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1. ~ 2024.11.15. (36)
소년이 온다
한강 저
창비 출판
2014년 05월 19일 출간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말라파르테 문학상, 만해문학상 수상작
우리 시대의 소설 『소년이 온다』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전세계 20여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세계를 사로잡은 우리 시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이 작품은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에게 “눈을 뗄 수 없는, 보편적이며 깊은 울림”(뉴욕타임즈),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다룬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설”(가디언),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문학평론가 신형철)이라는 찬사를 선사한 작품으로, 그간 많은 독자들에게 광주의 상처를 깨우치고 함께 아파하는 문학적인 헌사로 높은 관심과 찬사를 받아왔다.
『소년이 온다』는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를 통해 한강만이 풀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1980년 5월을 새롭게 조명하며, 무고한 영혼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듯한 진심 어린 문장들로 5·18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가장 한국적인 서사로 세계를 사로잡은 한강 문학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작품. 인간의 잔혹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증언하는 이 충일한 서사는 이렇듯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인간 역사의 보편성을 보여주며 훼손되지 말아야 할 인간성을 절박하게 복원한다.
몸이 죽으면 혼은 어디로 갈까, 문득 너는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자기 몸 곁에 머물러 있을까.
친구 찾으려고요.
피비린내 때문에 코를 막고 있던 손을 내리며 너는 대답했다.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
아니요, 저 사람들 중에……
그럼 확인해봐.
이젠 시신들이 다 여기로 온대. 총 맞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병원 영안실엔 자리가 없단다.
너무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 피를 그냥 덮으란 말입니까. 먼저 가신 혼들이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그서 널 봤다고 그래서 얼마나 놀랬는지 아냐. 시상에, 시체가 저렇게 많은데 무섭지도 않냐. 겁도 많은 자석이.
반쯤 웃으며 너는 말했다.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들이 뭐가 무섭다고요.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그래, 그 순간부터 내 몸을 증오하게 되었어. 고깃덩어리처럼 던져지고 쌓아올려진 우리들의 몸을. 햇빛 속에 악취를 뿜으며 썩어간 더러운 얼굴들을.
이제 그녀는 스물네살이고 사람들은 그녀가 사랑스럽기를 기대했다. 사과처럼 볼이 붉기를, 반짝이는 삶의 기쁨이 예쁘장한 볼우물에 고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빨리 늙기를 원했다. 빌어먹을 생명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사람들이 나오게 해주세요. 날이 새자마자 도청 앞에 시민들이 꽉 차게. 우린 아침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볼 겁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함께 나와서 싸워주십시오.
어두워지는 창밖으로 희끗한 것이 날리기 시작했다.
잠은 잘 자나요. 난 잠이 안 와서 혼자 소주 두병 마시고 지금 해장하고 있었어요. 집에서 술 먹으면 누나가 싫어하니까. 누나는 뭐, 나한테 화내거나 하진 않아요. 그냥 울죠. 그게 보기 싫어서 더 술 생각이 나죠.
우리는 고귀해.
어딘가 살아 있을 것이요, 분명히 살아서 둘이 같이 있을 것이요.
한강 작가의 글은 시처럼 느껴진다. 나는 시를 읽을 줄도, 운율을 느낄 줄도 모르지만, 한강 작가의 글은 그렇게 느껴진다. 나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출간 된 당시 2007년 10월에 그 책을 처음 샀다. 그러고는 그 책을 읽지도 않고 그대로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책을 읽지 않다가 2023년에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희랍어 시간>은 그런 내용이니까. 뒤늦게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게 된 후에야 <소년이 온다>라던가 <작별하지 않는다>, <흰> 같은 책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떤 책이 그 작가를 더 잘 보여준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한강 작가는 꾸준히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구매하고는 펼쳐보지 않았단 <채식주의자>의 경우에도 그랬다. 한 여성의 이야기였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강 작가만의 방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소년이 온다>를 굳이 먼저 고른 이유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이야기라고 해서였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도 역사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편이지만 알려고 노력하기도하고 동시에 노력을 잘 하지 않기도 한다. 언제나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고, 그들이 던지는 정보를 주워 들으며 타인에게 기대어 걸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방향성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나는 깊게 알려고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알고 싶었지만 알아야할 것이 너무 많다는게 문제였다. 그러면서 올해 들어 이런 저런 기사와 정보를 많이 접하며 정치인부터 단체까지 많은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정치와 역사에 대한 지식을 늘려나가고 있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관련된 SBS의 기사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강은 폭력이 개인에게 가하는 상처와 인간의 고통에 집중해 온 작가입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수상을 발표하면서 '역사적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언급했습니다. 한강은 2014년 발표한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로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2012년에 낸 '작별하지 않는다'로 제주 4.3 사건을 다루면서, 국가 폭력이 개인에게 남긴 상처를 서정적인 문체로 형상화했습니다. 한강을 처음 국제적인 작가로 만든 '채식주의자'는 어린 시절 폭력의 트라우마로 육식을 거부하며 가족과 갈등을 빚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이 여성은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가부장의 폭력에 저항하며, 금식을 통해 동물성을 벗어 던지고 차라리 나무가 되기를 꿈꿉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830506&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한강의 수상이 통쾌했던 이유…'노벨상 시즌'의 헛고생을 떠올리다 [스프]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문화부에서 근무하면서 매년 '노벨문학상 시즌'을 맞이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news.sbs.co.kr
그래서 더 뿌듯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이런 작가가 태어난 나라에서 끊임없이 피해자를 원망하고 탓하고 있다니! 하고 있었는데, 12월 3일 윤석열 정부가 비상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이럴수가. 말이 되는 일인가? 계엄이라니. 계엄이 선포되기 고작 보름 전에 다 읽고 덮었던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한강 작가는 노벨상 수상 소감을 발표할 때 자신의 일기장 앞에 적곤 했다는 문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2024/han/lecture/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2024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2024 was awarded to Han Kang "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www.nobelprize.org
이런 소감을 발표하는 그 순간 동안 많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다양한 깃발을 흔들고 응원봉의 불빛을 어둠 속으로 들어 올리며 시위했다. 한강 작가의 말대로 죽은 자들이 산자를 구하고 있고,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항상 사람이 써내는 이야기가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소설 하나로 어떤 용기를 얻고, 소설 하나로 감동을 받으며, 소설 하나로 결심을 하게 된다. 근데 단순히 나 하나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강 작가는 자신의 글로 사람들을 응원하고 정말 그것들이 실제함을 증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18 어머니회가 주먹밥을 싸서 시위대에 연대하고, 416 유가족들이 쉼터를 제공하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연대를 하고... 이러한 모습들은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과거를 기억하지 않아도, 과거의 일들은 우리를 일으키고 살아가게 하고 주저앉지 않게 하는 것이다.
소년이 온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성적으로 쓰여진 탓에, 사실 나에게는 잘 읽히지 않았다. 공감을 하지 못했다는게 아니라 나는 딱딱한 글들을 더 쉽게 읽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 나가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라는 말이나 네가 거기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한 말임에도 내 마음을 울렸다. 이런 폭력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12월을 조마조마하게 보냈던 것 같다.
세상엔 너무 다양한 폭력들이 있다. 사람을 너무 쉽게 바라보고 권력이 세상의 유일한 법인 것처럼 휘두르는 경우도 너무 많다. 한강 작가의 책은 그런 것들 속에서도 이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글이 더 마음 속 깊게 스며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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