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2. ~ 2023.11.22. (1)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김혜순 저
문학과지성사 출판
2022년 11월 20일 출간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문학과지성 시인선 567권. 지배적 언어에 맞서는 몸의 언어로 한국 현대시의 미학을 갱신해온 ‘시인들의 시인’, 김혜순의 열네번째 시집. 김혜순의 시집은 단순히 한 시인의 저작을 넘어 각 시기 한국 현대시의 가장 첨예한 지점을 이어낸 별자리, 시적 실험의 아카이브와 같다.
시인은 ‘여성의 존재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를 멈추지 않으며 ‘고유한 시적 성취’를 이루어왔다. 또한 ‘여성의 몸에 실재하는 감정과 정체성에 충실하면서, 다정함과 격분이 공존하는 목소리로 악몽과 어둠을 관통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적 황홀을 열어 보이며’ 또렷한 국제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인은 세상의 죽음을 탄식한다. 1부는 시인의 ‘엄마’가 아플 때와 돌아가신 후에 죽음을 맴돌며 적은 비탄의 시들이다. 2부에는 코로나19라는 전 인류적 재난을 맞이한 시대적 절망이, 3부에는 죽음의 바깥에서 텅 빈 사막을 헤맨 기록이 담겼다. 시인은 사적으로 경험한 병과 죽음을 투과하여 세상의 죽음을, 그 낱낱의 죽음에 숨겨진 비탄 하나하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죽음이란 ‘삶 속에서 무한히 겪어나가야 하며 무한히 물리쳐야 하는 것, 살면서 앓는 것’임을 김혜순의 시를 통해 우리는 마침내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 다음 세상의 모든 저녁이 엄마의 피부로 만든 텐트 아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엄마의 얇은 피부 아래서 살게 되었다.
언제나 어떤 죽은 생명체가 나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 얼굴을 내 손으로 감싸면 엄마의 얼굴부터 만져졌다.
흑마의 검은 얼굴 중에서
저 입술에 검은 장갑을 끼워줘. 검은 입술이 내 뒤통수 를 핥는다.
휙 뒤돌아보면 저녁의 흑마 대가리.
머리숱 검고 눈 코 입 검은 흑마의 얼굴. 내리깐 눈. 속 눈썹은 너무 길어요. 검은 갈기가 흩날려요. 유도 찾지 못할 만큼 까만, 밤보다 더 까만, 내 얼굴을 한 번 싸고 두 번 싸고, 백 번 싼 검은 보따리 속에서 눈을 뜨면, 흑연의 정면. 흑마의 얼굴. 내 눈동자빛 내 얼굴.
죽었군요, 벌써, 내가.
불면의 망원경
엄마는 이제 테두리가 없고
내 그리움도 테두리가 없다
자, 우리 테두리 없이 만나는 연습!
엄마의 눈빛이
내 왼 팔목에 머물자
내 왼 팔목에서
젖은 눈동자가 하나 돋아 나온다
그 눈동자가 깊은 호수보다 깊다
우리는 망원렌즈를 대고
마주 보는 것 같아
울지 마라
울면 땅으로 떨어진다
천 배만 배 거인 여자가
호수에 입술 갖다 붙이고
물 먹는 소리
투명한 덩어리가
테두리 없는 목구멍 속을 꿀꺽꿀꺽
넘어간다
나는 왼 팔목에
호수가 박힌
새
내 왼손과 내 어깨 사이가 천리만리인 새
나는 몸이 떨리도록
시원한 음료를 평생토록 마시고 싶다
밤하늘 높이 뜬 새가
산맥 위에 올려진
지구에서 노선이 제일 긴 버스를 마주 보고 있다
나는 산맥처럼 펼쳐진 옷소매를
하염없이 잡아당긴다
나는 초등학교 국어시간에서부터 시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을 해왔다. 소설은 어떻게든 읽히지만 시는 그렇지 않았다. 공감을 해야하는데 공감을 할 수 없고, 종종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숨은 뜻을 읽어내지 못하기도 했다. 시는 많은 감정과 의도가 축약되어있는 짧은 글이고, 때로는 난해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점점 시라는 문학은 나에게 시험공부를 위해 존재할 뿐인 장르였고, 어른이 되면서는 아마 내가 감정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MBTI가 유행한 이후부턴 "난 T라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굳이 시집을 읽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지하철 역이나 버스 정거장, SNS, TV광고 등을 보면 시를 접할 수 있었다. 시는 때로 고작 한 줄의 짧은 문장으로 나를 울리기도 했고, 때로는 나를 웃게도 했다. 시는 이렇게나 쉽게 공감을 일으키고 감정을 끌어낸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까지 시집을 읽지 못했을까?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은 후, 우리 독서모임의 방식에 맞춰 그 책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책을 고르기 위해 온라인 서점에 접속했다. 나는 <아침 그리고 저녁>이 시처럼 느껴졌고, 그렇기에 관련 도서를 시집으로 고르고자 했다. 부모님의 죽음 혹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집은 너무나도 다양한 제목을 가지고 있고, 소설과는 다르게 책 한 권에 수십에서 수백 개의 시를 담고 있다. 물론 시집에도 주제가 있겠지만 나는 시집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자세히 알기 어려웠다. 내가 소설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단편집과 장편집이라는 시스템을 이해하거나, 옴니버스나 시리즈물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시집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잘 몰랐으니까. 그러던 중 나에게 익숙한 표지인 문학과지성사의 시집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러다가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라는 제목은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자극적인 제목이었다.<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는 내가 시집을 펼쳐 읽어볼 순 없었지만(온라인 서점이라서), 책소개와 일부 시의 구절들을 보고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시집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책 소개대로 시인은 세상의 죽음을 탄식한다. 1부는 시인의 ‘엄마’가 아플 때와 돌아가신 후에 죽음을 맴돌며 적은 비탄의 시들이다. 2부에는 코로나19라는 전 인류적 재난을 맞이한 시대적 절망이, 3부에는 죽음의 바깥에서 텅 빈 사막을 헤맨 기록이 담겼다. 라고 할 수 있다.내가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시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절망하거나 힘듦을 호소하거나, 안타까움과 절망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시가 나에게는 너무 어렵다는(난해하다는) 감상을 주었고, 그러다보니 시 하나하나를 이해하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시를 읽으면서 정확한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을 뿐이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작가가 이 시를 쓰면서 가졌을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시집의 제목에서부터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돌지? 라고 말하는게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관계성과 감정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제목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형태의 모녀관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엄마의 친딸로 태어나 평생 엄마와 함께 살아온 나로서는... 만약 내가 우리 엄마의 죽음을 눈 앞에 두게 된다면, 나는 이제 "누굴" 의지하고 "누굴" 바라보며 살아야 할지 막막할 것 같다. 이런 감정은 <H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매우 유사한데, <H마트에서 울다>는 너무 노골적으로 엄마의 죽음을 표현하고 언급해서 마치 내 엄마가 죽은 것과 같은 고통과 슬픔을 느끼며, 오열하며 책을 읽었었다. 하지만 시집이라 그런지 (어쩌면 내가 잘 이해를 못해서일지도), 이 시집을 읽으면서는 죽음에 대한 감정을 느껴도 그리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시집을 좋아하는 SNS의 지인에게 물어보니, 시를 처음 읽기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시집일 수 있다며 몇 가지 쉽게 읽을만한 시집을 추천해주었다. 내가 시집을 많이 읽고, 언젠가 시와 시인들을 잘 이해하고 시들을 읽고 드는 감상을 한 자, 한 자 풀어낼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이 시집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직접 겪은 죽음과 슬픔, 세상에 대한 절망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이렇게 풀어낸 시들이 독특하면서도 좋다고 느껴졌는데, 내가 ...배움이 짧아서!(!!!!) 교양이 부족해서!!!(!!!!!!!!) 시를 잘 읽어내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다ㅠㅠ. 언젠가 이 시집을 읽으며 김혜순 시인님을 이해하고 그 감정과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시집은 결과적으로 <아침 그리고 저녁>과는 좀 다른 부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에 <H마트에서 울다>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세 책 모두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아침 그리고 저녁>은 부모인 "나"가 죽은 경우,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는 애정하던 "엄마"가 죽은 경우, <H마트에서 울다>는 원망하던 "엄마"가 죽은 경우다. <아침 그리고 저녁>이 평온한 자연의 분위기인 이유는 어쩌면 죽은 이가 당사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한 평생 살아오며 행복한 삶을 살고, 후회할 일 없이, 또는 후회하더라도 돌이켜보면 그것이 억울한 점 없음을 되돌아보는 것은 그리 슬픈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요한네스가 삶을 마무리하며 자신이 죽었음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전체적인 삶을 되돌고, 딸 싱네를 붙잡고자 하면서도 그대로 죽음의 경계를 넘어 나이지만 내가 아니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남아있는 싱네는 어떤가? 싱네는 아버지를 걱정하고, 왜 하필 오늘 이렇게 바빴을지, 아버지를 더 빨리 뵈러 가지 못한 이유가 뭘지 스스로 자책하다가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나. 남겨진 자들의 감정이 어떤지 나는 잘 알아서... 이 시집이 싱네의 마음으로 쓰여진 시집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이래저래 마음이 안좋았다. 다만 부모, 엄마의 다가오는 죽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며 자식으로서, 딸로서 우울과 힘듦을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H마트에서 울다>가 이 시집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다른 책과의 유사성이나 연관된 감상을 남기며... 독후감을 마무리하눈걸루....... 진짜 어려운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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