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 14. ~ 2023. 09. 14. (1)
극장 앞에서 만나 - 교차와 연대의 영화들
신승은 저
오월의봄 출판
2023년 6월 14일 출간
에세이>예술에세이
영화감독이자 싱어터라이터로 활동 중인 저자 신승은의 첫 영화에세이가 출간됐다. ‘교차’와 ‘연대’라는 두 키워드 아래 30여 편의 영화를 골라 촘촘히 보고 읽어낸다. 주로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어린이,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을 밀도 있게 담아내거나, 정치, 환경, 자본주의 산업, 예술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와 씨름하는 영화들을 다뤘다. 특히 국내외의 독립영화에 큰 비중을 두며 영화에 대한 넓고 깊은 시선을 발휘한다.
저자는 그동안 관성적으로 배제되어온 소수자들의 서사를 영화가 어떻게 포착해내고 또 그에 감응하는지, 영화 내부의 문법을 세밀히 파고드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의 글들은 우리 관객으로 하여금 그 영화들을 단순히 관조하는 데 머무르지 않도록 한다. 무엇보다 ‘앵글은 태도를 담는다’는 말 속에는 영화와 관계 맺는 저자의 태도와 방식이 담겨 있다. 그는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느냐보다, ‘어떻게’, 즉 어떤 과정과 연출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느냐에 더 관심을 둔다. 또한 영화가 영화만의 고유한 문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불평등의 세계를 깨나가는 작업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 역시 그 과정에 긴밀히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톰보이>의 카메라는 인물들을 핸드헬드(handheld)로 끈질기게 따라간다. 오래도록 톰보이의 뒷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른 역할을 맡은 얼굴 또한 화면을 가득 채워 보여주기도 한다. 클로즈업 때문에 관객은 인물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소한 감정까지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톰보이는 계속 미묘하고, 어디로든 오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데 관객은 이를 멀리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꾸준한 관심으로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연대 기금을 보태는 등 이리스에게 말 한번 걸어주는 방식으로 행동하길 바란다. 감히 이리스의 앵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클로즈업으로 이리스를 바라볼 수는 있지 않을까? 단 아이레벨(인물 눈높이에서 촬영하는 것)로 바라보아야 한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닌 연대이므로.
예술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슬픈 일에도 기쁜 일에도 투쟁하는 자리에도 함께해야 한다. 문학으로 저항할 수 있으며 연극으로 투쟁할 수 있다. 음악으로 분노할 수 있으며 영화로 연대할 수 있다. 예술이 가진 힘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과 이를 두려워 검열하려는 자들은 양극단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예술을 정치로부터 분리시키려한다는 점에서 같다.
2014년에 단편영화인 <타임머신>으로 제 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데뷔한 신승은 감독은 <마더 인 로>, <프론트맨>과 같은 단편영화를 제작하여 다양한 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다. 나에게 익숙한 필모그래피로는 문소리 배우 주연의 <여배우는 오늘도> 이다. 이 작품에서는 연출부로 작업하였다. 영화로는 나에게 생소한 분인데, 이래저래 알아보니 에세이나 음반도 많이 출판하였다. 책을 읽는 내내 뚜렷한 의견 전달과 자신의 전문분야에 맞춘 센스있는 비유와 설명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 싱어송라이터, 영화감독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는 분이어서 그렇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되었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고, 영화를 평론할 정도의 풍부한 견해가 없는 편이기 때문에 종종 이런 책들을 찾아본다. 영화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쓴 에세이말이다. 이 책을 구매할 당시에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작가들과의 대화>를 구매하려고 했는데, 다른 책들을 사면서 그 책은 후순위로 밀리고, <극장 앞에서 만나>가 장바구니에 담겼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요나스 메카스가 약 20년동안 뉴욕 빌리지 보이스에서 매주 영화작가들과 나눈 인터뷰 중 일부를 수록한 책은 나에게 너무나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였지만, "교차와 연대라는 두 키워드 아래 30여 편의 영화를 골라 촘촘히 보고 읽어낸다. 주로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어린이,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을 밀도있게 담아내거나, 정치, 환경, 자본주의 산업, 예술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와 씨름하는 영화들을 다뤘다." 라고 설명되는 이 책은 나를 끌어당겼다.
책은 28편의 영화와 함께 특정 주제로 묶어 작가의 의도와 함께 인용되고, 촬영 방식으로 인용된다. 예를 들어, 영화 <톰보이>가 성정체성 속에서 사회의 규제된 틀을 어려워하고 그 틀에 자신을 맞추지 못해 끊임없이 부딪혀 다쳐가며 앓거나 성장하는 이야기를 한다면, 작가는 "<톰보이>의 카메라는 인물들을 핸드헬드(handheld)로 끈질기게 따라간다. 오래도록 톰보이의 뒷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른 역할을 맡은 얼굴 또한 화면을 가득 채워 보여주기도 한다. 클로즈업 때문에 관객은 인물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소한 감정까지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톰보이는 계속 미묘하고, 어디로든 오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데 관객은 이를 멀리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앞서 말한 듯, 나는 영화의 촬영 기법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감독이 의도하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시선의 방향들을 유추하고,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유추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면 영화를 다 본 후에, 인물에 대한 감상, 인물의 감정에 대한 나의 기분, 영화가 언급한 사회적 문제, 감독의 연출 방식(연출 센스) 같은 것 정도를 언급하는 것이 전부이다. 내게 부족하고 내가 원했던 방식으로 영화를 설명해 주는 것이 나를 정말 흥미롭고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영화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데, 왜 엄마가 나를 나가서 놀지 못하게 하는지에 대한 짧은 영화도 있고, 우리가 우주로 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는 긴 영화도 있다. 단순히 흥미와 재미만을 위해 3시간을 쓰는 영화가 있다면, 감독이 변화시키고 싶은 사회와 인간사에 대해 30분 동안 떠들어대는 영화도 있다. 난 어떤 영화가 더 좋은 영화고 어떤 영화가 더 나쁜 영화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에 대해서는 말한다. 물론 나쁜 영화는 있다. 가학적인 즐거움과 흥미를 위해 피해자를 발생시키는 폭력적인 영화들이 나쁜 영화다.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폭행, 강간, 살해당하는 여성 피해자가 발생한다고 해서 그 영화가 무조건 나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설명하지 못한 것이니 못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세상엔, 세상에는 정말.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들이 많다. 내가 3시간 내내 배를 붙잡고 웃고, 환상적인 CG를 보고 놀라며 보더라도 실은 그 영화가 강압, 지배, 폭력, 탄압에 대해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영화들은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비족에게서 식민지배 피해국을 보게 된다. 우리는 도비를 보며 노예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영화를 통해 어떠한 사상을 읽게되고, 영화가 가슴 속에 뿌리내린 문제점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이런 영화들은 잘 만든 영화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약 서른개의 영화도 그런 영화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은 더 좋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스텐바이, 웬디>는 단순히 자신의 글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바보같고 웃긴 모습을 보여주는 일대기가 아니다. 한 사람이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어떻게 외면당하고, 어떻게 나아가는지, 그리고 영화를 본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더>라던가 <아이앰샘>같은 영화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말한다. 예술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예술은 어떠한 발화제이자 촉매제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사람의 감정을 끌어 모으고, 흥미를 끌어 연대하게 한다. 때로는 교차하기도 하지만 충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슬픈 일에도 기쁜 일에도 투쟁하는 자리에도 함께해야 한다. 문학으로 저항할 수 있으며 연극으로 투쟁할 수 있다. 음악으로 분노할 수 있으며 영화로 연대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가 말하는 사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그 이상으로 내가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된 것 같았다.
이 책을 사기를 정말 잘 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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