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6. ~ 2024.04.07. (2)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저
이영의 역
민음사 출판
1998년 09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노벨문학상 작가 솔제니친이 직접 경험했던 노동수용소의 생활을 소재로 쓴 소설. 평범한 한 인물 '이반 데니소비치'의 길고 긴 하루 일상을 가감없이 따라가며 죄없이 고통당하는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지배권력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인간군상이 등장해 스탈린 시대 허랑한 인물상, 종교, 인성의 문제 등을 에둘러 역설한다.
“췌─854번!” 타타르인이 검은 작업복 등 위에 붙인 흰 천에 써 놓은 번호를 읽는다. “삼 일간, 노동영창!”
드문드문 불빛이 빛나고, 빈대가 들끓는 쉰 개의 침대에서 200명의 죄수가 잠자고 있는 어두컴컴한 막사 안으로 그의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침대에서 뒹굴던 놈들이 모두 일시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서둘러 옷을 입기 시작한다.
“아니, 무엇 때문에 영창엘 간단 말입니까, 간수님?” 슈호프는 실제로 자신이 느낀 것보다 더 애절한 감정을 담은 목소리로 묻는다.
노동영창은 영창이라고 해 봐야 식은 죽 먹기다. 더운 음식을 주는 데다, 생각할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어 좋다. 그에 비해 중영창은 작업장에도 내보내지 않는다.
“기상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안 일어났잖아? 자, 사령부로 가!”
저쪽 편 식탁에 앉은 젊은 녀석 한 놈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 먼저, 성호를 긋고 있다. 그렇다면 저 녀석은 분명, 서부 우크라이나 녀석이다. 그리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신참 녀석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러시아 사람들은 어느 쪽 손으로 성호를 그어야 하는지도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렸으니까 말이다.
또 한 가지, 아침에 검사해야 할 사항은 죄수복 속에 혹시 민간인 옷을 입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벌써, 민간인 옷은 모두 회수했다. 형기가 모두 끝날 때까지 수용소에서 보관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형기가 끝난 죄수는 아직 한 명도 없다.
부이노프스키는 참지 못하고 볼코보이에게 대들었다. 부이노프스키는 자신의 수뢰정 위에서는 용감한 용사였겠지만, 수용소 생활은 아직 석 달이 안 된 애송이였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이런 추위에 사람들에게 옷을 벗으라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까? 당신은 형법 제9조를 모른단 말입니까?”
그들은 권리를 갖고 있으며, 그 법 조항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모르는 녀석은 바로 이 애송이 녀석뿐이다.
“당신들은 소비에트 시민이 아닙니다.” 전직 해군 중령이 덧붙였다. “당신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형법을 들먹이는 것 정도는 볼코보이도 참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다음 말을 들은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네놈은 중영창 열흘이야!
이반 데니소비치는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 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운다든가, 가족에 생계를 걱정한다든가 하는 버릇이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그를 위해서 모든 문제를 간수들이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아직도 형기를 마치려면 겨울을 두 번, 여름을 두 번, 그러니까 이 년은 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벽걸이 문제가 그를 여간 초조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민족을 구별하는 따위의 일은 무의미한 것이다. 어느 민족인가를 떠나서, 항상 나쁜 놈들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슈호프가 아는 한에서 에스토니아인치고 나쁜 인간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열두 시가 맞을 거야.” 슈호프가 말했다. “이렇게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걸 보니 말이야.”
“중천에 해가 걸려 있으면 말이야…….” 하고 해군 중령이 끼어든다. “열두 시가 아니고 한 시야.”
“아니, 왜 그렇지?” 슈호프가 눈을 치켜뜨며 반박한다. “모든 선조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어. 해가 가장 높이 떠 있을 때가 정오라는 것을 말이야.”
“그건 그 사람들의 이야기야!” 중령이 말을 되받아친다. “법령이 있은 다음부터는 오후 한 시가 되었을 때,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단 말이야.”
“아니, 그따위 법령을 누가 만들었단 말이야?”
“소비에트 정부지!”
킬리가스 본인의 형기는 이십오 년이다. 한때는 아주 좋은 때도 있어서, 무조건 십 년이 언도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1949년 이후부터는 시대가 바뀌어, 일단 걸려들기만 하면 모두 이십오 년이었다. 십 년이라면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 나갈 수도 있겠지만, 수용소에서 이십오 년을 견뎌 보라구?!
옛날 전쟁 중에 형기가 끝난 죄수들을 모두 “추후 상부 방침이 있을 때까지”, 그러니까 1949년까지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붙잡아 뒀다. 게다가 더욱 심한 것은, 누군가 삼 년을 언도 받았는데, 형기를 마치고 나서는 다시 오 년으로 추가형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법률이란 것은 도무지 믿을 것이 못 된다. 십 년을 다 살고 난 다음에, 옜다 이 녀석아, 한 십 년 더 살아라 하게 될지, 아니면 유형살이를 보낼지 누가 알겠는가.
슈호프는 그저 단순하게 계산 속으로 결정해 버렸다. 즉, 부정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반면, 인정하면 얼마가 됐든지 간에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서명했던 것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1942년 2월, 그가 속해 있던 부대가 북서부 전선에서 완전히 포위되었다. 비행기의 식량 보급도 중단되었다. 아예 비행기라곤 하나도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병사들은 죽은 말의 발굽을 칼로 깎아서 그 각질 부분을 물에 불려 먹으며 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탄약도 물론 한 발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몇 명씩 독일군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다. 슈호프도 포로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숲 속에 있었던 이틀 동안만 포로였을 뿐이다. 네 사람의 동료들과 함께 도망쳐 나왔던 것이다. 얼마 동안 숲과 늪을 헤매다가 기적적으로 우군 부대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같이 탈주했던 사람들 중에서 두 명의 자동총수는 즉석에서 사살되었고, 세 번째는 부상을 당해 오는 도중 상처가 깊어져서 죽게 되었고,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다. 두 사람 모두 조금만 분별이 있었다면, 숲에서 길을 잃었다고 보고해서 그냥 아무 일 없이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포로였다고? 이런 죽일 놈들을 봤나! 하고 괘씸하게 생각한 것이다. 만약 다섯 명 모두 살아 있었더라면, 증거를 들어 그들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두 사람뿐이라는 것은 영 믿어 주지 않았다. 미리 짜고 속이려 든다고 생각한 것이다.
잘 들리지도 않는 귀로 세니카 클레프신이 포로가 되었다가 탈주했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었는지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세 번 포로가 되었다가 세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고, 또 세 번이나 붙잡혔지.”
모르타르를 찰싹 퍼붓는다. 그다음엔 벽돌을 철퍼덕 놓는다. 그리고 꽉 누른다. 위치도 바로잡는다. 모르타르. 벽돌. 모르타르. 벽돌…….
모르타르를 버리라는 반장의 명령이 있었고, 또 얼른 버리고 달려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다. 그러나 슈호프의 그 지랄 같은 성격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팔 년간을 수용소에서 살았지만 그 성격은 전혀 고칠 수가 없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마구 버리지 못하는 성미라 어쩔 수가 없다.
모르타르! 벽돌! 모르타르! 벽돌!
각 반마다 간첩이라고 소문이 난 사람은 대여섯 명씩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당국에 의해 날조된 가짜들이다. 간첩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알고 보면 단순한 전쟁 포로에 지나지 않는다. 슈호프만 해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것 보세요, 이반 데니소비치! 당신의 영혼이 하느님을 찾고 있어요. 왜 영혼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합니까?”
슈호프는 힐끔 알료쉬카를 쳐다본다. 두 눈이 촛불처럼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슈호프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쉰다.
“왜, 영혼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냐고? 알료쉬카, 기도라는 건 죄수들이 써 내는 진정서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세. 말해 봤자, 꿩 구워 먹은 소식이 될 뿐이고, 거절당하기 십상이란 말이야!”
“나도 하느님을 부정하지는 않아. 오히려 믿고 싶은 심정이야. 하지만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은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그런 소리를 곧이듣는단 말이야? 어째서 자네들은 우리에게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들을 가지고 우리를 멍청이로 만드냔 말이야. 난 그것을 믿지 않아.”
슈호프는 다시 반듯이 자리에 눕는다. 손을 머리 위로 쭉 뻗고는 혹시라도 하단에 있는 중령의 물건을 담배로 태우는 일이 없도록, 창문과 침대 사이에 조심스럽게 재를 턴다. 그런 다음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알료쉬카가 여전히 뭐라고 열심히 지껄이는 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하여튼…….” 하고 결론을 내리듯 다시 입을 연다. “아무리 기도를 드려 봐야, 형기가 줄어드는 일이 없을 테고, 형기가 끝날 때까지는 계속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 거야.”
“아니, 그걸 바라고 기도를 드려서는 안 돼요!” 알료쉬카가 펄쩍 뛴다. “뭣 때문에 당신은 자유를 원하는 거죠? 만일 자유의 몸이 된다면, 당신의 마지막 남은 믿음마저도 잃어버리게 될 거예요. 감옥에 있다는 것을 즐거워하셔야 해요! 그래도 이곳에선 자신의 영혼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명심해야 해요.”
슈호프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그는 이젠, 자기가 과연 자유를 바라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실히 모를 지경이었다.
처음에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는 아주 애타게 자유를 갈망했다. 밤마다 앞으로 남은 날짜를 세어 보곤 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난 후에는, 이젠 그것마저도 싫증이 났다. 그다음에는 형기가 끝나더라도 어차피 집에는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유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형지에서의 생활이 과연 이곳에서의 생활보다 더 나을지 어떨지 그것도 그는 잘 모르는 일이다.
슈호프가 자유를 그리워한 것은 오직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단 한 가지 희망에서였다.
그런데, 집에 돌려보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료쉬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목소리와 눈을 바라보면, 정말로 그는 감옥에 있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봐, 알료쉬카…….” 슈호프가 그에게 변명을 늘어놓는다. “자네는 감옥살이를 한다고 해도 그다지 억울할 것이 없을 거야. 자넨,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감옥에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난 무엇 때문에 여기 들어왔지? 1941년에 전쟁 준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 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 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3613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전~혀 모르던 책이었는데, 독서모임 깨단에서 2024년 이벤트로 고전문학빙고를 하면서 책을 선정하다가 알게 되었다. 대부분 영미소설이나 프랑스나 독일 소설들이 대부분이다보니 다양한 국가의 고전문학을 하나씩 고르다보니 러시아 소설까지 고르게 된 것이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고, 이 소설은 미국대학위원회 선정 SAT 추천도서이기도 하다. 책을 고를 때는 여기저기 추천도서를 리스트업하여 골랐는데 지금은 정확히 이 책이 어떤 분야에서 어땠기 때문에 골랐다는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ㅋㅋ)
이 글은 말 그대로 수용소에서의 하루를 보여주고 있다. 독일군에게 끌려갔다가 간신히 탈출해 돌아왔지만 스파이로 오해받은 후에 십년형을 받아 수용소에 십년동안 갇혀있게 된 주인공의 어느 하루를 보여준다. 이 삶에 적응한 듯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모든걸 포기한 것 같기도 하다. “법령이 있은 다음부터는 오후 한 시가 되었을 때,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단 말이야.” / “아니, 그따위 법령을 누가 만들었단 말이야?” / “소비에트 정부지!” 이 대화는 황당함을 금치 않을 수 없게 한다.
진짜 어떤 죄목을 가지고 있는지에 상관 없이 강압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부여된 죄명과 수용기간은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수용소의 포로들은 짓지 않은 죄에도 무조건적으로 소비에트 정부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기간동안에는 인권이 지켜지지도 않으며, 기본적인 생활 안전성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아무리 정치범들을 가둬놓는 수용소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그들의 입장이 제대로 재판받은 것도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실제로 알렉산드르 솔데니친은 노동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때의 생활을 소재로 이 소설을 써냈다. 알라딘의 소개에 따르면 주인공인 이반데니소비치를 통해 죄없이 고통받는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지배권력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동시에 스탈린 시대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표현하며 허랑한 인물상, 종교, 인성의 문제 등에 대해 역설한다.
자세히 알지 못하는 작가였고, 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짧은 소설이었다. 250페이지가 안되는 짧은 글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많고 그 짧은 '하루'라는 시간을 이용해서 한 시대를 보여준 것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언제 어디서나 가장 억울한 시기에 위대한 글이 탄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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