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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

<해변에서> 네빌 슈트

2023. 10. 03. ~ 2023. 10. 08. (6)

 

해변에서

네빌 슈트 저

정탄 역

황금가지 출판

2011년 08월 05일 출간

 

소설>영미소설>SF/과학소설


핵전쟁 후 인류의 종말을 담담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세기말 소설의 대표작 『해변에서』. 핵전쟁 후 방사능에 의해 멸망하는 세계와 최후에 이르는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그레고리 팩, 에바 가드너 주연의 대작 영화 <그날이 오면>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야기는 핵전쟁으로 지구 북반구가 순식간에 멸망하고 남아프리카, 남미, 호주 등의 도시만이 살아남은 시점에서 시작된다. 시시각각 내려오는 방사능에 의해 남반구의 도시들도 하나씩 파멸에 이른다. 호주에 피신해 있던 미해군 잠수한 스콜피언 호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북으로 잠항을 시도하는데….

 

엘리엇의 시 <텅 빈 사람들>의 마지막 구절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쿵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작품은 인류의 최후를 소란스럽지 않게 담아냈다. 종말이라는 끔찍한 상황과는 별개로 이를 기다리는 인류의 평안한 모습을 보여주며, 폭풍전야의 행복을 통해 인류의 최후를 더욱 안타깝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절망적인 결말을 통해 핵과 방사능의 위험성을 일깨운다.


"나는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공평하지 않아요. 남반구에서 어느 누구도 폭탄을 떨어뜨린 적이 없어요. 수소 폭탄이든 코발트 폭탄이든 그 어떤 폭탄이든 말이에요. 우리는 책임이 없잖아요. 1만 킬로미터 밖에서 우리와는 상관없이 전쟁을 벌인 나라들 때문에 왜 우리가 죽어야 하죠? 정말이지 불공평해요."

 

"그 누구도 북반구의 현재 모습을 영원히 알지 못할 겁니다. 신만 빼고"

 

"역사의 문제입니다. 누군가는 계속 기록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가지금 이 시간을 기록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존 오스본이 말했다.
"난 그런 사람이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한번 알아봐야겠군요. 결국, 아무도 읽지 않을 기록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미국인이 말했다.
"그래도 기록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지. 그것을 읽을 시간이 단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도.”

 

방파제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장교 식당이 퓨젓 사운드 방면으로 서 있었다. 육지에 오를 때는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이제 보니 뭔가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가야 하는 길에서 50미터 정도 벗어나 그쪽으로 향했다. 건물에는 전망이 탁 트인, 깊숙한 베란다가 있었다. 그곳에서 파티가 열린 흔적이 있었다. 카키색 개버딘을 입은 남자 다섯이 여자 두 명과 함께 탁자를 둘러싼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 다. 한 여자의 여름옷이 미풍에 나부꼈다. 탁자에는 하이볼과 예스러운 유리잔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착각을 일으키고 재빨리 다가갔다. 그러나 이내 공포에 사로잡혀 멈춰섰다. 그 파티는 1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었다.

 

"모두 죽었습니다. 함장님. 하지만 함장님도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집에 가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침대에서 돌아가신 후 였습니다. 뭔가를 복용한 것 같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여자를 찾아 갔는데, 그녀도 죽어 있더군요.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실수였습니다. 개도 고양이도 새도 전부 다 죽은 것 같습니다. 그것 말고는 모든 게 예전 그대로입니다. 잠수함을 빠져나온 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집 에 와서 기쁩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내 차도 있고 휘발유도 구했습니다. 보트와 외부에 장착하는 모터도 있고, 낚시 장비도 있어요. 게다가 날씨까지 좋네요. 호주에서 9월까지 사는 것보다 내 고향에서 이렇게 끝나는 편이 더 좋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피해갈 순 없는 거지, 응?"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결국에는 말이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피해갈 수 없지. 결국에는."

 

"금세 변절이로군 "
그녀는 술병의 마개를 뽑았다. 10시 10분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말했다.
"드와이트, 당신이 먼저 길을 떠났다면, 날 기다려줘요." 그녀는 커다란 차의 운전석에 앉아서 알약을 입에 넣고 입 안 가득들이킨 브랜디와 함께 삼켰다.


핵전쟁 이후 생존자들이 해변에 남아 벌어지는 이야기라고만 듣고 책을 빌렸더니, 내가 예상한 것과 정 반대의 이야기여서 놀랐다. 나는 당연히 북반구의 핵전쟁 생존자들이 해변에서 마지막을 받아들이며 벌어지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놀란 것은 이 소설의 배경은 호주라는 것이다. 나는 남반구가 배경인 소설을 처음 읽어봤다. 내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문제도 물론 있겠으나(;;), 대부분 영미소설, 프랑스, 러시아 등의 소설이나 국내소설, 일본 소설들을 읽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초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공평하지 않아요. 남반구에서 어느 누구도 폭탄을 떨어뜨린 적이 없어요. 수소 폭탄이든 코발트 폭탄이든 그 어떤 폭탄이든 말이에요. 우리는 책임이 없잖아요. 1만 킬로미터 밖에서 우리와는 상관없이 전쟁을 벌인 나라들 때문에 왜 우리가 죽어야 하죠? 정말이지 불공평해요." 그렇게 생각할만 하다. 1960년쯤이 배경이었던 이 소설은 북반구의 강대국들이 벌이던 핵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남반구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북반구에서 권력싸움을 하며 핵을 터트리고 코발트 폭탄을 터트리다보니, 방사능 바람이 남반구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호주에서도 북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고, 멜버른의 해변가에 있는 사람들만이 생존해 남아있는 것이다.

 

헐리웃의 아포칼립스물을 많이 봤던 나로서는 <해변에서>가 서술하는 아포칼립스의 풍경이 매우 색달랐다. 생존물품을 얻기 위해 싸우거나, 본인의 업무에서 손을 떼고 생존만을 위해 방치하거나, 무리를 이뤄서 갈취하는 등의 상황 말이다. 멜버른의 생존자들은 기름이 없으니 자전거를 개조해 한시간 이상 자전거를 타고 축사로 가서 우유를 받아오거나, 말을 타고 돌아다니거나, 흥미를 위해 남은 기름으로 자동차 경주를 한다. 여전히 술집이 운영중이고, 일부 가게들은 여전히 장사를 한다. 해군이 여전히 남아있어 군대 시스템을 유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확실히 색달랐다.

 

지구 어딘가에서 핵이 폭발하여 내가 1~3개월 이내에 방사능에 의해 고통스럽게 앓다가 죽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봤다. 물론 상상하기 싫지만...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는 좀비나 재난에 대한 아포칼립스물을 많이 제작하는데, 이럴 때에 모두가 서로를 배척하거나 폭동을 일으켜 격정적으로 행동한다. 그런데 정말 재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이러한 매체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떠올리며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행동해도 될 거야."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최근에 읽은 <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를 보더라도, 생존자들은 그렇게 행동한다.

 

이 소설은 일상물처럼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러면서도 주변의 피해상황들을 묘사하는데, 저 멀리 보이는 해변파티에 놀라지만, 실은 그 파티가 1년 전의 파티였고, 그 사람들은 모두 죽은지 일년이 넘었다는 등의 장면이 묘사된다. 집 앞을 순찰갔다가 탈영해버린 군인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탈영했던 군인이 느긋하게 방사능이 퍼졌을 것이 분명한 바다에서 낚시를 하며 제 부모님은 모두 죽었습니다. 하며 그래도 제 집에서 죽는게 좋겠어요. 라고 말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런 것들은 무덤덤하게 전쟁과 핵전쟁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정말 핵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를 미래세대인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희망을 찾으려고 하다가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희망을 찾지 못하고 좌절한다. 결국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필연적이다. 이야기의 끝은 당연스럽게도 새드엔딩이다. 갑자기 기적적으로 등장하는 거대한 생존자 잠수정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고, 방사능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된 남극의 비밀기지도 발견되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평화롭고 동시에 필연적 죽음을 시니컬하게 표현하는 이 소설은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갓 태어난 자식이 있음에도 죽음을 선택해야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음에도 미래를 선택하지 못하거나, 좋은 차를 샀음에도 아끼지 못하거나, 높은 직급으로 승진했음에도 책임을 다 할 상황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우울한 일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