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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

<구의 증명> 최진영

 

2023.08.08. ~ 2023.08.08. (1)

구의 증명

최진영 저

은행나무
2023년 4월 26일 출간

 

국내도서 > 소설 > 한국소설 


책소개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사랑 후 남겨진 것들에 관한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은 사랑하는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 혹은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최진영은 퇴색하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아름다운 문장과 감성적이며 애절한 감수성을 통해 젊고 아름다운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과 냉정한 죽음에 대해 세련된 감성과 탁월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최진영 작가님의 글은 항상 여운이 좋게 남는다. 그런데 한 문장 한 문장이 내 마음속에서 얽혀서 몸속에 남는다. 내 머리와 가슴속에 둥둥 떠다니던 문장들은 한 번씩 나를 건드려서는 마음을 울린다(흑흑). 글들이 다 아름답다. 아름다운데 쉽게 나온 문장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쉽게 쓰였을지도 모른다(작가님은 천재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쉽게 쓰인 문장들은 아닐 것 같다. 마음을 울리고, 마음에 남는 그런 글들은 금방 나와도 쉽게 쓰인 건 아닐 테니까.

 

죽으면 알 수 있을까 싶었다.
살아서는 답을 내리지 못한 것들, 죽으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을까.

 

이곳은 적막과 공의 세계. 벌판도 바다도 하늘도 아닌…그저 공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끝없는 공허…속에서, 실체 없는 나를 분명히 느끼며 눈이 아닌 온몸, 온 마음으로 나는 본다. 하지만 나는 혼자. 여기서 이렇게 너를 충분히 느끼고 있어도, 네가 내 옆에 있어도, 너는 여기 없다. 아니.... 내가 없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분명 여기 있다. 나는 여기 있고 너도 여기 있는데, 나는 여기 없고 너도 여기 없다. 이렇게 빤히 보이는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하지만 닿을 수 없으니 우리의 우주는 전혀 다르다. 겹치지도 포개지지도 않고 미끄러지는 세계.

구는 내 생각을 하지 않는가보다.

담이는 내 생각을 하지 않나.

첫 키스를 하던 그 늦은 겨울밤도, 그 겨울밤을 떠올리며 섹스하던 스물 몇 살의 어느 밤도, 우리가 함께한 그 많은 밤도, 온 우주를 통틀어 우리만 알던 비밀. 그리고 이제는, 나만 아는 비밀.

무거운 짐을 이고 나르며 몸을 쓰는 일을 할 때는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아 좋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 나가서 걱정이라고 했다.
힘든 일할 때 시간이 빨리 가면 좋잖아.
주저하다가 물었다.
그 속도로 내 삶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좀……... 무서워.
주저하며 구가 대답했다. 한참 후에 덧붙였다.
그렇게 늙어버리는 거 순간일 것 같아.
주저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바로 대꾸했다.
그렇게 되진 않을 거야. 절대로.

죽으면 정말 만날 수 있나. 그렇다면 나는 얼마든지 죽겠다.

우리를 기억해줄 사람은 없어. 우리가 우리를 기억해야 해.

나만 살아 있다.
나만 이 몸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 년토록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사실... 죽은 연인 없이도 살기 위해서, 죽은 연인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을 버티기 위해서, 구를 씹어 삼키는 담을 보면서 불쾌함은 들었다.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구와 담의 사랑이 어떤 형태인지, 둘의 사랑이 갖는 평생의 크기와, 둘에게만 기대던 온 시간의 길이를 생각하니 그것이 단순한 물리적 씹어 삼킴이 아니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그런 후에 마음이 먹먹해서 한참을.. 기다림이란 단어를 곱씹었다.

 

너를 잃은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몸에 갇힌 것이고.

죽은 네가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내가 너를 만날 날을 기다리는 것이고.

 

그럼에도 구는 담을 느끼기 위해, 언제 다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니... 네가 죽는다면 천 년 후가 되기를 바라는 것. 그런 사랑들이... 그걸 내 마음에 담기가 조금 힘들었다. 너무 아름답기도 하고, 너무 거대하고, 너무 버거워서 그랬다...

 

사람이 사람과 가질 수 있는 마음들을 아름답게 풀어내고, 간단한 문장으로 쉬운 듯 무겁게 전달하는 글이 정말 좋았다. <해가 지는 곳으로>나 <홈 스위트 홈>과는 살짝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역시 최진영 작가님이야..ㅠㅠ 하면서..

 

최진영 작가님 글에는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지를 못하겠다. 그냥.. 그냥 좋으니까 읽어보세요! 한 문장 한 문장, 그 모든 문장이 갖는 아름다운 감정들을 직접 느껴보세요. 그렇게 말하고 싶다... 북적북적에 좋아하는 글귀를 항상 메모해 두는데, 최진영 작가님 책만 보면 메모가 한 사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