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8. ~ 2023.12.08. (1)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저
퍼플레인 출판
2023년 11월 11일 출간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한국판타지/환상소설
2022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후보에 이어 한국인 최초로 2023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오른 《저주토끼》의 작가 정보라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퍼플레인에서 펴낸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첫 책인 《아무도 모를 것이다》가 신화와 설화, 역사와 환상을 교차하는 작품들을 담았다면,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현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욕망과 두려움의 세계를 다룬 초기작 열 편을 공들여 선별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은 이 작품 속에는 죽음과 원죄에 관한 묵직한 울림을 전하는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인간의 기이한 욕망을 내밀하게 그려낸 〈리발관離拔館의 괴이〉, 통한의 눈물을 담은 〈전화〉까지… 인간의 욕망과 회한이 세밀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다채로운 빛깔과 울림을 담은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레 “호러, 판타지, 비현실 등 다양한 요소를 혼합하면서도 일상에서의 공포와 압박에 본능적으로 뿌리를 두고 있다”는 부커상 심사위원단의 호평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면면을 ‘날것의 언어’로 생생하게 그려낸 정보라 작가는 끊임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흔든다. 사후에도 소멸되지 못한 채 우주를 유영하는 영혼의 비극(표제작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과 타의에 휘둘려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의 희극(단편 〈죽은 팔〉)을 숨 죽여 읽다 보면,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거대한 물음표가 명치에 들어와 박힌다. ‘그대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고.
꿈속의 기와집 지방 너머로 보았던 푸르스름한 하늘을 생 각한다. 그것이 해질 무렵 어둠을 기다리는 저녁의 어스품인 지, 동틀 무렵 해 뜨기 전의 어스름인지는 분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시 침실로 돌아가 남자의 곁에 몸을 눕히지 못한다. 해가 뜨기를, 아이의 창문으로 햇살이 스며들 기를 기다려야 한다. 내 눈으로 보아야만 한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아이의 얼굴에 드리운 이 푸르스름한 어둠은 조금 만 기다리면 물러날 것이다. 그 사실은 일시적이나마 위로가 된다. 그러나 내일도, 모레도, 어스름은 언제나 찾아올 것이고, 잠든 아이의 얼굴 위에는 밤마다 어둠이 드리워질 것이다. 그 어둠은 지나고 또 새벽이 오겠지만, 그렇게 하루가 흘러갈 때 마다 아이는 그만큼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머리맡에 앉아서 지켜주지 못하는 날에, 내가 막아줄 수 없는 어스름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혹시라도 오지 않기를,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올 때마다 아이의 기억 속에서 기와집의 모습이 차츰 희미하게 흐려져 마침내 사라지기를, 밤이 지나고 새벽이 다가오는 어 느 날에 아이가 단 한 번이라도 열이 오르고 단 한 번이라도 기침을 해주기를, 그리하여 남자를 깨워 허둥지둥 아이를 차에 싣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하여 자격 있는 의사의 위로를 받고 믿을 수 있는 약봉지를 받아들고, 주사를 맞고 울다 지 쳐 잠든 아이를 둘러업고 녹초가 되었지만 안심한 채로 집에 돌아오는 보통 부모의 행운이 한 번만 나를 찾아오기를... 푸르스름한 어스름이 드리운 방 안에서 잠든 아이의 머리맡 에 앉아 나는 누구인지 모를 존재를 향해, 어딘지 모를 우주 를 향해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이다... 그저 바라는 것 외에 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스스로 도는 한 내일도 모레도 찾 아올 어스름의 순간을 막아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라곤 아무것도, 진정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녀가 애도하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 아니라 어머니의 부재였다. 그녀의 눈물은, 자신에게 생물학적인 의미의 어머 니 외에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의미의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 으며, 살면서 이제껏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뒤늦게 이해 하고 인정하는 눈물이었다.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은 상실할 수 없다. 부재하는 것은 또 한 존재하지 않으므로 용서할 수도 용서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삶의 중대한 사건을 맞이하여 아무런 권한도 책임도 없는 완전한 방관자의 입장 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울었다.
내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자기는 지금 당장이라도 말 그대로 한 방에 날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그렇게 안 하잖아."
그는 가만히 내 목에 손을 댄 채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자기가 나보다 약해서 그런 건 아니잖아?" 그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내 목을 감은 손에 조금씩 힘을 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항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는 잠시 목을 조르면서 내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손을 풀었다. 내 양어깨 위, 머리 옆의 베개를 손으로 짚고 얼 굴을 내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고마워요."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내게 키스했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2023.10.25. ~ 2023.10.25. (1)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저 퍼플레인 출판 출간 예정 X에서 퍼플레인 님 두근두근💞보라 월드 탐험단 모집 공고로 이미 스포했던 정보라 작가님의 신간 출간까
cinthea-lee.tistory.com
이전에 좋은 기회로, 보라월드 서평단에 뽑히게 되어 가제본을 받게 되었다. 총 10편의 단편 중 4권의 단편이 수록된 가제본을 읽고 작가님의 싸인본을 받게 되었는데, 시험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이제야 완독을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이다보니 40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금방 한 권을 읽게 되었다.
정보라 작가님의 글은 사람을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작가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세계 속에 뚝 떨어져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야기들은 우리가 아는 것 같은 세계관을 가지는 듯 하다가도 전혀 새로운 느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는 듯한 소재가 써내려졌다고 하더라도 그건 정말 정보라 작가님의 스타일대로 적혀져 있기 때문에 딴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정보라 작가님의 글은 흡입력이 있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표현된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전에 쓴 정보라 작가님의 책에 대한 독후감에서도 그렇게 적었었다. 책을 정~말 안읽었던 내 인생 90년(ㅋ) 중에 <저주토끼>는 나를 소설이라는 장르에 푹 빠질 수 있게 해준 책이었기 때문에 더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잡혀 있다. 소설이란게 단순히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라고만 생각했다. 해봐야 시대적 분위기정도를 담는게 전부라는 생각도 했다. 영화처럼 작가(감독)의 의도나 사상을 담을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소설들은 그러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완벽히 깨어낸 것이 <저주토끼>였다. 나는 진짜로 90년 인생 전부를(ㅋㅋ) 책을 읽지 않는 삶을 살다가 90살(ㅋㅋㅋ)이 되어 이제야 책을 읽고 있다보니 이 책 저 책 다 읽어보느라 작가님 책을 아직 모두 읽어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저주토끼>와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이 작가는 자신이 머리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생각과 사회적 문제, 사람들의 편견 등을 압도적인 분위기의 소설로 휩쓸어버린 후 재미로 끌어당겨 독자를 매료시키는데 엄청난 재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즉 내가 매료되어있단 뜻.
총 10개의 이야기 중에서는 사실 '죽은 팔'이 가장 인상깊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모두 읽은 후에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얼떨떨하게 느꼈는데, 마치 주인공의 기분이 나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종이 밖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서 옆에서 이야기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정한 남편이 어떤 팔의 등장으로 인해 날카롭게 변하고, 이사간 집의 이웃주민들의 민폐에 불편하고, 아기가 울어 스스로를 챙기기 힘들어지고, 주변의 압박에 의해 정신을 차릴 수 없어질 쯤, 그 죽은 팔은 생각도 못한 방법으로 사라진다. 정말 독특한 이야기였고, 재미있었다. 그 죽은 팔의 정체나 상징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내 머리로는 도저히 결론을 내리기 힘들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기사나 다른 분들의 독후감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안찾아봤음...)
이 책은 부커상 후보까지 올랐었는데, 아쉽게 수상을 하지는 못했다. 당시 시상식이 온라인 라이브로 진행되었는데, 나는 상황이 안돼서 볼 수는 없었다. 좋아하는 작가님이 수상하시지 못한 것은 안타까웠지만, 후보에 오른 것 만으로도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야 뭐... 독서를 제대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어떤 도서 관련 행사가 있는지, 시상식이 있는지 모르기는 한다. 그래도 요즘 국내 작가들이 해외 시상식에서 작품을 인정받고 후보에 오르거나 상을 타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이 생각은 작가님이 후보에 올랐을 때 처음 한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생때만 해도 온라인 상의 떠도는 이야기기는 했지만, '한국어로 된 작품은 번역이 까다롭고, 번역을 하면 그 문맥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나 의미가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느나라 말이나 다 그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한다.
내가 SF, 환상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정보라 작가님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리고 단순히 SF나 환상소설들이 그저 재미와 공포만을 주는데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사회분위기나 문제들을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는 장치와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읽는 내내 너무 재미있는 책이었고, 이런 글을 써주시니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그렇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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