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0. ~ 2024.04.06. (57)
모비 딕
Moby Dick
허먼 멜빌 저
김석희 역
작가정신 출판
2011년 05월 16일 출간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이런 이유로 고래잡이 항해는 반가운 일이었다. 이제 경이의 세계로 통하는 거대한 수문이 열렸다. 목표를 향해 나를 내몬 멋진 공상 속에서 둘씩 짝을 지어 내 영혼의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오는 고래의 끝없는 행렬이 보였다. 그리고 그 행렬 한복판에, 하늘로 우뚝 솟은 눈 덮인 산처럼 두건을 쓴 거대한 유령이 하나 떠다니고 있었다.
“유로클리돈이라는 그 폭풍에 대해서 생각할 때, 바깥쪽에만 성에로 덮인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느냐, 아니면 안팎에 서리가 내려 있고, 민첩한 죽음의 사자만이 유리를 끼울 수 있는, 창틀도 없는 창문으로 밖을 관찰하고 있느냐에 따라 놀라운 차이가 있다.” 이 구절이 문득 마음에 떠올랐을 때 나는 생각했다. 정말 그렇다, 검은 활자여. 너는 말도 잘하는구나. 그렇다. 나의 이 눈은 창문이고, 나의 이 몸뚱이는 집이다. 이런 틈새는 모두 메워버려야 하는 건데, 거기에 솜이라도 틀어막지 않은 것은 참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손을 보기에는 너무 늦었다. 우주는 완성되었다. 마지막 갓돌도 이미 놓였고, 부스러기들은 백만 년 전에 이미 치워졌다. 불쌍한 거지 나사로가 연석을 베개 삼아 누워서, 이를 딱딱 마주치고 누더기가 벗겨질 만큼 몸을 덜덜 떨면서, 넝마로 두 귀를 틀어막고 옥수수 속대로 입을 메워도, 그 사나운 유로클리돈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자주색 비단옷으로 몸을 감싼 부자 노인은 말하겠지. 유로클리돈?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서리가 내려서 정말 멋진 밤이군. 오리온자리의 별들은 얼마나 밝게 빛나는가. 북극의 오로라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영원한 온실의 동양 여름 같은 기후에 대해 말하고 싶은 사람들은 마음대로 말하게 내버려둬라. 나는 내 석탄으로 내 여름을 만들 특권만 있으면 된다.
이제 야만인이 시작한 일은 완전히 내 주의를 사로잡았고, 그가 틀림없는 이교도라는 확신을 나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까 의자에 걸쳐놓은 묵직한 외투로 다가가더니 주머니를 뒤져서, 마침내 기괴하고 볼품없게 생긴 작은 우상을 하나 꺼냈다. 우상은 등에 혹이 나 있었고, 태어난 지 사흘 된 콩고의 갓난애 같은 색깔을 띠고 있었다. 나는 향유로 방부 처리한 머리를 생각해내고, 처음에는 그 검은 인형이 원주민 머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보존 처리된 진짜 갓난아기라고 생각할 뻔했다. 하지만 인형이 전혀 유연하지 않고 윤을 낸 흑단처럼 반짝거리는 것을 보고, 나는 그것이 나무로 만든 우상이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 실제로 그것은 나무 우상이었다. 이제 야만인은 비어 있는 벽난로로 다가가서 종이를 바른 벽난로 가림판을 치우더니, 난로의 장작 받침쇠 사이에 그 작은 꼽추 인형을 볼링 핀처럼 세워놓았다. 굴뚝 기둥과 벽난로 안쪽의 벽돌은 모두 시꺼멓게 검댕이 묻어 있어서, 그의 콩고 우상에게는 이 벽난로가 딱 알맞은 신전이나 예배당과 다를 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고래잡이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야. 아차! 하는 순간에 인간을 영원의 세계로 처넣고 마니까.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우리는 이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매우 잘못 생각해온 것 같아. 여기 지구상에서 소위 그림자라고 불리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진정한 실체인지도 몰라. 우리가 영적인 것을 바라봄에 있어서 그것은 마치 굴조개가 바다 밑에서 태양을 바라보며 흐린 물을 가장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을지도 몰라. 내 몸뚱이는 더 나은 내 존재의 찌꺼기일 뿐인지도 몰라. 원하는 사람은 내 몸뚱이를 가져가도 좋다. 맘대로 가져가. 이건 내가 아니니까. 그러니, 낸터컷을 위해 만세 삼창! 구멍 뚫린 보트, 구멍 뚫린 몸뚱이는 언제든지 올 테면 와라. 하지만 제우스라 할지라도 내 영혼에 구멍을 뚫을 수는 없으리라.
눈을 감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느낄 수 없다. 우리의 육체적 부분에는 빛이 더 맞지만, 실은 어둠이야말로 우리 실체의 본질적인 요소인 것 같다.
외국의 조선소에서조차 노동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표트르 대제처럼, 퀴퀘그는 몽매한 동족을 계몽시킬 능력만 얻을 수 있다면 웬만한 치욕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가 나한테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그의 마음 밑바닥에서 자신을 움직이는 것은 동족을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게, 아니 그보다는 지금보다 훨씬 선량하게 만드는 방법을 기독교도한테 배우고 싶은 열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래잡이로 일하는 동안 그는 곧 기독교도들도 비참하고 사악할 수 있다는 것, 아버지의 신하인 이교도들보다도 훨씬 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침내 새그 항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선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목격하고, 또 낸터컷으로 가서 ‘그곳’에서도 선원들이 급료를 어떻게 쓰는지 보았을 때, 퀴퀘그는 가엾게도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세계는 자오선과 관계없이 어디나 사악하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이교도로 살다 죽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난, 그래 나는 살아 있는 염소 한 마리를 털도 뽑지 않고 뿔도 달린 채 통째로 삼켜버릴 거야.
나는 모든 사람의 종교적 의무를 최대한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무리 우스꽝스러워도 상관하지 않고, 독버섯을 경배하는 개미 떼조차 충분히 존중해준다. 우리 지구의 일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행성에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노예근성에 사로잡혀, 이미 세상을 떠난 지주의 이름으로 여전히 방대한 토지가 소유되고 임대된다는 이유만으로 그 지주의 흉상 앞에 머리를 조아려도, 나는 그들을 경멸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를 그냥 내버려두자. 하늘이여, 장로파건 이교도건, 우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머리가 끔찍하게 손상되어 있어서 수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내 쪽으로 절뚝거리며 다가오더니, 또다시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비벼대며 라마단이 끝났다고 말했다.
“빌대드, 가세. 우리는 가야 돼. 거기, 맨 아래 활대를 후퇴시켜. 이봐, 보트! 옆에 댈 준비를 해! 조심해! 조심! 이봐, 빌대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게. 스타벅, 행운을 비네. 스터브, 행운이 있기를. 플래스크, 행운이 있기를. 모두 잘 가게. 행운을 빌겠네. 그리고 3년 뒤 오늘, 이 낸터컷에서 여러분을 위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저녁상을 차려놓겠네. 만세! 잘 가게!”
하지만 가장 숭고한 진리, 신처럼 가없고 무한한 진리는 육지가 없는 망망대해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바람이 불어가는 쪽이 안전하다 할지라도, 수치스럽게 그쪽으로 내던져지기보다는 사납게 으르렁대는 그 무한한 바다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벌레처럼 육지를 향해 기어가고 싶어 하겠는가! 무시무시한 것들의 공포! 이 모든 고통이 그렇게 헛된 것인가? 기운을 내라, 기운을 내, 벌킹턴이여! 완강하게 버텨라, 반신반인의 영웅이여! 그대가 죽어갈 바다의 물보라, 그곳에서 그대는 신이 되어 솟아오르리라!
끝으로, 내가 처음에 말했듯이 이 분류법은 여기서 지금 당장 완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약속을 지킨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쾰른 대성당이 탑 꼭대기에 아직 기중기를 세워둔 채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듯이, 나의 고래학 체계도 미완성인 채로 남겨둘 작정이다. 작은 건물은 처음에 공사를 맡은 건축가들이 완성할 수 있지만, 웅장하고 참된 건물은 최후의 마무리를 후세의 손에 맡겨두는 법이다. 신이여, 내가 아무것도 완성하지 않도록 보살펴주소서! 이 책도 전체가 초고, 아니, 초고의 초고일 뿐이다. 오오, 시간과 체력과 돈과 인내를!
어떤 작살잡이가 그런 젊은이들 가운데 한 녀석에게 말한 적이 있다. “야, 원숭이 같은 녀석아. 우리는 벌써 3년 동안 힘든 항해를 계속했는데, 네 녀석은 아직 고래를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어. 네놈이 돛대 위에 올라가면 암탉에 이빨이 없는 것처럼 고래가 사라져버린단 말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면 먼 수평선에는 고래가 떼를 지어 모여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도의 리듬과 생각이 한데 융합되어 이 얼빠진 젊은이를 아편에 도취된 듯한 공허하고 무의식적인 몽상의 나른함에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발밑의 신비로운 바다를 인간과 자연 속에 충만해 있는 그 끝없이 깊고 짙푸른 영혼의 가시적 형상으로 오해한다. 그에게서 벗어나 미끄러지듯 달아나는 그 야릇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 형태를 분간할 수는 없지만 위로 솟아오른 희미한 지느러미는 모두 영혼 속을 스쳐 지나감으로써 영혼을 가득 채우는 그 종잡을 수 없는 생각들의 화신처럼 여겨진다. 이렇게 매혹된 기분으로 그대의 영혼은 썰물처럼 왔던 곳으로 돌아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널리 퍼진다. 강에 뿌려진 범신론자 크랜머105의 유해가 결국 지구 전체로 퍼져 모든 해안에 이르듯이.
지금 그대가 누리고 있는 생명이란 부드럽게 흔들리는 배가 나누어준 그 흔들리는 생명뿐이다. 배는 그 생명을 바다에서 빌려 왔고, 바다는 그 생명을 신이 만들어내는 불가사의한 조류에서 빌려 왔다. 하지만 이 잠이 계속되는 동안, 이 꿈이 그대에게 머물러 있는 동안, 그대의 발이나 손을 조금만 움직여보라. 모든 것을 움켜잡았던 손을 슬쩍 놓아보라. 그러면 그대의 정체성이 무서운 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대는 데카르트적106 소용돌이 위를 맴돌고 있다. 그리고 이 대낮에, 청명하기 이를 데 없는 날씨 속에서, 그대는 목이 반쯤 졸린 듯한 비명과 함께 그 투명한 공기를 가르며 여름 바다로 떨어져, 다시는 영영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조심하라, 범신론자들이여!
“선장님.” 타슈테고가 말했다. “그 흰 고래는 모비 딕이라는 놈과 같은 놈이 분명합니다.”
“모비 딕?” 에이해브가 소리쳤다. “그럼 자네는 그 흰 고래를 알고 있나?”
“물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꼬리를 좀 묘하게 놀리지 않습니까?” 게이헤드 출신인 타슈테고가 신중하게 말했다.
“물을 내뿜는 것도 유별나죠.” 다구가 말했다. “향유고래치고는 무성한 덤불처럼 넓게 퍼지고, 게다가 굉장히 빠르지 않나요?”
“말 못 하는 짐승한테 복수라니!” 스타벅이 외쳤다. “그 고래는 단지 맹목적인 본능으로 공격했을 뿐인데! 이건 미친 짓이에요! 말 못 하는 짐승에게 원한을 품다니, 천벌을 받게 될 겁니다.”
오래전부터, 무리를 떠나 혼자 다니는 흰 고래는 주로 향유고래잡이들이 드나드는 절해의 곳곳에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여기, 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백발노인, 증오심에 가득 차서 욥의 고래를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는 노인이 있었고, 그의 부하 선원들은 주로 더러운 배반자와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 그리고 식인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스타벅은 미덕과 상식을 가졌으나 동조자가 없어서 별 영향력이 없었고, 스터브는 태평한 성품이어서 매사에 무관심했으며, 플래스크는 모든 면에서 평범한 위인이어서, 이들 중에는 정신적인 지주가 될 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런 항해사들의 지휘를 받는 선원들은 처음부터 에이해브의 편집광적 복수를 돕게 하려는 목적에서 어떤 악마적 운명에 의해 특별히 차출된 일당인 것 같았다. 그들은 도대체 왜 노인의 분노에 그토록 열광적으로 응했던 것일까. 그들의 영혼은 도대체 어떤 사악한 마력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때로는 노인의 증오를 자신의 증오로 여기게 되었을까. 어떻게 흰 고래를 노인의 원수일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참을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도대체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났던 것일까. 흰 고래는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가. 그들의 무의식적인 인식 속에서 흰 고래는 인생의 바다를 헤엄치는 거대한 악마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흰 고래를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흰색의 존귀함은 인류 자체에도 적용되어 백색 인종은 이상적인 인간으로서 다른 모든 유색 인종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광경이었다. 전능한 바다의 거대한 파도가 끝없는 잔디밭에서 굴러가는 거대한 공처럼 여덟 개의 뱃전을 따라 굴러갈 때 내는 공허한 굉음, 보트를 두 동강으로 쪼개버릴 것처럼 날카로운 파도의 칼날 같은 물마루 위에 잠깐 올라선 순간 잠시 유예된 보트의 고통, 다음 순간 갑자기 파도 사이의 골짜기로 곤두박질치는 급강하, 맞은편 물마루로 올라가기 위한 격렬한 다그침과 부추김, 건너편 비탈을 썰매처럼 미끄러져 내려가는 보트, 보트장과 작살잡이들의 외침소리, 노잡이들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헐떡이는 소리,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새끼들을 쫓아가는 성난 암탉처럼 상앗빛 ‘피쿼드’호가 돛을 활짝 펴고 네 척의 보트에 바싹 다가가는 놀라운 광경, 이 모든 것은 한 마디로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었다. 아내의 품을 떠나 첫 전투의 열기 속에 뛰어든 신병도, 저세상에서 처음으로 미지의 유령을 만난 사자死者의 영혼도, 쫓기는 향유고래가 만들어낸 그 거품 이는 파도 속으로 난생처음 노를 저어 들어가고 있는 사나이만큼 강렬하고 야릇한 감정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 기묘하고도 복잡한 사태에는 우주 전체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난이나 농담으로 여겨지는 야릇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인간은 그 농담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 농담이 다름 아닌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한다. 그래도 그는 전혀 의기소침하지 않고, 논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는 모든 사건, 모든 신조와 믿음과 신념, 눈으로 볼 수 있거나 볼 수 없는 온갖 어려운 일들이 아무리 울퉁불퉁한 혹투성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꿀꺽 삼켜버리는 것과 같다. 강력한 소화 능력을 가진 타조가 총알과 부싯돌을 통째로 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소한 고생과 걱정, 돌발적인 재난의 예상, 목숨이나 팔다리를 잃을 위험만이 아니라 죽음 자체도 그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한 익살꾼에게 장난스럽게 얻어맞았거나 옆구리를 기분 좋게 쥐어박힌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 있는 그 기묘한 변덕은 사람이 극도의 시련을 겪고 있는 순간에만 찾아온다. 그 사람이 가장 진지한 순간에만 찾아오기 때문에, 조금 전만 하더라도 가장 중대한 일처럼 여겨지던 것이 지금은 통상적인 농담의 일부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스터브 씨.” 나는 이번에는 방수복 단추를 채우고 비를 맞으면서 태연히 파이프를 피우고 있는 그 신사에게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스터브 씨, 언젠가 당신이 우리 일등항해사인 스타벅 씨만큼 세심하고 신중한 고래잡이는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짙은 안개와 질풍 속에서 돛을 펴고 돌진하다가 달아나는 고래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 고래잡이로서 더없이 신중한 짓인가요?”
“물론이지. 나도 혼 곶 앞바다에서 강풍이 불고 있을 때 물이 새고 있는 배에서 보트를 내려 고래를 추적한 적이 있다네.”
“플래스크 씨.” 나는 가까이 서 있는 왕대공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당신은 이 방면에 경험이 풍부하지만 나는 풋내기니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포경업에서는 죽음이 입을 벌린 곳을 향해, 죽음에 등을 돌린 채 등뼈가 부러지도록 노를 저어가는 게 철칙인가요?”
“말을 그렇게 비비 꼬지 않을 수는 없나?” 플래스크가 말했다. “그래, 그게 철칙이야. 하지만 나는 부하들이 고래를 향해 정면으로 나아가는 걸 보고 싶어. 하하! 그러면 고래가 실눈을 뜨고 선원들과 마주 보게 되겠지. 생각해봐!”
사람들은 왜 너를 ‘희망봉’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옛날처럼 ‘고난의 곶’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에이해브 선장은 이 고래에 대한 추격을 감독하는 동안에는 평소의 활기를 보여주었지만, 고래가 죽은 지금은 막연한 불만이나 초조감 또는 절망감 같은 것이 그의 마음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고래의 시체를 보자 모비 딕을 아직 죽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새삼 떠오른 것 같았고, 고래 천 마리를 잡아서 끌어 온다 해도 그의 원대하고 편집광적인 목적에는 조금도 가까이 가지 못할 것이다.
초연이 피어오르는 험악하고 처참한 해전 중에도 상어란 놈들은 그들에게 던져지는 시체를 모조리 한 입에 삼킬 준비를 갖추고, 고기 자르는 도마 주변에 몰려든 굶주린 개들처럼 갈망하는 눈으로 배의 갑판을 쳐다본다. 갑판 위에서 용감한 백정들이 황금 자루에 술이 달려 있는 고기칼을 들고 식인종처럼 아직 살아 있는 상대의 고기를 자르고 있는 동안, 식탁 밑에서는 상어 떼들도 보석을 박은 입으로 죽은 고기를 서로 뜯어먹으려 다툰다. 이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어도 거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당사자들에게는 충분히 소름 끼치고 상어처럼 잔인한 짓이다. 상어 떼는 대서양을 건너는 모든 노예선의 변함없는 동행자이기도 하다. 언제나 질서정연하게 배와 나란히 달리면서 무언가를 어딘가로 운반해야 할 경우나 죽은 노예를 바다에 매장할 때 재빨리 도와준다. 그 밖에도 상어 떼가 가장 사교적으로 모여들어 유쾌한 잔치를 즐기는 일정한 기간과 장소와 기회 등에 대해서는 한두 가지 비슷한 예를 더 들 수 있겠지만, 밤바다에서 포경선에 묶여 있는 죽은 향유고래를 둘러싸고 수많은 상어들이 명랑하고 쾌활한 기분을 드러내는 꼴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그 광경을 본 적이 없다면, 악마 숭배의 타당성과 악마를 회유하는 편법에 대해 판단하기를 보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러분, 거기서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고 네놈들에게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쩝쩝 입맛 다시는 소리를 내지 마. 스터브 씨가 그러는데, 배가 터지도록 처먹는 건 좋지만 제발 그 시끄러운 소리는 내지 말란다. 이 죽일 놈들아!”
“이봐, 요리사.” 이때 스터브가 갑자기 그의 어깨를 탁 치면서 끼어들었다. “설교할 때는 그런 욕지거리를 하면 안 돼. 그래서는 죄인을 뉘우치게 할 수 없어!”
“뭐라고? 그럼 당신이 직접 설교하시지.” 요리사는 실쭉하여 돌아서서 가려고 했다.
“아니야. 요리사, 계속해. 어서 계속하라니까.”
“그렇다면 좋소. 사랑하는 여러분.”
“좋아!” 스터브가 큰 소리로 칭찬했다. “놈들을 구슬러. 어디 한번 해봐.”
그래서 양털 영감은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모두 상어다. 그래서 천성이 아주 탐욕스럽다. 하지만 그 탐욕스러움도…… 이봐, 꼬리를 탁탁 치지 말라니까. 그렇게 꼬리를 탁탁 치고 아작아작 씹는 소리를 내면 내 이야기를 어떻게 듣겠나? 빌어먹을.”
“요리사.” 스터브가 그의 목덜미를 잡고 외쳤다. “욕지거리는 하지 말라니까. 신사적으로 말하라구.”
설교가 다시 계속되었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탐욕스러운 것을 그렇게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건 타고난 거라서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그 못된 천성을 억제하는 게 중요하단 말이다. 여러분은 상어지만, 자신의 상어 근성을 억제하면 여러분도 천사가 될 수 있다. 천사라고 해서 모두 다 상어 근성을 잘 억제한 상어보다 훌륭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잘 들어라, 형제들아. 그 고래를 먹을 때 한 번이라도 점잖게 굴려고 애써봐라. 옆에 있는 놈의 입에서 고래기름을 빼앗지 마라. 그 고래에 대해서는 모든 상어가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실 여러분은 아무도 그 고래를 먹을 권리가 없다. 그 고래는 남의 것이다. 여러분 중에는 다른 상어들보다 입이 훨씬 큰 놈도 있다. 하지만 입만 크고 배는 작은 놈들도 있다. 그러니까 입이 큰 것은 마구 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난장판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어린 새끼들한테 그 큰 입으로 물어뜯은 기름을 나누어주기 위해서다.”
“잘했어, 양털 영감!” 스터브가 외쳤다. “그게 바로 기독교 정신이지. 계속해.”
“계속해도 소용없어요. 저 고약한 놈들은 계속 소동을 벌이면서 서로 때릴 거요. 놈들은 한 마디도 듣지 않아요. 벌 받아 마땅한 욕심꾸러기들이오. 배가 잔뜩 부를 때까지는 그런 놈들한테 설교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을 거요. 하지만 놈들의 배는 바닥이 없소. 배가 불러도 놈들은 말을 듣지 않아요. 배가 부르면 물속으로 들어가 산호 위에서 깊이 잠들어버려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으니까. 영원히, 영원히 안 들을 거요.”
“나도 같은 의견이야. 그러니까 놈들에게 축복이나 내려주게, 양털 영감. 나는 저녁을 먹으러 갈 테니.”
그러자 양털 영감은 상어 떼 위로 두 손을 내밀고 목청을 높여 외쳤다.
“저주받은 놈들아. 마음대로 실컷 떠들어라. 배가 터질 때까지 처먹어라! 그리고 배가 터져서 죽어버려라!”
창을 던진 순간, 그 잔인한 상처에서는 궤양성 고름이 뿜어 나왔고, 고래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못 이겨 걸쭉한 피를 내뿜으면서 보트를 향해 마구잡이로 돌진해 왔다. 그리고 보트와 우쭐한 선원들에게 핏덩어리를 소나기처럼 퍼붓고 플래스크의 보트를 뒤집고 뱃머리를 부수었다. 이것은 죽기 직전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하지만 출혈 때문에 이미 힘이 빠져 있었던 고래는 자기가 부순 보트에서 떨어져 나가 힘없이 옆구리를 드러낸 채 헐떡거리고 그루터기처럼 잘린 지느러미를 기운 없이 퍼덕이다가, 종말이 가까워진 지구처럼 천천히 몇 번 회전하더니, 그 비밀스러운 하얀 배를 드러내고는 통나무처럼 드러누워서 숨을 거두었다. 가장 애처로운 것은 죽기 직전의 마지막 물 뿜기였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큰 샘의 물은 차츰 빠져나가고, 반쯤 질식한 목구멍에서 나는 꼬르륵거리는 우울한 소리와 함께 물기둥은 점점 낮아졌다. 그것이 죽어가는 고래가 마지막으로 길게 내뿜은 물줄기였다.
내가 아무리 고래를 해부해보아도 피상적인 것밖에는 알 수 없다. 나는 고래를 모른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1492년에 콜럼버스가 왕과 왕비를 위해 소유권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에스파냐 국기를 아메리카에 꽂았을 때, 아메리카는 ‘놓친 고래’가 아니고 무엇이었던가? 폴란드는 러시아 황제에게 무엇이었던가? 그리스는 터키에게 무엇이었던가? 인도는 영국에게 무엇이었던가? 결국 멕시코는 미국에게 무엇이 될까? 모두 ‘놓친 고래’다.
인간들이여! 불을 정면에서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라. 절대로 키를 잡은 채 꿈꾸지 말라! 나침반에 등을 돌리지 말라. 왈칵 움직이는 키손잡이의 첫 암시를 무시하지 말라. 인공적인 불의 붉은 빛을 받으면 모든 것이 무시무시하게 보이니까, 인공적인 불을 믿지 말라. 내일, 자연의 햇빛 속에서 보면 하늘은 밝을 것이다. 갈라진 불꽃 속에서 악마처럼 보이던 자들도 아침이 되면 딴사람처럼, 적어도 훨씬 온화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금빛 찬란한 황금빛 태양, 그것만이 유일한 진짜 등불이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다.
전에는(예를 들면 18세기 말) 작은 무리를 이룬 고래를 오늘날보다 훨씬 자주 만났기 때문에 항해는 그렇게 오래 연장되지 않았고 수익도 많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런 사실도 향유고래가 차츰 사라져간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고래는 떼를 짓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오늘날에는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헤엄쳐 다니고, 그래서 옛날에는 뿔뿔이 흩어져 다니던 외톨이 고래, 또는 둘씩 짝을 짓거나 작은 무리를 이루었던 고래들이 이제는 거대한 집단으로 모여 있지만, 무리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좀처럼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뿐이다. 그리고 이른바 수염고래가 몰려 있던 어장에 그 고래가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그 종족도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인 것 같다. 그 고래들은 작은 곶에서 큰 곶으로 옮아갔을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해안에서 고래가 내뿜는 물줄기가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외딴 바닷가에서는 낯선 광경을 본 사람들이 놀라고 있을 게 분명하다.
불행과 행복 사이에는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 같다. 지상 최고의 행복도 그 속에 무의미한 찌꺼기를 감추고 있지만, 반대로 모든 슬픔의 밑바닥에는 신비로운 의미가 숨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대천사 같은 장려함이 깃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토성의 위성들 사이에 술탄처럼 앉아서 인간을 고도로 추상화된 개념으로만 바라보라. 그러면 인간은 참으로 경이롭고 위대하며 비애 자체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지점에서 인류를 집단으로 바라보라. 그들은 대부분 쓸모없는 복제품으로 보인다.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과거와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다 엇비슷한 복제품 같다.
특이한 깃털을 가진 육지의 새가 길을 잃고 배에 내려앉았다가 잡히면, 목수는 참고래 뼈로 만든 깨끗한 막대와 향유고래의 송곳니로 만든 대들보를 이용하여 탑 모양의 새장을 만든다. 노잡이가 손목을 삐면 목수는 진통제를 조제한다. 스터브가 자기 보트의 모든 노에 주홍색 별을 그려 넣고 싶어 하면, 목수는 노를 커다란 나무 바이스에 고정시키고 좌우 대칭으로 균형 잡힌 별자리를 그려준다. 어떤 선원이 상어뼈로 만든 귀고리를 달고 싶어 하면, 목수는 그의 귀에 구멍을 뚫어준다. 어떤 선원이 치통에 시달리면, 목수는 펜치를 꺼내 들고 작업대를 탁탁 치면서 거기에 앉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 가련한 사나이는 수술이 끝나기도 전에 걷잡을 수 없이 겁을 집어먹고 몸을 움츠린다. 그러면 목수는 나무 바이스의 손잡이를 빙빙 돌리면서 이를 뽑고 싶으면 주둥이를 거기에 집어넣으라고 손짓을 보낸다.
그동안 줄곧 퀴퀘그는 꿈을 꾸는 것처럼 두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핍이 끌려 나가고, 환자는 다시 그물침대로 옮겨졌다.
하지만 이제 죽음에 대비한 준비가 모두 끝나고 관도 자기한테 꼭 맞는다는 것이 확인되자, 퀴퀘그는 갑자기 원기를 회복했다. 목수가 만든 관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몇 사람이 즐거운 놀라움을 표현하자 그는 자기가 갑자기 회복한 이유를 대체로 이렇게 설명했다. 위급한 순간, 육지에서 하지 않고 미루어둔 사소한 의무가 갑자기 생각났고, 그래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직 죽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살고 죽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 욕구에 달린 문제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살기로 결심하면, 고래나 폭풍이나 그 밖에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파괴자의 손에 의해서만 죽을 뿐, 단순한 질병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야만인과 문명인 사이에는 이런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다. 문명인이 병에 걸려 회복될 때까지 반년이 걸린다면, 일반적으로 말해서 야만인은 하루 만에 반쯤은 회복되는 것이다. 퀴퀘그는 오래지 않아 기력을 되찾았고, 며칠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권양기 위에 앉아 있더니(하지만 식욕은 왕성해서 아주 잘 먹었다)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 팔과 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가볍게 하품을 한 다음 뱃전에 높이 매달려 있는 보트의 뱃머리로 뛰어들어 작살을 겨누며 자기는 언제라도 싸울 수 있다고 선언했다.
아아, 이 무슨 재난이란 말인가! 오오, 죽음이여! 그대도 가끔은 때맞춰 올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러지 못하는가? 이 늙은 대장장이를 완전히 파멸하기 전에 그대에게 불렀다면, 젊은 과부는 감미로운 슬픔에 잠겼을 것이고, 아이들은 훗날 정말로 존경할 만한 아버지를 꿈에 보았을 것이고, 다들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재산도 물려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날마다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날 만큼 힘들게 일하는 후덕한 젊은이를 쓰러뜨렸고, 쓸모없는 정도가 아니라 해롭기까지 한 늙은이는 생명이 섬뜩할 만큼 썩어버려서 거두어들이기가 더 쉬워질 때까지 내버려두었다.
바다여! 만세! 영원히 만세! 그대의 영원한 파도야말로 사나운 바다새들의 유일한 휴식처가 아닌가. 나도 육지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바다의 젖을 먹고 자랐다. 산과 골짜기가 어머니처럼 나를 돌봐주었지만, 이 큰 파도는 나와 함께 젖을 먹고 자란 내 형제들이다.
오, 태양이여! 인간의 시선은 본래 이 지구의 수평선과 같은 높이에 있다.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창공만 쳐다보게 할 작정이었다면 인간의 눈은 정수리에 뚫려 있을 것이다. 사분의여, 너를 저주한다!” 에이해브는 사분의를 갑판에 내던진다. “두 번 다시 너에게 내 지상의 길을 안내받지 않겠다. 흔들리지 않는 배의 나침반, 측정기와 측량줄을 이용한 추측 항법. 이것들이 나를 안내할 것이고, 바다에서 내 위치를 알려줄 것이다.” 그는 보트에서 갑판으로 뛰어내렸다. “그래서 나는 너를 짓밟는다. 힘없이 높은 곳을 가리키는 하찮은 놈아. 나는 이렇게 네놈을 박살 내고 파괴한다.”
“하느님이, 하느님이 영감님한테 등을 돌리고 계십니다. 영감님, 제발 그만두세요! 이건 불길한 항해입니다. 시작부터 불길했고, 그 후 재난이 계속됐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활대를 용골과 직각으로 돌리고, 이 바람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순풍으로 삼아서 이보다 나은 항해를 계속합시다.”
스타벅의 말을 엿듣고 공포에 사로잡힌 선원들은, 돛대에는 돛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당장 아딧줄로 우르르 달려갔다. 지금 당장은 그들도 겁먹은 항해사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그들은 거의 선상 반란에 가까운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에이해브는 덜거덕거리는 피뢰침 고리를 갑판에 내던지고는, 타오르는 작살을 움켜쥐고 횃불처럼 휘두르면서 선원들 사이로 뛰어 들어가, 누구든 맨 먼저 밧줄을 푸는 놈은 이것으로 찔러 죽이겠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의 서슬에 깜짝 놀란 선원들은 그가 들고 있는 불타는 작살에 더욱 움츠러들어 허둥지둥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에이해브는 다시 입을 열었다.
“흰 고래를 잡겠다는 너희들의 맹세는 내 맹세만큼 구속력을 갖는다. 그리고 이 늙은 에이해브는 심장도 영혼도 육체도 허파도 생명도 모두 그 맹세에 묶여 있다. 이 심장이 어떤 장단에 맞춰 고동치고 있는지, 너희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길 보아라. 너희들에게 남은 마지막 공포를 내가 훅 날려주마!” 그러고는 단 한 번의 입김으로 불꽃을 꺼버렸다.
태풍이 넓은 들판을 휘몰아칠 때 사람들이 외따로 서 있는 거대한 느릅나무 근처에서 달아나는 까닭은 나무가 높고 튼튼할수록 벼락의 표적이 되어 더욱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이치로, 에이해브의 마지막 말을 들은 선원들은 대부분 경악과 공포에 사로잡혀 허둥지둥 그에게서 달아났다.
“선장님, 주돛대의 중간활대를 내려야겠습니다. 밧줄이 느슨해져서 바람 불어가는 쪽의 활대줄이 많이 꼬였습니다. 돛을 내려도 될까요?”
“아무것도 내리지 마. 밧줄로 단단히 묶어둬. 윗돛대가 있다면 그것도 당장 세울 텐데.”
“선장님…… 제발…… 선장님?”
“뭐야?”
“닻이 내려져 있습니다. 배 안으로 끌어 올릴까요?”
“돛은 절대 손대지 말고, 닻은 절대 움직이지 말고, 모든 것을 밧줄로 단단히 묶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 내 고원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다. 빨리 시킨 대로 해. ─어이가 없군! 저 녀석은 나를 연안에서 고기나 잡는 통통배의 꼽추 선장으로 생각하고 있어. 주돛대의 중간활대를 내린다고! 흥, 멍청한 놈! 가장 높은 돛대 꼭대기의 관은 가장 세찬 바람에 대비하여 만들어졌고, 내 두뇌 꼭대기의 이 관은 지금 구름을 동반한 돌풍 속을 항해하고 있다. 돛을 내려도 될까요? 비겁한 놈만 폭풍이 불 때 두뇌 꼭대기의 관을 내리는 거야! 그런데 하늘은 왜 이렇게 시끄럽지! 배탈이 시끄러운 병이라는 걸 내가 몰랐다면 저 소리조차 숭고하게 받아들일 텐데. 속이 거북하면 약을 드시오, 약을!”
이 세계는 어딘가에 닻을 내리고 있는 건지 아닌지 궁금해. 하지만 만약 닻을 내리고 있다면 어마어마하게 긴 밧줄에 매달려 있겠지.
“후진하라! 오오, 모비 딕, 드디어 내가 네놈의 심장을 움켜잡는구나!”
그 전날 오후 늦게 ‘레이첼’호의 보트 세 척이 모선에서 4~5마일 떨어진 곳까지 고래 떼를 추적하여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급히 몰아대고 있을 때, 갑자기 모비 딕의 하얀 혹과 머리가 푸른 물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고래 떼와는 반대쪽인 바람 불어가는 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장비를 갖춘 네 번째 보트─예비 보트─가 즉시 내려져 모비 딕을 추격했다. 바람을 등지고 열심히 달려간 네 번째 보트는 가장 빠른 보트였고, 작살을 찌르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본선의 돛대 위에 있던 선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는 아주 먼 곳에 작은 점으로 줄어든 보트를 보았지만, 그때 하얀 물보라가 빠르게 번득이더니 그 후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흔히 있는 일처럼 작살에 맞은 고래가 추적자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달아난 게 분명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때는 좀 불안하기는 했지만, 아직 확실하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돌아오라는 신호기가 돛대에 내걸렸다. 어둠이 몰려왔다. 정반대 방향에 있는 네 번째 보트를 찾으러 가기 전에 저 멀리 바람 불어오는 쪽에 있는 세 척의 보트를 배에 올려야 했기 때문에, 본선은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그 네 번째 보트를 운명의 손에 맡겨둘 수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당분간은 그 보트와의 거리를 더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머지 선원들이 모두 무사히 배에 올라타자 본선은 배에 있는 돛을 다 달고─보조돛에 또 보조돛을 겹쳐 달고─미아가 된 보트를 찾아 나섰다. 기름솥에 불을 피워 봉화로 삼으며,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돛대에 올라가서 망을 보았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 충분한 거리를 달려 행방불명된 보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 이르자 배를 세우고 나머지 예비 보트를 내려 사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배를 몰고 얼마쯤 달리다가 또 배를 세우고 보트를 내려 수색하기를 새벽까지 되풀이했지만, 사라진 보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숨죽인 사냥꾼이 아직 낌새를 채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사냥감에 바싹 다가가자, 눈부신 혹의 전모가 또렷이 보였다. 그 혹은 독립된 별개의 생물처럼 바다를 미끄러져 갔고, 그 주위에서는 양털처럼 고운 초록빛 거품이 끊임없이 빙글빙글 맴도는 고리를 이루고 있었다. 혹 너머에는 살짝 치켜든 머리에 복잡하게 새겨진 거대한 주름이 보였다. 보드라운 터키 양탄자 같은 물결 위에는 그 넓은 우윳빛 이마의 하얀 그림자가 반짝거리며 머리보다 앞서 달렸고, 음악적인 잔물결은 장난스럽게 그 그림자를 따라가고 있었다. 뒤쪽에서는 고래의 줄기찬 항적이 만들어낸 움직이는 골짜기 속으로 푸른 물이 번갈아 흘러들고 있었다. 양쪽에서 빛나는 물거품이 올라와 고래 옆에서 춤을 추었다. 하지만 이 물거품은 하늘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다가 이따금 수면을 가볍게 스치며 지나가는 수많은 물새들의 가벼운 발가락 때문에 또다시 어지럽혀졌다. 흰 고래의 등에는 큰 상선의 페인트칠한 선체에서 솟아오른 깃대처럼 최근에 박힌 기다란 창이 자루가 부러진 채 꽂혀 있었다. 부드러운 발가락을 가진 새들이 구름처럼 하늘을 덮고 고래 위를 이리저리 스쳐 지나가다가, 이따금 그중 한 마리가 소리도 없이 그 장대에 내려앉아 흔들리면서 기다란 꼬리 깃털을 길쭉한 삼각기처럼 펄럭였다.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고래는 조용한 기쁨, 빠르고 힘찬 움직임 속에서 맛보는 평화로운 안정감에 싸여 있었다. 에우로파406를 납치하여 자신의 우아한 뿔에 매달고 헤엄쳐 가는 하얀 황소, 즉 제우스, 처녀를 계속 곁눈질하며 추파를 던지는 그의 아름다운 눈, 크레타 섬에 마련된 사랑의 보금자리를 향해 황홀할 만큼 빠른 속도로 거침없이 달리는 제우스, 그 위대한 최고신 제우스도 성스럽게 헤엄치는 저 아름다운 흰 고래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부드러운 옆구리에서 둘로 갈라진 물결은 일단 흰 고래를 씻어 내린 뒤에는 넓게 퍼져서 멀리 흘러갔다. 그 빛나는 양쪽 옆구리에서 고래는 유혹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 평온함에 형언할 수 없이 도취되고 유혹당한 나머지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공격한 사냥꾼이 있었던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이 회오리바람의 가면일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불운하게도 뒤늦게야 깨달았다. 너무나도 평온한, 유혹적일 만큼 평온한 고래여! 너를 처음 보는 사람들 앞으로 미끄러져 가는 고래여! 너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똑같은 수법으로 파멸시켰는가.
너무나 황홀한 나머지 박수치는 것도 잠시 중단한 파도를 헤치고, 그렇게 모비 딕은 고요하고 평온한 열대의 바다를 유유히 헤엄쳐 나아갔다. 그는 물속에 잠겨 있는 몸체의 흉포함을 아직은 다 드러내지 않았고, 소름 끼치는 아가리는 완전히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곧 몸체의 앞부분이 서서히 물에서 올라오더니 별안간 대리석 같은 몸으로 버지니아 주의 ‘내추럴 브리지’407처럼 높은 아치 모양을 그리고는 깃대 같은 꼬리를 경고하듯 공중에서 휘둘렀다. 이 거대한 신은 그렇게 자신을 드러낸 다음, 물속으로 가라앉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얀 바다새들은 공중에 멈춰 있거나 급강하하면서 고래가 남긴 요란한 소용돌이 위를 그리운 듯 떠돌고 있었다.
흰 고래는 이런 자세로 부드러우면서도 잔인한 고양이가 생쥐를 다루듯 가벼운 삼나무로 만들어진 보트를 뒤흔들었다. 페달라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팔짱을 끼고 이 광경을 바라보았지만, 호랑이처럼 누런 피부를 가진 선원들은 고물 끝으로 달아나려고 서로의 머리 위로 엎드러지고 곱드러졌다.
고래가 이런 악랄한 방법으로 불운한 보트를 희롱하자, 탄력 있는 뱃전은 안팎으로 넓어졌다 좁아졌다 했다. 모비 딕의 몸은 보트 밑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뱃머리에서 녀석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뱃머리는 말하자면 그놈의 몸 안에 거의 삼켜진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선장님.” 스타벅이 다가오면서 말했다. “엄숙한 광경이죠. 나쁜 징조입니다. 흉조라고요.”
“흉조라고? 흉조? 그런 말은 사전에서나 찾아봐! 신들이 인간에게 솔직히 말할 생각이라면, 정당하게 터놓고 말할 거다. 고개를 젓거나 노파들처럼 애매모호한 암시는 하지 않아! 꺼져!
“아아, 그래!” 스터브가 외쳤다. “그럴 줄 알았지! 너는 도망칠 수 없어. 계속 뿜어라. 네 분수공이 찢어질 때까지 뿜어라. 이 고래야! 미친 악마가 너를 노리고 있다! 최후의 나팔을 불어라! 네 허파에 물집이 생겨 부풀어 오를 만큼 힘차게 불어라! 에이해브가 네 피를 막아줄 테니까. 물방앗간 주인이 수문을 닫아 시냇물을 막듯이!”
“그래, 태양을 향해 마지막으로 뛰어올라라, 모비 딕!” 에이해브가 외쳤다. “너의 죽음과 너의 작살이 바로 가까이 있다. 이봐! 모두 내려와! 앞돛대에 한 사람만 남겨놓고 모두 내려와! 보트를 내려라! 준비!”
꺼져라! 더러운 바람아. 내가 바람이라면 이 사악하고 비참한 세계를 더는 돌아다니지 않을 거다. 어디든 동굴로 들어가 숨어버릴 거다. 하지만 바람은 역시 고귀하고 씩씩하다. 바람을 정복한 자가 있었던가? 어떤 싸움에서나 마지막에 가장 통렬한 공격을 가하는 것은 바람이다. 맹렬한 기세로 달려가서 바람을 창으로 찔러보라. 창은 바람을 통과할 뿐이다. 하! 비겁한 바람은 벌거벗은 인간을 때리기는 하지만, 자신은 단 한 대도 가만히 서서 맞으려 하지 않는다. 바람보다는 차라리 에이해브가 더 용감하고 고귀하다. 바람이 몸뚱이를 갖고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을 가장 화나게 하고 약 올리는 것은 모두 몸뚱이가 없다. 하지만 물질로서는 몸뚱이가 없지만, 힘으로서는 실체를 갖고 있다. 거기에 가장 특별하고 가장 교활하며 가장 악의적인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다시 단언하건대, 바람이란 존재에는 매우 찬란하고 우아한 무언가가 있다. 적어도 그 따뜻한 무역풍은 맑은 하늘에서 강하고 꾸준하며 활기차면서도 온화하게 곧장 불어대고, 바다의 비열한 조류가 아무리 방향을 바꾸고 갈지자로 흘러도, 육지에서 가장 거대한 미시시피 강이 막판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고 진로에서 벗어나도, 무역풍은 절대로 방향을 바꾸지 않고 목표를 향해 곧장 불어간다. 영원한 양극에 맹세코! 내 배를 똑바로 불어 보내는 이 무역풍, 또는 그와 비슷한 무언가가─절대로 변하지 않고 힘으로 가득 찬 무언가가 배처럼 용골을 가진 내 영혼을 불어 보내고 있다. 바람을 위해 건배! 돛대 꼭대기에 있는 망꾼들아, 무엇이 보이는가?”
거의 모든 선원이 뱃머리에서 하는 일 없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일을 하다 말고 달려왔기 때문에, 그들의 손에는 망치, 판자 조각, 창, 작살 따위가 아무렇게나 쥐여 있었다. 그들의 눈은 마법에라도 걸린 듯 모두 고래한테 쏠려 있었다. 고래는 그들의 운명을 쥐고 있는 머리를 이상야릇하게 좌우로 흔들어 반원형으로 넓게 퍼지는 거품 띠를 앞으로 보내면서 돌진해 왔다. 박해에 대한 보복, 즉각적인 복수, 영원한 악의가 고래의 온몸에 가득 차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는데도, 그 견고한 버팀벽 같은 하얀 이마는 드디어 오른쪽 뱃머리에 부딪쳐 사람도 선체도 모두 비틀거렸다. 어떤 사람은 고꾸라져 넘어졌고, 작살꾼들의 머리는 돛대 꼭대기에서 어긋난 돛머리처럼 황소같이 굵은 그들의 목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작살에 찔린 고래는 앞으로 달아났고, 밧줄은 불이 붙을 것처럼 빠른 속도로 홈에서 미끄러져 나가가다 엉클어졌다. 에이해브는 허리를 구부려 그것을 풀려고 했다. 그래서 엉킨 밧줄을 풀기는 했지만, 밧줄의 고리가 허공을 날아와 그의 목을 감았기 때문에, 그는 터키의 벙어리들이 희생자를 교살할 때처럼 소리 없이 보트 밖으로 날아갔다.
이제 소용돌이가 동심원을 그리며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보트와 그 보트의 선원들, 물 위에 떠도는 노와 작살 등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그 안으로 끌어들여 뱅글뱅글 돌면서 ‘피쿼드’호의 작은 나뭇조각 하나까지도 남김없이 삼켜버렸다.
마지막으로 몰려든 파도가 서로 뒤섞이면서 주돛대 꼭대기에 매달려 있던 인디언의 머리를 뒤덮자,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똑바로 서 있는 활대 몇 뼘과 길게 펄럭이는 깃발 몇 미터뿐이었다. 파괴적인 물결에 거의 닿다시피 한 깃발은 얄궂게도 파도와 조화를 이루어 조용히 굽이치고 있었다. 그 순간, 붉은 팔과 뒤쪽으로 치켜든 망치가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서서히 가라앉는 활대에 그 깃발을 더욱 단단하게 못질하는 몸짓을 했다. 물수리 한 마리가 별들 사이에 있는 보금자리에서 내려와 조롱하듯 돛대 꼭대기의 돛머리를 따라다니고 깃발을 쪼며 타슈테고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새의 넓은 날개가 우연히 망치와 나무 사이에 끼어들었다. 물속에 잠긴 야만인은 그 순간 공기의 떨림을 느끼고, 죽음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망치질을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하늘의 새는 대천사처럼 비명을 지르면서 오만한 부리를 위로 쳐들었고, 사로잡힌 몸뚱이는 에이해브의 깃발에 싸여 에이해브의 배─그 배는 악마처럼 하늘의 살아 있는 일부를 끌어당겨 투구처럼 쓰지 않고는 지옥으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와 함께 가라앉았다.
둘째 날, 배 한 척이 다가와서 마침내 나를 건져주었다. 그 배는 구불구불 항해하고 있던 ‘레이첼’호였다.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아 헤매다가 엉뚱한 고아를 발견한 것이다.
<모비 딕>은 SNS로 알게 된 지인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다. 추천을 받은 것은 작년 여름? 가을? 쯤이었으나 워낙 읽어야 할 책이 많기도 하고, 벽돌책에 접근하기 두려워 미루고 미루었다. 2024년이 되어 모비딕을 올해 안에 꼭 읽어보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2월에 13시간 장기비행을 할 예정이니 비행기에서 읽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여 그 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결국은 이 새로운 나라에 자리를 잡고도 2달이 지난 이제서야 완독을 하게 된 것이다. 약 60일의 시간이 걸렸다. 720페이지의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는데 나는 총 57일이 걸렸다.
이 책이 어떤 내용일 것이라고 특별히 예상을 하진 않았으나, 아마도 고래의 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결국은 이 고래와 싸워 고래를 잡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반에는 이슈메일이라는 가명의 인물이 포경선을 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배 위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고래를 해부해가며 고래의 세세한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배들을 만나 교류하는 내용이 주요 내용을 이루었다. 이야기의 거의 끝에 다다랐을 쯤, 그러니까 고작 30페이지 정도 남았을 쯤에 주인공은 자신이 탄 피쿼드 호의 에이해브 선장이 목표로 했던 바다의 거대한 하얀 악마, 모비 딕을 마주하게 된다.
작품에 기대한 것은 바다를 헤엄치는 생물들과 바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역동적이고 감성적인 비유들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나 잔혹한 인간의 시선으로 바다 생명체들을 사냥하고, 혹은 원망하고 증오하는 시선이 많아서 읽는 내내 불편했다. 고래가 어떻게 숨쉬는지, 어떻게 바다에서 살아가는지, 다른 생물들과 어떻게 교감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생활 주기는 어떤지, 패턴은 어떤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할 줄 알았다. 뱃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다 생물들의 삶을 이야기할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아니라면 거대한 고래와 싸우는, 모험적인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다. 전반에 언급한 예상보다는 사실 후자가 더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도대체 모비딕은 언제 만나요? 책을 절반이나 읽었는데 아직도 안나옴." 하는 SNS의 글을 봤을 때, 나는 이제 1/3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웃어 넘겼다. 그 시기에는 이슈메일이 배에 올라타 뱃사람들과 어울려 놀며 배 위에서의 생활에 적응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반으로 갈수록 고래의 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해부학에 따른 부위별 지식, 어떻게 고래를 해체하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혹은 어떻게 고래를 죽였고, 어떻게 그 고래에게 상처를 주었는지에 대한 폭력적인 언급들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보고 많이 힘들었다. 고래잡이에 대한 책을 골라 읽은 주제에 고래를 잡는 것에 대해 슬픔을 느끼다니 아이러니하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모비딕이 자신을 평생 따라다닌 에이해브를 바다 속으로 끌어들이고, 피쿼드호를 박살낸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내가 느끼기에 모비딕은 에이해브를 죽이기 위해 그렇게 행동한 것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인간은 거대한 자연을 상대로 혼자서 분노하고 혼자서 증오하고 혼자서 용기를 갖는다. 그것을 모험이나 영웅심이라고 느끼고는 후에는 절망한다. 죽어나가거나 가까스로 살아남아 자연을 저주하고 신이 자신을 버렸다고 원망한다. 그들이 믿는 신은 인간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자연을 만들어낸 것일텐데... 책의 99%가 고래에 대한 호승심과 분노에 대해 다루고, 마지막에 가서 고작 그 1%만을 이용해 사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아주 작디작고 연약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가 주는 교훈과 그 강력한 경고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서술방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가 어떻게든 인간의 승리를 위해 이야기를 이끌다가, 마지막에 가서 마음을 바꾼걸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드는 탓이다.서양인들은 자연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동양인들이 자연에 어우러져 그 속에 녹아들려고 했던 것과는 다르게, 서양인들은 자연을 두려워했고, 그렇기에 언제나 그들이 그려내는 자연은 경외로 가득차고, 공포스럽고, 거대하다고 했다. 그것이 용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라고 했다. 동양은 용이라는 존재가 인간을 보호하거나 비를 내려주는 신성한 존재이고 수호적이고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서양의 경우에는 불을 내뿜고 보석을 좋아하는 욕심이 많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미치광이이거나 혹은 살인을 좋아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서양은 그런 자연을 상대로 전쟁을 했다. 그래서 결국 자연을 발밑에 두고 산업혁명에 성공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오만은 끝이 없고, 아무리 거대하고 아무리 위대한 자연의 일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인 자신의 영웅적인 손짓 하나로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모비딕은 굉장히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고, 반전을 가지고 있으며,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이 어째서 고래에 대한 모든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만 이건 죽은 고래에 대한 책이다.<모비딕>은 성경에 대한 비유가 아주 많이 나와있는데, 나는 무교인데다가 성경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는 탓에 읽는 내내 억울해하면서 넘어간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나는 항상 병렬독서로 벽돌책+일반두께의 책+전자책+오디오북 을 읽는데, 모비딕을 읽고 나니 아무래도 성경을 쭉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하다면... 성경을 다음 '벽돌책'의 카테고리에 넣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나는 단 한번도 성경을 읽어보려는 시도를 성공한 적이 없다. 무교에다가 과학신봉자다보니 특정 부분들에 대해서 반박을 하게되는데, 심지어 성경 문체가 너무 어려워서 읽다가 골아떨어지기도 한 적이 많았다(ㅠㅠ)... 최근에 '읽기 쉬운 성경....'이런 책을 구하게 되어서 한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성경을 읽은 후라면 <모비딕>을 더 재미있고 감명깊게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이 소설의 첫 문장인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도 성경적인 의미를 담아 읽음과 동시에 번역된 문장이라고 한다. 난 성경을 모르니 이슈메일이 누구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다 읽고난 후 역자의 말을 읽어보니 그런 내용이 있어서 또 혼자 부글부글 속을 끓였다. 성경을 모르면 서양 소설, 영화, 드라마를 볼 때 꿰뚫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ㅡㅡ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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