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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 존 프럼

2023.08.16 ~ 2023.08.20 (5)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

존 프럼 저

래빗홀

2023년 6월 22일 출간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고전적 화두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
‘존 프럼 테마파크’의 탄생!
한국과학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문윤성SF문학상 가작 수상작 수록

《저주토끼》 저자 정보라, SF평론가 박상준 추천


존 프럼은 2019년 “아이디어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김보영)는 평을 받으며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발표 당시 〈테세우스의 배〉)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2022년에는 “한눈팔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김초엽)는 평을 받으며 문윤성SF문학상 가작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개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는 작가는 고전 SF의 여러 가지 화두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위트 넘치는 7편의 단편소설이 묶였다.


 

"우리의 인생이 완전해지려면 더 높은 차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신이라는 걸 저는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죠.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문구에는 한 가지 가정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신이 없다면'이라는 가정입니다. 신이 없다면 우리의 보잘것없는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됩니다."

 

무엇보다 나는 죽음을 원치 않았다. 동기화 장치 적출술을 받은 날부터 나는 하루하루를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노동으로 육체가 단련되어 갈수록, 육신에 대한 집착은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에 비례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영생에 대한 갈망 또한 커져만 갔고, 클라우드에서 배제된 인간은 예외 없이 죽음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식도에 천공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말똥을 나르는 트럭에 치이는 것만으로도, 가파른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목이 부러지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사신의 낫에 베이고 만다.

기이하게 죽음은 나를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죽음의 공포를 떨치고 시한부라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미친 듯이 연구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연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언제든 나를 벨 수 있는 사신의 낫이 두려워 악몽에 시달렸다.

 

끝나지 않는 역설의 항로 속에서 나는 분해와 재생을 거듭하는 테세우스의 배를 타고 영원히 헤매이게 될까. 혹은 어딘가에서 마침내 삶의 안식처를 발견하게 될까.

 

어느 곳에서 깨어난다 해도 모든 진실을 기억하고 있기를. 그 진실이 나를 구원하기를. 아니, 나를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닐까. 설령 그것이 거짓이라 해도...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시야가 암흑으로 물들었다.

 

영겁회귀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기쁨뿐 아니라 슬픔도 영원히 반복되겠지만, 영원한 반복을 통해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되어 구원받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 기록을 남기는 것도 처음이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당신이 이 기록을 읽은 것도 처음이 아닐지 모른다. 프랑크 길이에서 무한히 진동하며 우주를 존재케 하는 8자 모양의 리본. 무수한 리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심히 진동하고 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아무런 의도도 없이.

 

어째서 소우주에서는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정확히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동안 DU속의 우주를 그저 무심히 관찰하기만 하던 나는, 처음으로 그 실체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눈앞의 소우주는 이미 일어났던 일을 반영하는 잔영에 지나지 않는 걸까, 혹은 우리 우주와 마찬가지로 펄펄 살아 있는 실체인가.

 

만약, 차원이 무한히 이어진다면 우리의 모험도 무한히 이어질 겁니다.


여러 SF 및 장르작가들이 추천한 책이기도 했고,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 엄청나게 많은 홍보SNS를 접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책에 관심을 가졌고,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하여 읽게 되었다. 출간한 지 두 달 만에 읽은 소설이긴 해도 따끈따끈한 신작이었다. 나는 워낙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몰라서(책을 안읽었으니...) 이름만 보고 처음에는 외국인 작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한국식 이름과 호칭이 나와서 작가가 한국인이었나? 했는데 작가이름이 외국인이길래 아 외국인인가 보다... 했는데 역자가 없어서 한국인인가?? 했는데 존 프럼이 작가님의 닉네임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신기했던 점은, 이 소설이 완벽한 개별적인 미래사회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SF소설이라고 하더라도, 간단한 세계관 설정만 설명한 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풀어나가도 될텐데, 세계관이 정말 꼼꼼하고 섬세하게 서술되었다. 그런 점이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소설이 900~5000페이지 되는 장편소설도 아니고, 단편소설들이 모인 단편집인데 말이다. 그런데 세계관이 정말 꼼꼼하고 그 세계관에 알맞은 SF적 미래사회 과학기술들에 대한 묘사도 섬세했으며, 그 세계관에 사는 인물들의 정서 또한 알맞았다. 세계관이 이렇게나 상세하다 보니 읽는 내내 눈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화려한 도시를 바라보면 눈을 둘 데를 찾지 못하고 감탄사만 내뱉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각 단편들이 말하는 주제들이 명확히 느껴지고, 반전이나 작가가 길게 끌고 오는 감정선들이 하나도 소홀히 설정되지 않았다는 것까지 느껴졌다.

 

시간여행이나 SF, 미래사회 설정의 영화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어설프게 따라하며 그냥 미래의 과학기술이 갖는 편리함만을 끌어다 쓰기 위해서 미래로 배경을 설정하는 작품들이 꽤 있다. 그런 작품들은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 자체가 재밌을 수는 있으나, 영화 속 세계관이 재미없다 보니 팬들이 억지로 세계관에 설정을 끼워 넣어 설정충돌이 발생하거나, 세계관 자체에 매력이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인기작품인 <스타워즈>, <스타트렉>,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같은 영화들은 세계관이 탄탄하다 보니 그 시리즈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고, 꾸준히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세계의 장면들이 언급된다.

 

스타워즈 에피소드4 (1977)
블레이드 러너 (1993)
매트릭스(1999)

반면 <백 투 더 퓨처> 같은 영화는 시간여행이나 미래기술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세계관이 뚜렷하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의 팬들은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플롯이나 아이템들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인기 있는 1편의 경우에는 과거로 가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작가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SF 설정과 시간여행이라는 미래기술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세계관이 없음은 마찬가지이다.

 

백 투 더 퓨처 (1985)

 

 

굳이 이런 영화들을 언급한 이유는, 그만큼 이 소설이 세계관 설명에 탄탄한 글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모든 SF들은 다양한 과학적 상상력을 이용해 인간에게 다가올, 혹은 다가오지 못할 미래사회에 대해 말한다. 이것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가도 중요하지만 지겹고 어렵기만 할 수 있는 미래과학기술에 대한 이야기에 어떻게 인간사를 녹여내고, 독자들이 느낄 감정들을 녹여내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녹여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의도와 독자들이 받을 감동이나 느낄 감정이 녹아있지 않다면 그건 레포트고 신문기사이지,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 잘 쓰여진 책이고, 각 단편들이 정말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충격적이고 재미있어서 정말 즐겁게 읽은 책이었다.

 

특히나, 책을 읽는 중, 중간에 나오는 '영겁회귀는...' 으로 시작하는 문단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천재적이고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이 부분을 다시 읽어봤는데, 정말 내가 어떤 거대한 굴레 속의 .. 모래알갱이 하나이구나 하는 복잡한 마음을 느끼게 하면서도 인간사란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심오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래서 사람은 공학을 발전시켜 가며 외면적인 발전을 하면서도, 철학이나 문학을 개발하며 내면적인 발전을 하는구나..... 하는 결론까지 내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이 우주에 홀로 서있는 인간인 내가, '인간' 이라는 정의 하에 '사회'라는 개념에 묶여 '존재'라는 사상을 고민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실 세상은 인간이 정의 내려 그 의미와 뜻을 서술한 것들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들에 대해 고민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사랑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미워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바라본다. 자연이 흘러가는 대로 존재하는 것을, 인간은 붙잡기 위해 하나하나에, 너는 시간이고, 너는 우주고, 너는 인간이라고 정의 내린다. 너는 1분이고, 그것은 즉 60초이고, 그것이 모여서 1시간이 되고, 그것은 다시 모여서 하루가 되고, 하루들은 결국 일 년이 된다. 그렇게 말하는 그 개념들은 실은 그저 흐를 뿐인 것들을 붙잡기 위한 인간들의 발버둥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겁회귀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기쁨 뿐만 아니라 슬픔도 영원히 반복되겠지만, 영원한 반복을 통해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되어 구원받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자주자주 끊임없이 해왔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단계 정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특히나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말이다.

 

많은 생각을 하고 고민하는 동시에 다양한 감정이 떠오를 수 있게 한 좋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