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2. ~ 2024.01.04. (3)
보트하우스
NAUSTET
욘 포세 저
홍재웅 역
새움 출판
2020년 01월 08일 출간
2023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욘 포세의 초기작이자 대표작 『보트하우스』
욘 포세는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극작가로,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7년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100명의 살아 있는 천재들’ 리스트 중 83위에 올랐으며, 2015년에는 『3부작』으로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을 수상했다. 독특한 내러티브와 스타일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보여 주는 작가 욘 포세는 1990년 무렵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보트하우스』는 1989년에 발표된 초기작으로, 작중 화자의 불안감을 드러내며 시작하는 도입부가 많은 현대 노르웨이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회자된다. 이름 없는 화자인 ‘나’와 그의 어린 시절 친했던 친구인 크누텐, 그리고 크누텐의 아내 세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이 관능적인 은유와 섬찟한 분위기 속에 펼쳐진다. 한번 빠져들면 손을 떼기 어려운 미스터리한 서사와 구성으로 1997년 노르웨이에서 29분 분량의 중편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불안감이 엄습하여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바로 지난여름이었다. 나는 적어도 10년은 보지 못했던 크누텐과 다시 마주쳤다. 크누텐과 나, 우리는 늘 함께였다. 내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불안 증세로 내 왼팔, 내 손가락이 쑤신다. 난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문밖에 나선 지도 몇 달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불안감이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내가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난 무엇이든 해야 한다. 이 불안감이 그치질 않는다.
당신은 말이 별로 없군요. 그녀가 말한다.
그래요.
여기 출신 사람들은 다 그런가 보네요. 그녀가 말한다.
뭐, 일종의 규칙인 모양이죠.
난 여름 내내 여기 머물 것 같아요, 그녀가 말한다.
당신은 여기 이제 막 온 겁니까?
그녀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당신들'이 아닌 당신'이라고 말하고 그녀는 우리가 아닌 '난'이라고 말한 것 을 알아차린다, 나는 그녀에게 크누텐이 저기 해안가에 서 있 은 지 오래되었다고, 어쩌면 그가 우리에게 합류하고 싶어 하 는지도 모른다고, 잘은 모르겠지만, 말해야 할 것만 같다.
나는 우리가 정말 좋은 밴드가 될 것이라는 생각 이 든다. 나는 집으로 걸어간다. 지난여름 나는 크누텐과 다 시 마주쳤다. 그는 음악교사가 되었고, 결혼했으며, 아이가 둘 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내 삶에는 이룬 것이 별로 없고.
이제 나는 매일 저녁 이곳에 앉아 있다, 그리고 나는 두렵다.
불안이 엄습해 온다. 어째서 내가 이런 불안감에 시달리는지 모르겠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이 불안감 탓이다. 크누과 나, 우리는 함께 록밴드를 결성했다. 오래전 일이다. 지난여름 나는 크누텐과 다시 마주쳤다. 이 불안감이 엄습한 것은 그때 였다. 나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고, 이제 나는 매일, 매일 저녁 이곳에 앉아 글을 쓴다. 나는 서른이 넘었는데도 직장이 없 고, 교육도 받지 않는다. 몇몇 무도회에서까지 연주하게 된 지 역 록밴드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나는 다만 이곳에 앉아 있다. 나는 두렵다. 왼팔이 쑤시고 손가락이 쑤신다.
내가 사다리를 한 계단씩 내려가는데 몸속에는 극심한 불안감이 자리하고, 내 주위로는 완전히 깜 깜한 어둠이 둘러싼다. 그리고 그러는 내내 파도 소리가 들려 온다. 내 오른팔에, 내 손가락들에 불안감이 극심해진다, 나 는 어릴 적에, 크누텐과 내가 함께 놀며 보트하우스의 저곳 다락에서 비밀스러운 삶을 보낼 때의, 예전에 듣곤 했던 그 파도 소리를 듣는다, 나는 한 계단씩 천천히 사다리를 내려온다. 어둠이 나를 감싼다, 나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내 몸속에 치는 파도의 움직임을 깨닫는다, 사다리를 한 계단씩 내려와, 나는 흙바닥 위에 서서, 흙 냄새를 맡고 파도 소리를 듣는다. 깜깜하다. 완전히 깜깜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라이터가 켜지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라이터에서 나오는 불꽃이 보이고, 불꽃 가장자리로 크누텐의 아내가, 그녀의 검 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보인다. 그러자 내 몸속 에 자리한 불안감이 극심해진다. 나는 보트하우스 바닥에 내 려서 있다. 크누텐의 아내가 라이터 불을 켠다. 나는 파도 소 리를 듣는다. 그리고 불안감이 극심하다.
욘 포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음을 알게 된 후에 독서모임에서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었다. 읽고는 노래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한 문체와 이야기가 담고 있는 것들에 마음이 울렁거려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됐음을 확신했다. 그러다가 서초에 위치한 유럽인문아카데미에서 욘 포세 특별강연을 진행한다고 하여 신청을 해서 다녀오기로 했다. 강연자는 홍재웅 번역가님(교수님)이었다. 알아보니 욘 포세의 다른 작품 중 <보트하우스>와 <3부작>등을 국내에 번역하셨길래 이 책 두 권은 꼭 읽고 강연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연말이라 노느라 <보트하우스>밖에 못읽고 갔기는 하지만...
<보트하우스>는 불안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작부터 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불안감이 엄습하여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바로 지난여름이었다. 나는 적어도 10년은 보지 못했던 크누텐과 다시 마주쳤다. 크누텐과 나, 우리는 늘 함께였다. 내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불안 증세로 내 왼팔, 내 손가락이 쑤신다. 난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문밖에 나선 지도 몇 달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불안감이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내가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난 무엇이든 해야 한다. 이 불안감이 그치질 않는다. 라는 말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강연에 갔을 때 들은 바로는 '불안감'이라는단어가 총 166번 반복된다고 한다. 그만큼 동일한 어구와 문장이 반복된다. 그래서 더 노래같고 시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나는 밖에 나가질 않는다.' 이런 문장이 마치 복사를 한 것처럼 반복된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이 이야기는 전체를 통틀어서 어떤 사연이나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쓰여진 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홍재웅 번역가님의 강연을 들었을 때에도 그렇다고 했다. 욘 포세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보트하우스 또한 인간의 불안감, 사람간의 과거 이야기, 감정을 이야기하고 보트하우스와 낚시, 자연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밴드가 노래를 하는 이야기도 들어있다. 그래서 스토리 자체는 크게 "이런 부분이 이렇게 이야기되는데, 이건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이렇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약 200페이지의 잛은 소설은 크게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음에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는 반복되는 문장들에 지루함을 느꼈다고 했지만, 나는 이 반복되는 문장 구조에 감탄했다. 이야기를 써낼 때 마음을 정리하고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돈하여 남이 보기 쉽게 써낸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 온 감정을 쏟아내며 인물이, 화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터트리는 듯 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음에도 연극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욘 포세는 연극도 많이 썼다고 하기에 궁금해졌다.욘 포세의 소설에는 쉼표가 많고 마침표가 거의 없다. 나는 이것이 끊이지 않는 감정의 연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불안을 호소하면서 글을 써내려가고 있으니까 그런 것이라고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나 시처럼 느껴지는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욘 포세의 세계는 언어, 죽음, 자연과 주변환경, 음악, 신비주의적 리얼리즘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중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욘 포세의 글은 뉘노르스크어(Nynorsk)로 되어있다. 욘 포세는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는 뉘노르스크어밖에 없어요. 책 언어(노르웨이의 대표적인 공식언어인 Bokmal)보다 소리가 더 아름답고 덜 낡은 것 같아요. 뉘노르스크어는 노르웨이 전역의 방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언어이지만, 제가 사는 베스트란데트 방언에 가깝죠." 언젠가 뉘노르스크어로 욘 포세의 글을 들어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래 영상은 노르웨이 액센트와 방언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욘 포세는 헤우게순(Haugesund)에서 자라 베르겐(Bergen)에서 대학을 다녔다고 하니, 서부 말투를 쓴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욘 포세는 메세지를 주려는 작가가 아니라고 한다. 어떤 모습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타인이 했을 경험을 자신에게 투영하여 글로 표현하고, 들리지 않고 부여되지 않고, 죽었거나 사물인 것의 목소리를 들여주려고 하는 작가라고 한다. 그런 작가여서 이 작가의 글을 읽을 때 다르다는 느낌이 들고, 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이 나에게 정말 큰 기쁨이라고 생각했다. <3부작>도 어서 읽고, 관련된 작품을 접할 기회가 생기면 더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멜랑콜리아>도 빨리 읽어보고싶은데 밀린 책이 너무 많다 ㅠㅠ
'2024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가의 독서법 - 분열과 고립의 시대의 책읽기> 미치코 가쿠타니 (1) | 2024.03.07 |
---|---|
<그분이 오신다> 김혜영 (1) | 2024.03.07 |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1) | 2024.02.22 |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0) | 2024.01.17 |
<신의 기록> 에드워드 돌닉 (1) | 2024.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