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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독서

<20세기 파리> 쥘 베른

2025.01.01.~2025.01.01.(1)

20세기 파리

쥘 베른 저
김남주 역
알마 출판
2022년 11월 15일 출간

국내도서 > 소설 > 프랑스소설 > 고전소설/문학선


1863년에 사라진 최고의 SF
쥘 베른이 그린 100년 후 미래, 1960년대 파리

SF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쥘 베른은 이 책 《20세기》 파리에서 그가 경험했던 19세기의 위대한 기술적 진보를 통해 미래 사회를 예측하고 과학기술의 성취에 따른 미래의 인간상과 사회상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과학의 진보를 이룬 미래 사회에서의 ‘실용주의 과잉’을 경계하는 것이다.
소설은 1960년대의 눈부신 파리를 배경으로 오직 기술과 비즈니스에만 유용한 가치를 두는 물질주의 사회에서, 고전 문학을 전공하고 시인을 꿈꾸는 청년 미셸의 고단한 삶을 통해 문학과 예술의 죽음을 그린다.
취업난을 겪는 인문학도, 고층 유리 빌딩, 인터넷, 국제 금융, 컴퓨터, 자동화된 보완 시스템과 원격으로 제어되는 무기 시스템 등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21세기의 사회를 무려 100년 이상 앞선 19세기 후반에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점에서 전율마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는 과거를 되짚어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오늘날의 과학기술 발전에만 압도적인 찬사를 퍼부었다. 현대의 발명품들을 길게 나열하면서 격찬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미래에는 더 이상 발명할 것이 없어질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1860년대의 비루한 파리 상황과 19세기 프랑스의 한심한 상황을 경멸하는 어조로 언급했다. 그리고는 이 시대에 누리는 혜택에 대해 감탄과 칭찬을 늘어놓았다.

라틴어 시의 수상자가 즐거워하는 무리 한가운데서 침울한 청년이 되었다. 이방인이 된 듯 외롭고 고립되고 공허했다. 다른 학생들은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지만, 미셸은 만족스럽게 부모와 재회한 동급생들 속에서 자신이 고아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는 자신의 공부, 학교, 스승 등 모든 것이 서글펐다.
부모를 모두 여읜 그는 이해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집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식구들은 그가 라틴어 시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용기를 내자! 그들의 불만에 찬 태도를 참을성 있게 견뎌내자!” 그가 중얼거렸다. “고모부는 실용을 중시하는 사람이고 숙모는 현실적이며 사촌형은 이재에 능하다. 나라는 사람이나 내 생각이 그 집에서 환영받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가자!”

“하루뿐인 휴가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내 마음대로 보낼 수 있잖아. 돈도 조금 있고.” 그가 자신에게 말했다. “지난 세기 유명한 작가들,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들로 나만의 서가를 만들어보자. 매일 저녁 그 책들을 읽으며 낮 동안의 괴로움을 위로받을 수 있을 거야.”

그는 충격을 받고 구석으로 물러났다. 겨우 1세기가 지났을 뿐인데 그 유명한 작가들이 잊히다니! 《동방 시집》(위고, 1829), 《명상 시집》(라마르틴, 1820), 《초기시편》(뮈세, 1829~1835), 《인간희극》(발자크, 1842) 같은 작품들이 잊히고 유실되고 사라지고 묻히고 무시되다니!
하지만 저렇게 많은 책들이 있지 않은가. 뜰 한가운데에서는 거대한 증기 크레인이 책 더미를 부리고 있었고 판매대 앞은 책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어떤 사람은 20권으로 된 《마찰이론》을 사고, 또 어떤 사람은 《전기학개론》을 골랐다. 《차바퀴에 윤활유 치는 법》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뇌암에 대한 연구》를 고른 사람도 있었다.
‘이게 뭔가, 과학책들! 기술 서적들! 여기는 마치 학교 같다. 예술 서적을 찾을 수 없다니! 문학 작품을 찾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다니! 정말 내가 잘못된 것일까?’ 미셸은 생각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들이 좀 있습니다. 시집치고는 잘 팔리는 편입니다만…….”
“그렇군요! 현대 시집들이 있다고요?” 미셸이 호기심을 느끼며 반문했다.
“있고말고요. 과학원상을 받은 마르티악의 《전자 화음》, 퓔파스의 《산소에 관한 명상》, 《시적인 평행사변형》, 《탈탄산 서정시》 등등…….”
미셸은 더 이상 점원의 말을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는 충격을 받고 얼떨떨한 채 자신도 모르게 거리로 나와 있었다. 예술은 이 시대의 치명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과학, 화학, 기계공학이 시의 영역을 점거하고 말았다.

어쨌든 그는 더 이상 계산기를 다루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몹시 기뻤다. 자신이 계산기를 다루는 데 서툴다는 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계산기는 잘못 만들어진 피아노 같았다. 그는 그것이 혐오스러웠다.
자기 방에 틀어박힌 미셸은 여러 상념에 잠긴 채 어둠이 내리는 것을 응시했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악몽 같은 것이 그의 머릿속을 채웠다. 대원장의 모습이 터무니없이 변형되어 떠올랐다. 그는 상상 속에서 대원장의 하얀 책장 사이에 말린 식물 표본처럼 몸이 끼워지기도 하고 구리 틀로 된 책등 속에 갇히기도 했다.

“맞아! 그분 이후에는 아무도 없어! 지금 누가 그분의 작품을 이해하겠어? 그만하자고. 친구들아, 과거를 돌아보는 건 이제 그만 하자! 현재를 생각하자. 온 나라가 산업에 먹혀버린 현재를 직시하자고!”
그렇게 말하며 그가 피아노의 한 부분을 건드리자 건반이 접히더니 세면대와 세면도구가 갖추어진 침대가 나타났다.
“자, 봐. 이게 우리 시대의 발명품이야! 피아노 겸 침대 겸 서랍장 겸 세면대야!”

“내 말 마치도록 해줘, 미셸. 아주 오래전에 여자란 존재가 있었다는 건 나도 알아. 그 시대 작가들이 명료한 언어로 여자를 표현했지. 전 세계 여자들 중 파리 여자가 가장 완벽하다고도 했고, 오래된 작품이나 판화를 보면 이 세상에 여자만큼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존재가 없는 것 같아. 말 그대로 여자는 가장 완벽한 결함과 가장 불완전한 완벽을 동시에 지닌 존재였어.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혈통은 끊어지고 종족은 타락했어. 생리학자의 논문에서 그 한탄스러운 몰락을 확인할 수 있지. 혹시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걸 본 적 있어?”
“있어.” 미셸이 대답했다.
“그 경우를 완전히 뒤집어 생각하면 돼. 나비가 애벌레가 된 거야. 파리 여자의 나긋한 거동, 우아한 맵시, 재치 있고 부드러운 눈빛, 다정한 미소, 완벽하고 탄력 있는 몸매, 이 모든 것이 비죽하고 깡마르고 메마르고 무미건조하고 초췌하고 앙상한 모습으로 바뀌어버렸어. 무례하고 기계적이고 조직적이고 엄격해졌지. 몸매는 밋밋해지고 눈빛은 준엄해지고 태도는 뻣뻣해졌어. 안으로 말려들어간 얇은 입술 위로 억세고 강인한 코가 내려와 있고 걸음도 성큼성큼 걸어 다녀. 지난날 여자들에게 매력적인 곡선을 풍성하게 베풀었던 ‘형태의 천사’가 요즘은 직선과 날카로운 각만을 주는 거야. 프랑스 여자들이 미국 여자들과 비슷해졌어. 심각한 어조로 중대한 사업 문제를 논하고, 절도 있는 생활을 하고 도덕관념은 허약하고 미적 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이없는 차림새에, 그 어떤 압력에도 저항하는 철제 코르셋을 몸에 두르고 있지. 이봐, 그 면에서 프랑스는 우위를 잃고 말았어. 루이 15세 시대에는 남자들이 매력적인 여자들 앞에서 약해지곤 했지. 하지만 그 이후 여자들은 점차 남성화되고 말았어. 예술가의 관점에서도, 연인의 관점에서도 더 이상 가치가 없어졌다고!”
“말 계속해.” 미셸이 말했다.
“그러지. 너 웃고 있구나! 내 말을 반박할 근거라도 있나 보군! 내가 말한 건 일반적인 경우이고 예외가 있다는 거겠지. 이것 봐! 너도 내가 말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라는 걸 인정할거야. 내 말에는 근거가 있어! 더 심하게 말할 수도 있어! 그 어떤 부류의 여자도 이런 종족 전체의 몰락에서 예외가 될 순 없을걸! 애교 있고 쾌활한 젊은 여공들은 이제 사라져버렸어. 그나마 돈을 받는 만큼 사무적인 창녀들은 이제 심각한 부도덕을 암시한다고! 그들은 어설프고 어리석지만 등급과 수준에 따라 돈을 받을 뿐, 이제 창녀 때문에 남자가 재산을 깡그리 탕진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아! 재산을 탕진하다니! 그럴 리가! 그런 표현은 이미 한물갔어! 모두들 부유해졌어, 미셸. 인간의 육체와 영혼만 빼고 말이야.”
“그렇다면 당신 생각엔 이 시대에 진짜 여자를 만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거야?” 미셸이 물었다.
“불가능하고말고. 아흔다섯 살 이하로는 여자가 없어. 우리 할머니 시대를 끝으로 여자란 종은 멸종되었어. 하지만…….”
“아! 하지만?”
“생제르맹 교외 같은 파리 구석에서는 혹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파리라는 이 거대한 도시의 그런 후미진 교외에는 희귀한 종류의 식물, 그러니까 네 라틴어 선생 말을 빌자면 ‘푸엘라 데시데라타’(바람직한 소녀)가 아직 살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여간한 곳에서는 찾을 수 없을걸.”
“그러니까 여자란 이미 사라진 종족이라는 당신의 원래 견해를 철회할 수 없다는 거군.” 미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봐, 미셸. 19세기의 위대한 모럴리스트들은 이런 재난 상황을 예견했어. 그걸 알고 있던 발자크는 스탕달에게 보내는 유명한 편지에다, ‘여자는 열정이고 남자는 행동이다. 남자가 여자를 숭배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썼지. 그런데 오늘날에는 여자와 남자 둘 다 행동이야. 프랑스에는 더 이상 여자가 없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주의5는 지난 세기에 큰 발전을 해서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거든요. 쿠르베6인지 뭔지 하는 화가가 마지막 전시회에서 벽에 그림을 거는 대신 그 앞에 서서 스스로를 전시한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부패할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몹시 꼴불견인 행동이죠. 그건 ‘제욱시스의 새’7들을 날아가 버리게 할 겁니다.”

미셸은 국립극본공사를 사직했다.

“오! 끔찍한 과학! 끔찍한 기계 산업 같으니라고!” 그가 소리쳤다.

거기에서 그는 불길한 광경에 맞닥뜨렸다. 교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이 교수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꾼들이 흥얼거리며 벌써 기단을 만드는 중이었다.
미셸은 그 장면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려다가 열려 있는 상자 하나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상자 안에는 전기 배터리가 들어 있었다.
미셸은 다시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사형수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지 않았다. 전류를 몸에 통하게 해서 감전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의 심판과 훨씬 비슷한 것처럼 여겨졌다.
미셸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생트마르게리트 성당의 종이 네 시를 치고 있었다.

조금 아래쪽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알프레드 드 뮈세의 묘석 옆에서 버드나무 한 그루가 시들어가고 있었다. 뮈세가 자신의 시 속에서 아름답고 애절하게 무덤가에 심어달라고 했던 바로 그 버드나무였다.
그 순간 청년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의 품에서 오랑캐꽃 다발이 떨어졌다. 그는 꽃다발을 주워들었다. 그런 다음 눈물 젖은 눈으로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어느 시인의 무덤 위에 그 꽃을 내려놓았다.


과거에 미래를 상상하며 쓴 다양한 디스토피아 소설들 중, <1984>, <화씨 451>, <20세기 파리>를 항상 묶어서 소개받곤 했다. 디스토피아라고 하면 사실 우리가 떠올리는 최악은 <1984>라고 할 수 있겠지만, <화씨 451>이나 <20세기 파리>같은 작품들은 정말 신박한 방법으로 문학인들이 상상한 최악의 미래인 것 같다. <20세기 파리>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예술과 문학이 경시받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빅토르 위고, 오노레 드 발자크와 같은 시대를 상징하고 영원히 사랑받는 작가들이 무시당하거나 잊혀져버린 미래에서, 주인공은 과학만이 찬사받고 문학은 무시당하는 삶에 고통받으며 살아간다.

21세기 사람으로서는 설정 자체가 황당해서, 사실 고전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누가 포스타입이나 블로그에 쓴 글을 읽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쥘 베른은 19세기 후반의 작가인데 그로부터 100년 후인 1960년의 파리를 배경으로 이 소설을 썼다. 나는 21세기 사람인데다가,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문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의 필요성이 있느냐는 주장까지 하던 노답이과인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주인공이 너무나 황당하고 웃기게 느껴졌다. 특히나 “최근 몇 년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들이 좀 있습니다. 시집치고는 잘 팔리는 편입니다만…….”
“그렇군요! 현대 시집들이 있다고요?” 미셸이 호기심을 느끼며 반문했다.
“있고말고요. 과학원상을 받은 마르티악의 《전자 화음》, 퓔파스의 《산소에 관한 명상》, 《시적인 평행사변형》, 《탈탄산 서정시》 등등…….”
미셸은 더 이상 점원의 말을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는 충격을 받고 얼떨떨한 채 자신도 모르게 거리로 나와 있었다. 예술은 이 시대의 치명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과학, 화학, 기계공학이 시의 영역을 점거하고 말았다.
와 같은 장면은 너무 재미있었다. 현대 시집인데 과학원상을 받은 <전자 화음>이며 <산소에 관한 명상>, <시적인 평행사변형>, <탈탄산 서정시> 같은 제목이 소개되었고, 충격받은 주인공이 얼떨떨해하며 거리로 나와 황당해하는 장면. 짱구 만화에나 나올 법한 느낌이다. 터덜터덜 얼이 빠져서 상점에서 나온 주인공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늘을 향해 "이거 구라 아니야~?!" 하고 소리지를 것만 같달까...

게다가 과학이나 공학에 대해서는 끔찍함을 느끼기까지 해서 어쨌든 그는 더 이상 계산기를 다루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몹시 기뻤다. 자신이 계산기를 다루는 데 서툴다는 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계산기는 잘못 만들어진 피아노 같았다. 그는 그것이 혐오스러웠다. 와 같은 부분들도 정말 재미있었다. 약간... 내가 문과 친구들 사이에 유일한 이과인으로서 살면서 듣는 경악과 비명들을 책으로 잘 써놓은 듯한 느낌?사람들의 상상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래저래 비평도 많이 담고 있어서 책을 읽는데 시대상이 느껴지기도 했다. 읽는 내내 즐거웠던 책이었다. <1984>나 <화씨 451>같은 경우에는 다 읽고 나서는 허망하고 우울한 기분에 잠기기도 했는데, 이 책은 디스토피아 치고 재미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