광장에서 광화문으로 오는 모든 사람을 무조건 막았다. 당시 단식 중이던 유민 아버님이 세종대로 한복판으로 걸어나가 드러누웠다. 나도 따라 나가서 유민 아버님 머리맡에 앉았다. 세종대로에는 차들이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도로에 드러누운 유민 아버님을 치려면 나부터 치고 지나가라고 생각했다.
우리 앞에는 차 벽이 가로막고 있었고, 차 벽은 너무 높았다. 앞이 깜깜한 날들이었다.

미수습자 아홉 명 중에서 세 명이 배를 인양하자마자 발견됐다.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 2학년 2반 허다윤, 일반인 승객 이영숙 님. 단원고 고창석 선생님은 그보다 조금 더 시일이 지나서 발견됐다.
단원고 2학년 6반 박영인, 2학년 6반 남현철, 단원고 양승진 선생님, 일반인 승객 권재근 님, 아들 권혁규 님. 다섯 분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2018년 10월에 미수습자 수색이 종료되었을 때 현철이 아버님이 “끝내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을 잊지 말아달라”며 오열하다 결국 무너지셨다.
나는 잊지 않는다.
영인이, 현철이,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 님 그리고 꼬마 혁규.
수색이 종료된 후에 다섯 분은 시신 없는 장례를 치렀다. 혁규 동생은 고모 품에 안겨서 조문객들을 낯설어했다. 혁규 동생은 참사 당시 혁규보다 더 크게 자라 있었다.

나는 이 참사에 책임이 있는 여러 조직과 개인들을 마음속 깊이 저주하고 있다.

“서울 거리에 턱을 없애주시오”라고 외친 김순석 열사에 대해서도 전장연 집회에서 처음 배웠다. 바퀴 달린 가방을 끌며 보도에서 턱이 없는 곳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나는 턱 없는 거리를 위해 누군가 목숨을 바쳤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서울교통공사가 시작한 몸싸움과 함께 혜화역장이 “전국장애인철폐단체(장애인 차별을 철폐하는 연대가 아니라 장애인을 철폐하는 단체?) 불법시위 때문에 지하철이 정차하지 않는다”고 방송했다. 지하철이 무정차로 지나갔다. 우리는 승객이 오가지 않고 일반 시민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벽으로 밀리고 눌리고 밟혔다.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출근길에 ‘장애인들 때문에’ 지하철 운행이 지연된다며 짜증을 낸다. 사실은 경찰 때문이다. 경찰이 필요도 없는 받침대를 깔고 장애인 동지들을 한 명씩 열차 안에 들여보내고 괜히 중간에 막고 분명히 안전하게 다 들어갔는데 받침대를 접었다 깔았다 하면서 시간을 끌며 지하철 운행을 일부러 지연시킨다. 그러면서 승객들이 ‘장애인 탓’을 하도록 유도한다. 실제 장애인 동지들은 받침대 깔고 접고 할 필요 없이 열차에 잘 타고 잘 내린다. 경찰이 시민들과 장애인 활동가들을 갈라치기 하기 위해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다.
전장연 활동가들이 대화하고자 하는 대상은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다. 일반 시민이 아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보안관과 경찰을 동원해서 소란을 일으키고 ‘장애인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역할을 일반 시민에게 떠넘기고 그 뒤에 숨는다.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 턱이 없는 보도에서 지하철로 여행가방을 끌고 드나들 때, 저상버스를 타고 내릴 때, 그 모든 편의와 안전장치가 다 장애인들이 피와 목숨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물론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오늘도 열심히 ‘장애인 탓’을 하고 있다. 야비하다.

성소수자와 다양성을 싫어하는 무리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를 외쳐댔는데 옆에서 따라오는 혐오 세력이 자꾸 “동성애는 사탄”이라 외치니까 주최 측이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명곡 <루시퍼>를 틀었다.

내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이유는 나의 학생들 때문이었다. 철도 민영화 반대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부터 여러 사회적 사안들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대부분 학생들 때문이었다. 나는 학생들 앞에서 떳떳한 사람이고 싶고, 학생들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평등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

음악대학 앞에서 학내 집회를 할 때면 학과 행정조교들이 나와서 어떤 강사들이 집회에 참여하는지 확인을 했다.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학교 측에 보고하기 위해서 일종의 채증을 하는 것이다. 학과 사무실에서 항상 보던 조교인데 이제 학교 측을 위해서 학내 집회를 염탐하러 오고 사진도 찍으니 해고 강사들은 배신감을 토로하며 분노했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학교 측이 이 전업 행정조교들을 전부 해고했다. 그래서 해고당한 조교들이 대학노조에 가입하고 해고당한 강사들과 함께 싸우게 되었다. 이러니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것이다. 노동자가 사측 편들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사측이 보기에 노동자는 그냥 소모품이다. 저 사람을 염탐하면 내가 안 잘리는 게 아니다. 다 함께 맞서서 부당해고라는 현실을 뒤집어엎지 않으면 언제든 누구든 해고당할 수 있다.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것 같다. 드디어 또다시 “어제가 제일 좋은 날”이었던 시기가 돌아온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니까 나는 데모한다.


'배운 사람'이라는 표현은 언제 쓰는게 적당할까? 나는 이 표현을 잘 쓰지는 않는데, 종종 정보라 작가님을 떠올리면 이 말이 떠오른다. '배운 사람'... 사실 큰 의미가 없는 말이다. 단어의 의미 그대로의 뜻을 가진 말이고 밈화 되었음에도 요즘은 별로 쓰이지도 않는 구시대적 표현이기도 하다. 별로 나쁜 의미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좋은 의미도 아니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배운 사람인네..." 하는게 전부인 밈이다. 그런데도 이 말이 작가님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이유는, 정보라 작가님이 진짜로 존경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가지 이슈들에 관심이 많다. 환경 오염, 장애인 인식 개선, 결핍아동 복지 등에 가장 관심이 크고, 그 외에도 어떤 큰 범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세월호 사건, 이태원 사건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문제는 내가 정이 많다거나 혹은 꼼꼼한 성격은 아니다보니 그 사건을 깊게 파고들어 하나하나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사건들을 보고 분노해도 그 사건의 뿌리까지 깊게 알고 정확히 분노하며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발벗고 나서 데모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위선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기도 했다.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되고, 그런 과정 중에 정보라 작가님의 <저주토끼>나 <호>가 큰 도움이 되면서 이 작가의 강력한 주장들과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을 존경하고 동경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작가님이 여러 데모에 참석하고, 여러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많은 일들에 직접 소리를 내신다는 것을 듣고 정말... "배운 사람"이구나 했다. 시대를 이끄는 지식인이라는 것이 거창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분이 그런 사람이라고 느꼈다.

어쨌든 여러가지 책들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행동하며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나는 그런 점들이 좋았다. 하지만 종종 oO(그렇다면 이 작가님은 어떤 데모에 어떤방식으로 참여하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했었고, 그 궁금증을 <아무튼, 데모>가 해결해주었다.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정확히 알고, 마음이 가리킨 일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그 일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며, 자신의 주장을 정확히 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멋있어보이는지.... 나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내 언어의 깊이는 낮다. 내 심장이 뛰는걸 꺼내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정보라 작가님의 극성팬(;;)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움도 느끼고, 더더욱 작가님을 사랑하게되는 계기도 되었다.세월호, 이태원, 전장연 시위 등을 언급하며 다양한 데모, 그리고 그 데모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현장의 분위기부터 느낌까지 자세히 이야기해주는 것들이 좋았다. 나는 함께하지 못한, 내가 외면한 일들이었지만 나는 마치 그들과 함께 하는 것 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에세이를 읽으며 울컥하고 분노하고 즐거워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꼭, 용기내어 나도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책이었다.

 

나는 최근 이스라엘의 하마스 테러, 팔레스타인 폭격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많은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소하게 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기부금을 후원하고, 수박뱃지를 구매해 가방에 걸고 다닌다. 이런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는데, 이제는 가능하다면 내가 직접 행동할 수 있겠다는 어떤 용기가(!) 생겼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말이다. 이런 분노왜 통탄함을 느끼는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니고, 또 나보다 더 용기있고 행동력을 가진 사람이 나와 함께 해줄거라는 믿음의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정말 좋은 책이었다. 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라 가슴이 뻐렁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