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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2023.11.19. ~ 2023.11.19. (1)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어니스트 헤밍웨이 저
김욱동 역
민음사 출판
2012년 1월 2일 출간

소설/시/희곡 > 세계문학


먼 바다에서 펼쳐지는 노인의 고독한 사투!

미국 현대 문학의 개척자라 불리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 퓰리처상 수상작이자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로, 작가 고유의 소설 수법과 실존 철학이 집약된 헤밍웨이 문학의 결정판이다. 한 노인의 실존적 투쟁과 불굴의 의지를 절제된 문장으로 강렬하게 그려냈다. 십여 년 동안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했던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적 생명력을 재확인하고 삶을 긍정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넘어 인간과 자연을 긍정하고 진정한 연대의 가치를 역설한다. 감정을 절제한 문체와 사실주의 기법, 다양한 상징과 전지적 화법을 활용하여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돛은 여기저기 밀가루 부대 조각으로 기워져 있어서 돛대를 높이 펼쳐 올리면 마치 영원한 패배를 상징하는 깃발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제게 자명종 같아요.” 소년이 말했다.
  “내 나이가 자명종인 거지. 한데 늙은이는 왜 그렇게 일찍 잠에서 깨는 걸까? 하루를 좀 더 길게 보내고 싶어서일까?” 노인이 대꾸했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알고 있는 건, 나이 어린 애들은 늦도록 곤하게 잠을 잔다는 것뿐이에요.” 소년이 대답했다.

노인은 바다를 늘 ‘라 마르(La mar)’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이곳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바다를 부를 때 사용하는 스페인 말이었다. 물론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바다를 나쁘게 말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조차 바다를 언제나 여자인 것처럼 불렀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몇몇, 낚싯줄에 찌 대신 부표를 사용하고 상어 간을 팔아 번 큰돈으로 모터보트를 사들인 부류들은 바다를 ‘엘 마르(El mar)’라고 남성형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들은 바다를 두고 경쟁자, 일터, 심지어 적대자인 것처럼 불렀다. 그러나 노인은 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말했다.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생각했다. 달이 여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바다에도 영향을 미치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다른 어부들은 조류가 흐르는 대로 미끼를 내맡겼고, 또 어떤 어부들은 때로 180미터가 되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110미터밖에 되지 않는 곳에 미끼를 놓아두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난 정확하게 미끼를 드리울 수 있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저런 고기는 여태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 하지만 나는 저놈을 죽여야만 해. 하지만 별들은 죽이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지 뭐야.”
  날마다 사람이 달을 죽이려 해야 한다고 상상해 봐,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아마 달은 달아나 버리고 말 거야. 하지만 인간이 날마다 해를 죽이려 해야 한다고 상상해 봐. 우리는 운 좋게 태어난 거야,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고기야, 난 이렇게 멀리 나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말이다. 고기야, 미안하구나.” 그가 말했다. 

“고기는 이제 반동강이가 되었구나. 한때는 온전한 한 마리였는데. 내가 너무 멀리까지 나왔어. 내가 우리 둘을 모두 망쳐 버렸어.”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너랑 나 둘이서 많은 상어를 죽이고 다른 고기들도 죽이지 않았느냐. 고기야, 지금까지 넌 얼마나 많이 죽였니? 대가리에 뾰족한 창날 같은 주둥이를 공연히 달고 있는 건 아니잖아.”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서 내용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던 책이었는데, 직접 읽으니까 사실 좀 의아했다. 철학적인 내용이 들어있고, 시적인 문장들이 작품의 깊이를 더해준다는 책소개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그렇게 큰 감동이나 작가의 철학적 깊은 의도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데미안>과 같은 작품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이 책이 고전문학 중 유명하고 큰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쉬웠는데, <노인과 바다>는 생각보다 나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해서 좀 아쉬웠다. 퓰리처상 픽션 부분(1953)과 노벨 문학상(1954)을 수상하기도 했고, 현대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인데도 나는 왜 큰 감흥이 없을까.. 내가 모르는게 많아서 그런 걸까? 하고 이래저래 많이 검색해봤다.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가 있는 이 작품은 어떤 영화 감상평에 보면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인간의 위엄과 존엄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물으며, 어떤 독후감에서는 많은 노력들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기사에서는 "노인은 고난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시련을 인내했다. 노인이 보여준 휴머니즘의 정수는 독자의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물고기와 투쟁하는 산티아고의 모습은 헤밍웨이의 정신세계였을 것이다."라고 한다.

나는 <노인과 바다>를 읽는 중간중간에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노인의 여정과 만새기의 존재, 그리고 그것의 가치와 노인에게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결과적으로 노인은 만새기를 거의 잃고 육지로 돌아왔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사람들은 노인이 정말 큰 고기를 잡았었다는 것을 인정했고, 소년도 노인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읽은 후에는... 어쩌면 내가 너무나 물질주의적이고 세속적이어서 큰 감흥을 얻지 못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무수한 노력을 하더라도 나에게 허망함만을 안겨주는 무가치한 노력의 결과로 인해 얻는 것은 오직 교훈 뿐이라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다. 거기서 어떻게든 생각을 틀어보면, 나의 노력을 누군가는 알아준다.는 것 외에는 크게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꽤나 물질만능주의적인 의견이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노력을 하면 그 노력만큼 가치있는 물질을 얻고, 그 물질로 삶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그저 교훈을 주고 좋은 말을 하는 것 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세상이 되었다. 3달 가까이 아무런 득 없이 생활하기는 어렵고, 누군가는 배를 곪으며 구걸을 하거나 도둑질을 한다. 마치 <레미제라블>의 장 발장처럼 말이다. 특히나 21세기의 사람에게 물질의 가치와 노력의 물질화가 얼마나 중요한가! 어쩌면 ,... 그래서 나는 70년 전의 작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에게서 큰 교훈을 얻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세속적인 탓에!(흥칫)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음에도 여전히 이 소설을 자세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데미안>때와 같은 허탈함을 느끼게 한다. 문학과 철학의 깊이는 깊은데, 나의 지식의 깊이가 너무 얕다.... 오늘두 열심히 논문을 찾아본다~
김미정. (2016). 헤밍웨이의 ‘자아통합감’(ego-integrity) 재건의 맥락에서 읽는 『노인과 바다』. 현대영미소설, 23(2), 79-102.
국가연. (2007).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연구.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8, 57-72.

<노인과 바다> 또한... 데미안처럼 책을 좀 더 많이 읽게 된 후에 다시 시도해봐야겠다~ 내년 연말쯤에 읽으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