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 독서

<데미안> 헤르만 헤세

2023.10.26. ~ 2023.10.29. (4)

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

전영애 역

민음사 출판

2000년 12월 20일 출간

 

소설/시/희곡 > 소설 > 해외소설


참다운 어른이 되어 가는 소년 싱클레어의 이야기
데미안을 통해 참다운 어른이 되어 가는 소년 싱클레어의 이야기.
한 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 감수성이 풍부한 주인공 싱클레어가 소년기에서 청년기를 거쳐 어른으로 자라가는 과정이 세밀하고 지적인 문장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진정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깊이 있는 이야기.


나와는 달랐다. 악과의 접촉이 자주 그토록 힘들고 고통스럽던, 어두운 세계에 훨씬 더 가까이 있던 나와 같지 않았다.

 

놀이를 하며, 우리에게 허용된 악의 없는 좋은 놀이를 하며 나는 자주 열정과 격함에 사로잡혔고 그것이 누이들에게는 너무 심하게 느껴져 다툼과 불행으로 이어졌다. 그다음에 화가 치밀면 나는 끔찍해져서 닥치는 대로 이런저런 말과 행동을 했는데 그것이 타락임을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동안에 이미 스스로 뜨겁게 느꼈다. 그다음에는 어둡고 격앙된 후회와 회한의 시간이 왔다. 그다음에는 용서를 비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오고, 그다음에야 몇 시간 혹은 잠깐 동안 다시 한 줄기 광명의 빛줄기, 분열 없는 한 가닥 고요하고 고마운 행복이 되돌아왔다.

 

나의 세계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의 삶이 과거가 되며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나는 얼어붙는 가슴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빨아들이는 새 뿌리가 되어 바깥에, 어둠과 낯선 것에 닻을 내리고 붙박여 있는 것을 감지해야만 했다.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맛보았다. 죽음은 쓴맛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탄생이니까, 두려운 새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니까.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아.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서서히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이 완전히 내면적인 영상과 바깥으로부터 내게로 온, 찾아야 할 신에 대한 신호 사이에서 하나의 결합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결합은 그 후 더 긴밀해지고 더 내밀해졌으며 나는 바로 이 예감의 꿈속에서 내가 아브락사스를 불렀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희열과 오싹함이 섞이고, 남자와 여자가 섞이고, 지고와 추악이 뒤얽히고, 깊은 죄에는 지극한 청순함으로 충격을 주었다. 나의 사랑의 꿈의 영상은 그러했다. 그리고 아브락사스도 그러했다. 사랑은 이제 더 이상 처음에 겁을 먹고 느꼈던 것처럼 동물적인 어두운 충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또한 더 이상 내가 베아트리체의 영상에 바친 것 같은 경건하게 정신화된 숭배 감정도 아니었다. 사랑은 그 둘 다였다. 둘 다이며 그것들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사랑은 천사상이며 사탄이고, 하나가 된 남자와 여자, 인간과 동물, 지고의 선이자 극단적 악이었다. 이 양극단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을 맛보는 것이 나의 운명으로 보였다. 나는 운명을 동경하고, 운명을 두려워했지만, 운명은 늘 그곳에 있었다. 늘 내 위에 있었다.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사람들은 결국 시인 혹은 광인이, 예언가 혹은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관심 가질 일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 내는 일이었다.

 

“연대란…….” 데미안이 말했다. “멋진 일이지. 그러나 지금 도처에 만발해 있는 것은 결코 연대가 아니야.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테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 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는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 모두가 그들의 삶의 법칙들이 이제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은 낡은 목록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는 거야. 종교도 도덕도 그 모두가 이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맞지 않아. 100년 그리고 그 이상을 유럽은 그저 연구만 하고 공장이나 지었지. 사람들은 정확히 알아. 사람 한 명을 죽이는 데 화약이 몇 그램 필요한지. 그러나 신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는 모르지. 한 시간을 어떻게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걸. 저런 대학생 술집을 한번 봐! 아니면 부자들이 가는 유흥장들을 봐! 절망적이지! 이봐, 싱클레어, 그 모든 것에서는 진정한 명랑함이 나올 수 없어. 저렇게 겁을 먹고 서로 뭉친 사람들은 두려움과 악의로 가득해. 아무도 남들을 신뢰하지 않아.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이상(理想)이 되지 못하는 이상들에 매달려 있어. 그러면서 새로운 이상을 내세우는 사람에게는 돌을 던지지. 싸움이 있으리라는 게 느껴져. 싸움들이 다시 벌어질 거야. 날 믿어. 곧 벌어진다고! 물론 그것들이 세계를 ‘개선’하지는 못하지. 노동자들이 그들의 공장주를 쳐 죽이든지 러시아와 독일이 서로 총질을 하든지 주인만 바뀌겠지. 그러나 헛된 일은 아닐 거야. 오늘날의 이상이 얼마나 가치 없는지 밝혀지겠지. 석기 시대의 신들을 청소하게 되겠지. 지금 있는 대로의 이 세계는 죽으려 하고 있어. 멸망하려 하고 있어. 그리고 멸망할 거야.”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될까?” 내가 물었다.
“우리? 오, 어쩌면 우리도 함께 멸망하겠지. 우리가 우리 같은 사람을 쳐 죽일 수도 있지. 제발 그럼으로써 우리가 다 없어져 버리는 일만 없기를. 우리에게서 남는 것 혹은 우리 중에서 그 후에도 살아남는 자들 주위에 미래의 의지가 집결되겠지. 우리 유럽이 한동안 자신의 기술 및 학문의 대목 시장을 펼쳐 놓고 소리소리 질러 대는 통에 들리지 않았던 인류의 의지가 드러날 거야. 그리고 그다음에는 인류의 의지가 결코 그 어디서도 오늘날의 공동체들, 국가들과 민족들, 협회들과 교회들의 의지와 같지 않다는 게 드러나겠지. 오히려 자연의 의지는 개개인들 속에 적혀 있어. 네 마음속과 내 마음속에. 예수 속에 적혀 있고 니체 속에 적혀 있지. 유일하게 중요한 이 흐름들을 위한(그런 건 물론 날마다 모습이 다를 수 있겠지만) 공간이 생길 거야. 오늘날의 공동체들이 와해되고 나면 말이야.”

 

그런 대화들을 나눌 때 에바 부인이 자주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우리 모두에게 신뢰와 이해심이 가득한 경청자였다. 이런저런 생각이 모두 메아리처럼 그녀에게서 나와서 그녀에게 되돌아가는 듯 보였다. 그녀 가까이에 앉아서 이따금씩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를 에워싼 성숙과 영혼의 분위기에 젖는 것이 나에게는 행복이었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날 거야. 너는 어쩌면 다시 한번 나를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걸. 알아듣겠니? 그리고 또 뭔가 있어! 에바 부인이 말했어. 네가 언젠가 잘 지내지 못하면 나더러 네게 당신의 키스를 해 달라고. 나에게 주어 보낸 키스를……. 눈을 감아, 싱클레어!”
나는 선선히 눈을 감았다. 내 입술 위에 가벼운 입맞춤이 느껴졌다. 내 입술에서는 계속해서 조금씩 피가 흐르고 있었고, 피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사람들이 깨웠다. 붕대를 감아야 했던 것이다. 마침내 완전히 잠이 깼을 때 나는 얼른 옆 매트리스로 몸을 돌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 그곳에 누워 있었다.
붕대를 감을 때는 아팠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 완전히 나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그곳에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그와, 나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워낙 유명한 소설이었기 때문에 내가 독서의 축복(ㅋㅋㅋ)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무조건 읽어야 될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부분만 알고 있었고,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워낙 유명하기도 했고, 알아보니 주인공인 싱클레어와 데미안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도 많아서 신기했다. 그래서 빨리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이번에 와서야 읽게 된 것이다. 출판사를 고민했지만, 깔끔하고 정형화된 표지가 마음에 들어 민음사를 예전부터 선호했기에 민음사의 책, 전영애 번역가님의 번역본으로 읽게 되었다. (전영애 번역가님?교수님? 은 매우 대단한 분이셨다. 책을 읽는 내내 철학적인 부분들이 매우 많고 ...아니 99%가 그러해서 머리아팠는데, 이걸 번역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하고 알아보니 아무튼간에 대단하신 분이셨다...!)

 

초반에 마치 자서전처럼 시작하기에, 헤르만 헤세의 자서전식으로 쓰여진 자아를 찾는 이야기인가보다 했는데, 읽다보니 아니어서 의아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역자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헤르만 헤세가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소설이라고 한다.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상까지 탔다고 하고, 일부 사람들에게 문체로 인해 그 정체를 들켰다고도 하니 헤르만 헤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은 맞는 것 같다...(...)

 

싱클레어는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던 정상가족의 남자아이인데 우연한 계기로 동네 양아치에게 잘못 걸려서 악행이라고 확신하던 행동들을 강압적으로 하게되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무너진다. 그 나이가 9살인가 11살이라고 했으니(책에 나오는데 까먹었다..) 그럴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세계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의 삶이 과거가 되며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나는 얼어붙는 가슴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빨아들이는 새 뿌리가 되어 바깥에, 어둠과 낯선 것에 닻을 내리고 붙박여 있는 것을 감지해야만 했다.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맛보았다. 죽음은 쓴맛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탄생이니까, 두려운 새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니까. 라고 말하는 싱클레어는 고통받고 힘들어하며 삶을 버텨나간다. 가족들은 정신적으로 무너져내리는 싱클레어를 도우려고 하지만 정확히 이분법적인 완벽한 가정에서 살아온 싱클레어의 입장으로서는, 선과 평화를 상징하는 엄격한 가정에 자신의 악과 불화를 노출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어리고도 나이들었으며, 여자같고도 남자같으며, 선같으면서도 악 같은  자를 만나게 된다. 나는 여러 매체의 영향으로(...) 데미안이 악마이거나, 싱클레어의 자아라고 알고 있었기에 정말 그저 단순히 선지자와 같은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전체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며 내가 느낀 것은, 싱클레어는 너무 어린 시절 자신의 자아에 혼란을 겪었으며 그런 사연으로 정체성에 매우 큰 혼란을 겪었던 것 같다. 데미안이라는 존재가 싱클레어의 분리된 자아라고 하더라도, 정말 악마라고 하더라도, 정말 그를 깨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친구라고 하더라도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 정확히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었던 세상을 통찰하고 통합하여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길고 긴, 자아에 대한 철학이 가득 담긴 성경을 레퍼런스로 이용하고, 세계 1차 대전이 배경이 되는 소설을 내가 단 한 번 읽었다고 스스로 깨우칠 수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첫번째 감상은 그러했다.

 

사실 초반부터 후반까지 읽으면서는 그저.......(정말 말하기도 부끄럽군^^) 똑똑한 친구를 동경하고 선망하고 사랑하며, 완벽한 이상향인 친구를 꿰뚫어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는 야시꾸리하고 이상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정말로ㅋㅋㅋㅋ 처음엔 그렇게 느껴졌다. 나도 이러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설의 가장 마지막 문단을 보며 나는 이 소설이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날 거야. 너는 어쩌면 다시 한번 나를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걸. 알아듣겠니? 그리고 또 뭔가 있어! 에바 부인이 말했어. 네가 언젠가 잘 지내지 못하면 나더러 네게 당신의 키스를 해 달라고. 나에게 주어 보낸 키스를……. 눈을 감아, 싱클레어!” 나는 선선히 눈을 감았다. 내 입술 위에 가벼운 입맞춤이 느껴졌다. 내 입술에서는 계속해서 조금씩 피가 흐르고 있었고, 피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마음 속에 있는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마음 속에 있는 악마를 낳은 욕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로, 에바부인이 전한 키스를 전한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완전히 이분법적으로 분리했던 옳은 것과 틀린 것, 선과 악, 여자와 남자, 어림과 늙음과 같은 것들을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전쟁에서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깨어난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제 곁에 없음을 깨달으며 정신을 차린다. 그는 드디어 혼란 속에 빠져있던 자신의 자아를 찾은 것이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 완전히 나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그곳에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그와, 나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싱클레어는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고, 자기 자신을 보면 이제는 데미안과 완전히 닮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마지막 문장들이 품는 의미가 너무나 거대해서 나는 온전히 이 모든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데미안에 대해 정리해놓은 다양한 영상들이 많으니 그런 영상들을 봐볼까?싶었지만, 우선 몇 달 뒤에 데미안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새해 첫 도서로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