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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엘레나 페란테

2023.04.21. ~ 2023.04.24. (4)             나의 눈부신 친구
2023.04.24. ~ 2023.05.18. (25)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2023.05.30. ~ 2023.06.27. (29)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2023.07.24. ~ 2023.08.09. (17)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1부 나의 눈부신 친구
2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3부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4부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엘레나 페란테 저

김지우 옮김

한길사
2017년 12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각국소설 > 이탈리아소설


책소개

전 세계를 홀린 ‘나폴리 4부작’이 드디어 완간되었다. ‘나폴리 4부작’은 이탈리아 나폴리 폐허에서도 빛나는 두 여자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다. 우정을 다룬 이야기는 진부하다. 그러나 60여 년에 걸친 두 여인의 일생을 다룬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아름답지만 냉혹하고 그들의 삶은 맹렬하다. 감정선은 강렬하고 인물들은 욕망과 분노에 차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지만 소설에는 뜨거운 마그마가 들어 있는 광활한 문장으로 가득하다. 페란테는 돌려 말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고 단도직입적이다. 두 주인공도 회귀하지 않는다. 모순으로 가득한 감정 속에서 주인공은 앞만 보고 나아간다. 그들은 순차적으로 인생의 페이지를 넘기며 나아갈 뿐이다. 굶주린 듯 다음 페이지를 서둘러 넘기고 싶은 이야기. 그러나 결코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야기. 바로 ‘나폴리 4부작’이다.


이 소설은 두 여자아이가 친구가 되고, 둘이 서로의 인생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평생에 걸친 삶을 지나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접하는 내내, 왜 이 소설이 페미니즘 소설로 불리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책과 책을, 책들과 책을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영화를 보았는데... 이를 참고해서 말하자면,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는 없다. 보통 영화는 대부분 남성의 서사를 중심으로 한다. 남성이 성장하며 남성이 친구를 만나고, 남성이 발전하고, 남성이 무너지고, 남성이 깨달음을 얻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성의 경우는 흔치 않다. 나는 여성으로 평생 살면서 '다른 여자도 이럴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매체의 여성들은 보통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연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내가 누군가의 부속품으로 성장해야 한다면, 그것이 내 존재의 이유라면 나는 발전할 필요가 있을까?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여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친구의 삶에 대해 서술한다. 공부에 대한 욕망, 우정에 대한 욕망, 성공에 대한 욕망, 섹스에 대한 욕망, 혹은 시기, 질투, 원망. 여자 아이들은 이런 것을 보고, 듣고 자랄 필요가 있다. 나는 항상 여자아이들이 보고 자랄만한 작품에 대해 고민한다. 이 소설은 여자아이들이,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소설이 페미니즘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리즈를 읽은 지 꽤 오래됐기도 하고, 긴 내용이 모두 기억나지는 않아서, 기록해 두었던 내용이나 기억에 남는 내용들만 은은하게 적어보려고 한다.

 

<나의 눈부신 친구>

나는 첫번째 시리즈인 <나의 눈부신 친구>의 제목에 집착했다. 둘은 서로 경쟁하면서 성장했고, 엘레나는 릴라를 질투했다. 이 이야기는 엘레나의 시점으로 서술되다 보니 우리는 릴라의 마음은 알 수 없다. 릴라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싫으면 싫은 애다. 상대하기 어려운 애구나 싶지만 가끔 잘해줄 때는 잘해주니 마음이 아리송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보는 내내 엘레나의 시점으로, 엘레나의 눈부신 친구 릴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레누는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간다. 자기에게 열렬하게 구애하던 남자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 돈도 많고 다정한 남자와 결혼하면서, 릴라는 엘레나와 이런 대화를 했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너에겐 모든걸 다 해줄 거야. 넌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 계속 공부를 해. 포기하지 마. 네가 부족한 건 내가 다 지원해 줄게."

"아니야 어떻게 그래."

"뭘 어떻게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엘레나에게도 그렇지만, 릴라에게도 엘레나는 눈부신 친구였을 것이다. 누가 누구보다 더 우위에 있고,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예쁘고, 누가 더 훌륭하다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통념이다. 우정 사이에는 그런 통념이 존재할 자리가 없을 것이다. 친구와 친구는 서로 함께하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존중하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니까. 릴라에게 엘레나는 언제나 똑똑하고 멋있는, 눈부신 친구였을 것이다. 그리고 책 한 권 통째로 우리는 릴라의 이야기를 들었고, 분명히 릴라도 엘레나의 눈부신 친구였으리라 생각한다.

 

엘레나는 이 책 속에서 릴라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고, 그녀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엘레나의 온 삶에는 릴라가 녹아있었고, 그건 엘레나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엘레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릴라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둘은 둘이지만, 하나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둘은 둘이지만 하나고, 우정이지만 사랑이고, 친구이지만 연인이었던 것이다. 릴라가, 릴라는, 릴라에게, 릴라와, ... 엘레나의 삶에는 전부 릴라가 존재했다. 20년도 채 안 되는 삶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한 친구이니, 네가 나이고 내가 너였을게 분명할 테지. 그렇게 질투하고, 원망하고, 동경하고, 사랑했던 릴라가 엘레나에게 그런 것이다. 너는 내 눈부신 친구라고.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는 엘레나가 정말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엘레나는 평생을 니노를 잊지 못하고 살았다. 후에 가면 정말 바보 같은 짓까지 한다. 남들처럼 연애하지 못하고 끙끙 사랑을 앓다가, 좋아하는 남자를 절친에게 빼앗기고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 엘레나에게 그 해변에서의 일은 엘레나의 평생을 따라다니며 후회와 악몽으로 자리 잡는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는 제발 엘레나가 안토니오와 이어지기를 바랐다. 엘레나가 평생에 걸쳐 가장 사랑했고, 그녀를 가장 사랑해 줄 수 있었을 남자는 아마 안토니오가 아니었을까 싶다. 엘레나는 욕심이 있는 사람이고, 동시에 멍청했다. 그녀의 욕심은 올바른 곳을 가리키지 못하고, 이상하게 휘어 자신이 오래된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고 생각하여 끊임없이 니노를 찾는다.

 

결국은 니노의 아버지인, 동시에 자신을 성희롱하던 도나토 사라토레와 관계를 맺기에 이른다. 이 책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길게 남겨놓은 것이 있어 정리한다.

 

엘레나는 몇 년 전 휴가 때 자신을 성희롱하고,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한 도나토 사라토레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결국 그와 섹스한다. 하지만 엘레나는 끊임없이 그것을 부정하고 혐오한다. 그런 표현을 끊임없이 한다. 이런 후에 엘레나는 생리를 하지 않아서 고통스러워한다. 임신을 했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다행히도, 그녀는 생리를 한다. 그 생리를 '도나토 사라토레를 지워낸 증거'라고 표현한다. "엘레나는 어떻게든 릴라를 이겨먹기 위해서, 지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혐오하는 남자이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아버지인 도나토 사라토레와 섹스를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라고 생각한다. 엘레나는 당시 자존감이 매우 낮았고(나는 못생겼고, 뚱뚱하고, 안경을 썼다.), 안토니오와의 연애도 잘 되지 않았으며, 니노에 대한 사랑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심지어 결혼한 릴라의 도피를 위해 사랑하는 남자인 니노와의 불륜을 도와주는 중개자가 된 것이다. 그녀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은 릴라이다. 하지만 둘은 모두 청소년기로 열정과 성욕이 가장 강렬할 때이고, 니노는 두 소녀에게 먹기 좋은 열매와 같았을 것이다.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열매만 따먹으면 달콤한 과즙을 맛볼 수 있으니. 둘이 너무 어렸다는 것이 문제이고,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욕망을 참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였다. 엘레나는 멘탈이 나갔을 것이 분명하다. 상황이 그렇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약해진 엘레나를 도나토 사라토레가 잡아먹은 것이다. 영악하고 역겨운 늙은 돼지가 그런 것이다.

친구를 이겨먹기 위해 나이 든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과 원하던 것을 하나도 갖지 못하고 무너진 소녀를 침범한 나이든 남자와 섹스를 하게 된 것은 명백히 다르다. 자신의 세상이었을 니노와의 여름휴가가 무너져 내렸으니 16(혹은 17)살의 소녀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정신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사건을 엘레나가 전환점으로 삼기 위해서는, '도나토 사라토레에게 흥분한다' 혹은 '이 사건을 계기로 흑화한다' 정도가 전부일 거라 생각한다. 엘레나가 차라리 니노와 이어져서 니노와 섹스했다면, 엘레나에게 섹스라는 것은 어떠한 전환점이 되었을지 모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엘레나는 사랑이 깃든 섹스를 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표현하며, 니노와 지냈던 행복한 시간들도 결론적으로는 그의 영악한 사고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하며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엘레나는 자신을 가장 아껴준 것이 어쩌면 안토니오라고 생각하며, 그와 잠시 가졌던 장년기(..였던가)의 섹스 정도가 그녀에게 어떠한 전환점이자 위안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엘레나가 청소년기에, 이 10대 후반에 원하는 섹스를 했다면, 엘레나에게 섹스란 것은 자신을 더 사랑하고 빛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엘레나가 나폴리를 떠나 대학을 가고, 이탈리아가 겪었던 넓은 세계사가 책 속에 들어앉는다. 주인공들이 커가며 세계가 넓어지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해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은 얼마 없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 있다. 엘레나가 드디어 릴라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되고, 릴라보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엘레나에게 기대를 걸게 되었다. 그렇게 릴라를 이겨먹고 싶어 했으니, 정말 이기는 모습을 보여줘. 엘레나는 어찌어찌 잘 사는 것 같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가슴을 뛰게 할 정도의 파격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의 마지막 책.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에서 도대체 누가 어떤 아이를 잃어버렸을까 궁금했는데, 책을 다 보고 나니 책 표지에서 릴라만이 빈 손으로 서있다. 릴라는 아이를 잃어버렸다. 릴라는 그것으로 인해 남은 생을 평생 후회와 미련 속에서 살게 된 것 같았다. 엘레나의 삶도 그다지 아름답고 훌륭하지 않았다. 그냥 보통의 적당히 성공한 여성 같았다. 엘레나와 릴라의 삶은 찬란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들의 우정이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이건 어찌 보면 현실적이기도 할 테고, 어찌 보면 지독한 엔딩이기도 할 것이다.

 


 

 

인생은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고, 다양한 여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복잡한 세상을 살아간다.

나는 사실 이 책을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아침드라마 같았다. 이 책이 나에게 교훈을 주나? 생각할 것을 주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기나? 나는 많이 고민했지만 아직도 커다란 답은 내리지 못했다. 먼 미래에, 내가 내 친구들과 전혀 다른 삶으로 살아가다가 그 끝에 홀로 서게 되었을 때에 이 책을 다시 펼쳐보고 싶다.

 

그때 나는 지금처럼 답을 내리지 못할까? 아니면 그제야 답을 내리고 이 책을 이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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