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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독서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알렉산더 케이

2025.01.02. ~ 2025.01.03. (2)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알렉산더 케이 저
박중서 역
허블 출판
 2022년 09월 21일 출간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장르소설 > SF


팬데믹-신냉전 시대에 만나는 전설적인 디스토피아 SF
포브스가 인정한 역대 최고 애니메이션 〈미래소년코난〉의 원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모두가 그 시작을 부정해온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팬데믹의 여파로 아직 그 회복의 길이 요원한 현세대의 상처에 희망과 회복이 되어줄 포스트 아포칼립스 SF를 소개한다. 저자 알렉산더 케이는 미국 교과서에도 수록될만큼 북미에서는 널리 알려진 작가지만, 한국에서는 이번이 최초 출간이다.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미래 소년 코난〉 원작 소설. 저자의 또 다른 대표작은 세 차례나 영화화될 만큼 그는 모험 액션 SF 장르에서 일가견을 인정받아왔다.

또한 이 책은 냉전 시기인 1970년에 창작된 현대 신냉전 시대에 대한 예지적인 클라이파이로서 기후재난과 복잡하게 얽힌 국가 갈등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 속의 해일은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촉발되었으며 모든 권력의 상위에 군림한다. 이 소설이 북미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 중 하나는 핵전쟁의 공포와 긴장이 반영된 암울한 세계에서, 두 소년 소녀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숭고한 초월성으로 무장한 채 무작정 세계를 구원하는 쉬운 결말을 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거대하고 파괴적인 재난 이후의 세계에서 더욱 강조되는 인간의 왜소함과 외로움, 무력함에서 비롯된 슬픔과 같이 가장 원초적인 고민과 취약한 본성들을 새롭게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마지막으로 탈출하던 헬리콥터가 그 어마어마한 파도에 부딪혀서 산산조각이 나면서 코난은 혼자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때 이후로는 공중에서건 바다에서건 간에 비행기나 배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다못해 비행운이나 불빛조차도 본 적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그가 지구상에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인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었다. 라나가 안전하다는 증거를 갖고 있었으니까…

코난이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 하나는 혼자라는 두려움이었다. 그는 완전히 혼자였고, 이 세상 어디에도 자기를 걱정해 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인 라나조차도 어쩌면 이 세상에 없을지 몰랐다.

코난은 작은 섬 너머의 회색 안개 속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혹시 뭐 움직이는 거라도 있나?
그때 뭔가가 ‘정말’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배 같았다. 일종의 순찰선처럼 생긴 배였다.
순간 코난은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몸이 뻣뻣이 굳어버렸다. 갑자기 그는 몸을 떨기 시작했고, 눈 깜짝할 새에 좁은 바닷가를 향해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고, 양팔을 열심히 흔들어 대면서.

“이곳은 그중에서도 ‘시범’ 도시였지.” 의사가 무뚝뚝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그러니까 대격변이 일어나기 직전에 유일하게 완공된 도시였다는 거야. 그리고 우리 음식을 합성품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거야말로 이제까지 만들어진 것 중에서도 최고이고, 또 가장 과학적인 음식이니까. 네가 구조된 이후로 줄곧 먹었던 게 바로 그 음식이지.”
“저는 구조된 게 아니잖아요.” 코난은 반박을 가했다. “차라리 포로가 되었다고 해야죠. 그리고 당신네 음식은 솔직히 개한테 먹일 수도 없을 정도로 형편이 없었어요.”

“당신네가 이러면서도 세계를 재건하겠다고요? 누굴 속이려고 하는 말이에요? 당신네가 강제로 끌고 와서 낙인을 찍은 생존자들을 속이려고요?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요! 당신네야말로 애초에 대격변을 일으킨 원흉이잖아요. 아니라고 변명할 생각 말아요. 당신네들이 그런 거 다 아니까! 그래놓고 이제는 이 세계의 남은 부분을 다스리겠다는 거군요. 도대체 당신네도 염치라는 게 있다면…”
“아, 바보 멍청이 같은 소리 좀 그만하라니까! 대격변을 일으킨 건 우리 쪽이 아니라 ‘양쪽 모두’라는 걸 너는 알지도 못하나 보지?”
“내가 당신 말을 믿을 것 같아요?”
“사실이 그렇다니까! 이제는 누군가 나서서 그 흩어진 조각들을 도로 맞춰야 한다는 거라고.”
“어디까지나 ‘당신네’ 방식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거겠죠! 이마에 낙인찍은 죄수들을 이용해서요! 능력만 된다면 당신네들은 하이하버도 점령하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서 모든 권리를 박탈하겠죠! 당신네들이야말로 정말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치사하고…”
“주둥이 닥치라니까!” 그녀는 싸늘한 어조로 명령했다. “더 이상은 어느 ‘개인’도 감히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어. 심지어 나도 마찬가지고. 권리라는 것은 오로지 ‘국가’에만 있는 거야. 바로 신체제에 말이야. 오로지 ‘국가’만이…”
“국가 좋아하시네! 이런 세상에, 그런 멍청한 생각이 어디 있다고!”
“멍청한 건 바로 네 녀석이야! 멍청하고도 일자무식인 녀석아. 당연히 우리는 하이하버를 점령할 거다. 그것도 조만간에 말이야! 그리고 거기 있는 놈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겠지. 그놈들은 지금 자기네 일도 알아서 못 하는 상황이니까. 그러니 너도 생각을 잘…”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네는 하나같이 성미가 뒤틀리고 배배 꼬였어요! 그리고 탐욕스럽고!” 코난은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지금 자기와 이야기하는 여자를 이제껏 증오했던 세상의 다른 누구보다도 더 증오하게 되었다. “꺼져버려요!” 그가 소리를 질렀다. “날 좀 가만 내버려 두라고요!”
만스키는 한동안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까만 눈을 가늘게 뜨고,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갑자기 그녀는 뒤로 돌아서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난이 있는 감방에서 10여 미터쯤 멀어졌을 때, 만스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서 다시 걸어왔다.
“넌 아직 어려.” 그녀는 쌀쌀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아직까지는 어린애나 다름이 없지. 그리고 아주 어리석고. 하지만 여기서는 너도 성인으로서 재판을 받게 될 거다. 왜냐하면 너는 이미 충분히 키도 크고 힘도 세니까. 우리는 지금 네가 갖고 있는 힘을 필요로 하고 있어. 그러니 너는 어쩌면 바로 그 한 가지 이유 덕분에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
코난은 뭐라고 대답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곧이어 현명하게도 입을 다물었다. 이 사람이 정말로 나를 도와주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그제야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이제 나는 인민위원에게 다시 찾아가서 이야기할 거다. 그리고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모조리 만나서 이야기할 거다. 혹시나 다시 심문을 받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시킨 대로만 이야기해라. 두 번 다시 그렇게 바보 멍청이 같은 짓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똑똑히 기억해 둬. 혹시나 네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치면, 그때는 차라리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나을 거야. 여기도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더 나은 곳이니까.”
벽의 틈새 사이로 코난은 방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묻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쌀쌀하게 말했다. “너도 일단 시민이 되고 나면, 그때 가서는 그 자격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게 될 거다. 우리는 모두 국가를 위해서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이곳에는 일단 범죄가 전혀 없지. 따라서 이곳에는 당연히 경찰도 없어. 하지만 처벌은 있지. 조만간 너도 알게 되겠지만 말이야. 너 같은 녀석한테는 무엇보다도 신체제가 ‘항상’ 우선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각인시켜야 해.”

“하지만 나 같으면 순순히 저 사람들의 밀고자 노릇을 하느니, 차라리 사람들을 모아서 저항이라도 해보겠어요.” 코난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여기 있는 포로들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죠? 자기 권리를 위해 싸울 생각조차 없는 건가요?”
“넌 잘 몰라서 그래. 이곳의 기구와 싸운다는 건 불가능해.”
“왜 안 되는데요? 누가 감히 막아서겠어요? 여기는 경찰조차도 없다면서요.”
“어이구! 무슨 소리야. 대신 우리가 ‘모두’ 경찰 노릇을 하고 있는데. 우리 낙인 죄수들은 공장 지역 곳곳에 하나둘씩 뿔뿔이 흩어져 있어. 그러니 우리가 모여서 무슨 계획이라도 세운다 치면 곧바로 상부에 보고가 올라가게 되어 있다고.”
“그러면 밤에는 어떻게 지내는데요? 모두 어디서 잠을 자죠?”
“그야 각 지역의 합숙소에서 자지. 감방 하나에 두 명씩.”
“감방이요? 그러니까 자는 동안 가둬둔단 말이에요?”
“물론 진짜로 가둬놓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그와 비슷한 효과를 거두긴 하지. 우리 같은 낙인 죄수들은 마지막 종이 울리고 나면 절대로 밖에 나올 수 없거든. 혹시 그랬다가 붙잡히면 큰 말썽이 난다니까. 합숙소마다 2등급 시민 한 명씩이 관리를 맡고 있어. 그러니 서로 행동을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다시 말썽을 겪게 되거든. 모두 점수를 얻기 위해 골몰하니까, 결국 서로를 감시할 수밖에 없지. 말썽이 났다 하면 그때는 단체로 점수가 깎이든가, 아니면 식량 배급이 깎이든가 둘 중 하나거든. 게다가 말썽이 자꾸 일어나면 결국 단체로 부적격 판정을 받게 돼. 이제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지?”
“알았어요.” 코난이 천천히 대답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행동을 조심하라고. 그리고 패치 영감한테서 밤에 여기 남아 있으라는 소리 듣지 않게 조심하고.”

“그리고 그 일을 하려면 바로 너의 힘이 필요했던 거다. 지금부터 우리는 어떤 건물 안에 들어가서 뭘 훔쳐내야 하거든.”

“무슨 이유요? 우리한테 이렇게 낙인을 찍어준 것에 대한 감사라도 해야 하나요?” 코난은 양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승님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경우에는 도와야 하는 법이야.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크나큰 위험에 처해 있지 않니.”

물 위에 뜬 배를 밀고 끌며 절벽 틈새의 어둠 속을 통과하는 동안, 코난은 인간이 과거에 겪었던 길고 야만적인 밤에 관한 갑작스러운 환상을 보게 되었다. 스승님께서 계시지 않다면, 그리고 스승님께서 아시고 믿으시는 그 모든 것이 없다면, 결국 인간은 그 원시의 밤으로 다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인간은 차마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지금 하이하버에서는 문제가 벌어지고 있어. 우리가 인더스트리아에서 탈출한 것 때문에, 문제가 더 악화될지도 몰라. 어쩌면 문제가 절정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뭔지는 나중에 다시 설명해 주마.”

“하지만…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놈들 때문에 무려 4년이나 죄수 노릇을 하셨잖아요!” 그가 언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놈들을 미워하셔야죠!”
“얘야, 나는 그 사람들을 미워할 수가 없단다. 오히려 나는 그 사람들 대부분에 대해서 존경심을 갖고 있어.”
“아니,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그놈들은 할아버지한테 낙인을 찍었고, 심지어 할아버지를 때리기까지 했잖아요. 게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으며, 또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놈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뒤틀리고, 악독하고, 자비라고는 없고…”
“그래, 코난.” 스승님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네 말이 전부 옳아. 하지만 네가 한 가지 모르고 있는 것은, 그 사람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나름대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지. 가진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기계 몇 대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말이야. 인더스트리아는 그 기능의 상당 부분이 마비된 상태였고, 지금도 마찬가지 상태야.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리고 몇 대뿐인 기계를 계속 돌리기 위해서는 가장 단호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가장 힘이 센 사람, 즉 내놓을 것이 가장 없는 사람이 권력을 지니게 되는 법이니까.” 스승님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렇게 이어나갔다. “단지 그중 몇 사람만 가지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는 마라. 인더스트리아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일부나마 있고, 그 사람들의 행동은 오로지 칭찬만 받아야 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야. 그렇기 때문에 내가 굳이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그 사람들에게 재난을 경고해 준 거다. 반면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라뇨?”
스승님이 어깨를 으쓱했다. “세상에서 가장 중독성이 높은 것은 바로 권력이지. 그곳에서 결정권을 지닌 인민위원들은 자기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력을 더 넓히고 더 많이 얻으려고 들 거다. 하이하버를 점령하는 것도 그들의 권력 유지에는 도움이 되겠지. 역설적으로 그들의 탐욕은 대격변과 함께 사라져 버렸던 다른 능력을 인더스트리아가 회복하는 데에 더 많은 도움을 줄 거다. 이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니?”
“그… 그런 것 같아요, 할아버지.”

하지만 올로에 대한 걱정도 없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우리끼리 지도자를 직접 뽑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다들 알잖아. 어차피 올로 녀석이 여기를 전부 장악하려 한다는 걸 말이야.”
“올로가 하면 뭐가 어때서? 그 녀석은 어차피 그 인민위원인가 하는 사람하고 한편이잖아. 그러니 그 녀석한테 부탁해서 우리한테 필요한 걸 얻어 올 수도 있을걸.”
“그래도 올로 그 녀석은 안 돼!”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우리 중에서 누군가를 새로 뽑아야 된다고!”

“티키.” 그녀가 속삭였다. “티키, 저 아래로 내려가서 배 주위를 빙빙 돌아봐. 내가 너랑 같이 가더라도 겁은 내지 마. 지금부터 나는 너의 일부가 될 테니까. 어서 가, 티키! 날아가!”
제비갈매기가 어깨 위에서 날아오르자, 라나는 눈을 감고 자기 정신을 저 앞으로 투사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이전에도 이런 일을 무려 두 번이나 했던 적이 있었다.


영화 감독들이 자기한테 딱 맞는 소설을 찾아서 영화화시키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나 본인한테 어울리는 작품을 찾아내는걸까? 나는 영화를 더 많이 보는 사람이고, 소설은 별로 안보는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영화보다 책을 더 많이 보긴 하지만, 영화를 봐온 세월이 있는데... 지금까지 본 영화 편수는 책이 못따라간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원작의 영화! 하면 잘 감이 안왔었다. 그냥 영화 소재가 떨어져서 시나리오를 갖다 썼구나. 하는 정도? 그런데 최근에 <미키17>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키7>을 읽으니 "아 이거 봉준호 감독이 고를만 한 책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봉준호가 아니면 누가 찍어?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을 읽으면서도 "그래... 이걸 미야자키 하야오가 안하면 누가 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면 하나 하나가 모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림체로 상상이 되니 말이다. 나는 워낙 부정이 심하고 반대도 많이하는 편인데, 이렇게까지나 그래 이거 니꺼다. 하는 생각이 든다는건 정말... 부정할 수 없다는 뜻이니깐.

소설 자체는 사실 청소년 소설의 느낌이 들었고, 내가 생각한 것만큼의 멸망과 좌절과 희망과 회복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딱 지브리 스튜디오가 보여주는 정도의 멸망~회복 이랄까.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직전에 영화 <캐스트어웨이>를 봤는데, <캐스트어웨이> 👉 <파리대왕>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의 순으로 보면 좀 상황이 점점 희망적으로 변하며 상황이 유사해서 재미있는 것 같다. 단, 영화 <캐스트어웨이>의 경우 주인공이 보트를 타고 탈출하기 직전까지만 보는걸로(ㅋㅋㅋ). 이렇게 여러 컨텐츠를 연관지어서 보는게 너무 재미있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블로그를 했어서 그런 것 같음...

나는 좀 내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편이고, 사회를 냉정하게 보려는 편이라서 그런지 이런 소설에서 '선(善)인'이 등장하면 몸둘바를 모르겠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기보다는, 소설이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느낌.
소설 중에서는 “하지만…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놈들 때문에 무려 4년이나 죄수 노릇을 하셨잖아요!” 그가 언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놈들을 미워하셔야죠!”
“얘야, 나는 그 사람들을 미워할 수가 없단다. 오히려 나는 그 사람들 대부분에 대해서 존경심을 갖고 있어.”
“아니,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그놈들은 할아버지한테 낙인을 찍었고, 심지어 할아버지를 때리기까지 했잖아요. 게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으며, 또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놈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뒤틀리고, 악독하고, 자비라고는 없고…”
“그래, 코난.” 스승님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네 말이 전부 옳아. 하지만 네가 한 가지 모르고 있는 것은, 그 사람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나름대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지. 가진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기계 몇 대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말이야. 인더스트리아는 그 기능의 상당 부분이 마비된 상태였고, 지금도 마찬가지 상태야.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리고 몇 대뿐인 기계를 계속 돌리기 위해서는 가장 단호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가장 힘이 센 사람, 즉 내놓을 것이 가장 없는 사람이 권력을 지니게 되는 법이니까.” 스승님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렇게 이어나갔다. “단지 그중 몇 사람만 가지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는 마라. 인더스트리아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일부나마 있고, 그 사람들의 행동은 오로지 칭찬만 받아야 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야. 그렇기 때문에 내가 굳이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그 사람들에게 재난을 경고해 준 거다. 반면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라뇨?”
스승님이 어깨를 으쓱했다. “세상에서 가장 중독성이 높은 것은 바로 권력이지. 그곳에서 결정권을 지닌 인민위원들은 자기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력을 더 넓히고 더 많이 얻으려고 들 거다. 하이하버를 점령하는 것도 그들의 권력 유지에는 도움이 되겠지. 역설적으로 그들의 탐욕은 대격변과 함께 사라져 버렸던 다른 능력을 인더스트리아가 회복하는 데에 더 많은 도움을 줄 거다. 이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니?”
“그… 그런 것 같아요, 할아버지.”  
여기인데. 이정도로 선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나를 무너뜨리는 느낌이다. 내가 철저히 쌓아온 무관심과 냉정이라는 벽이, 나를 버틸 수 있게 한다고 생각했음에도... 이런 인물을 마주하면 그런 벽들이 모두 무너지는 기분. [선하면서도 사람들이 어디까지 악하고, 그 악한 이들이 사실은 살고자 하는 무지한 이들과 정말 악한 사람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 성인같은지 모르겠다. 이런 인물은 정말 강한 힘이 있고 단단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강한 인물인 것 같다. 

 

이 장면은...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라고 상상하면서 읽었더니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던 부분. 희망 가득한 라나의 표정과 함께 티키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라나의 목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넓은 바다를 보여줄 것 같다. 아름답고 가슴 벅차게 하는 노래가 울려퍼지고, 그 장면이 얼마나 상징적인 장면이 될지... 이런 것들을 상상하는게 너무 좋아.,..!

너무 벅찬 장면이라서 진짜 좋았다.

 

이런 소설들은... 성경적인 장면들이 많아서, 읽고나면 홀리해지는게 있다... 읽으면서 정말 좋았구 내 스스로도 괜히 반성하게되고, 사람들의 생존에 대한 열망이나 무지성하게 그저 지도자를 따라 흔들리는 모습들, 그러면서도 개선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이야기하는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