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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서

<위그드라실의 여신들> 해도연

2023.10.26. ~ 2023.10.26. (1)

위그드라실의 여신들

해도연 저

안전가옥 출판

2023년 09월 13일 출간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과학에 목말라하는 SF 독자를 위한 하드 SF 단편집
천문학 박사·현직 연구원인 작가가 심도 깊게 그리는 다음 세기의 태양계
SF 독자는 과학에 대한 갈증을 품고 있다. 과학 이론과 기술 관련 정보를 심도 깊게 다루면서 이를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녹인 작품은 아무래도 소수인 까닭이다. 해도연 작가를 향한 신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온다. 천문학 박사이자 현직 연구원인 작가는 지금까지의 인류가 밝혀낸 지구와 우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지구인이 달뿐만 아니라 외행성까지 진출해 있는 22세기의 태양계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매력적인 이야기의 인도를 따라
다시 한번 밤하늘 너머 먼 곳으로

《위그드라실의 여신들》 속 일부 작품은 독자들을 이미 만난 적이 있다. ‘우주가 거대한 만큼 분명히 존재할 법한 외계 문명을 왜 우리는 만나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인 ‘페르미의 역설’에 답하는 〈위대한 침묵〉, 멀리 떨어져 있는 생태계와 생물군의 다양한 연결 방식을 통해 우주와 생명의 경이로움을 그린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은 현재는 절판된 단편집의 수록작이다. 기출간작이 재출간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작품의 매력이 여전히 생생하다는 의미다. 세부적인 표현 조정을 거친 두 작품은 다시금 독자들을 밤하늘 너머 먼 곳으로 데려갈 준비를 마쳤다. 이번 작품집에 새로 실리게 된 〈여담, 혹은 이어지는 이야기〉는 〈위그드라실의 여신들〉과 연결되는 단편으로, 광대한 스케일의 사건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인간의 마음에 초점을 맞춰 긴 여운을 남긴다.


“항성 간 우주선에 당신 같은 평범한 인간이 탈 자리는 없어요. 몸이 망가지든 정신이 망가지든, 결국 버틸 수가 없을 테니까. 아마 4세대나 5세대 루나리안들이 외계 행성 개척자들이 되겠죠.”

 

터널 입구 바로 위에는 3킬로미터 높이의 거대한 탑이 솟아올라 있었다.
“저 기둥의 역할은 뭐죠?”
미후가 물었다. 미셸은 웃으며 대답했다.
“셀레네19를 겁탈하는 겁니다.”

 

달이 빛 속으로 사라졌다. 달빛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그걸 깨닫기도 전에, 쏟아지는 감마선이 달을 바라보던 지구의 절반을 불태웠다.

 

거대한 감마선 섬광과 함께, 태양계가 완전히 증발했다.

 

내부에 남아 있는 반물질이 고갈되거나 블랙홀 쌍성이 충돌하며 파수병을 집어삼키고 나면, 파수병의 임무는 끝날 것이다.
하지만 부디 누군가가 또 다른 파수병을 만들어 계속해서 경고를 보낼 수 있기를, 파수병은 기도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리고 다시 기도했다.
부디 모두 침묵을 지키기를.
우주의 위대한 침묵이 계속되기를.

 

목성에서 뻗어 나온 우주 번개가 유로파를 가격했다. 아마도.

 

「제게는 오우양 박사님의 데이터도 있습니다. 물론 새롭게 스캔을 할 필요가 있어서 업로드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박사님의 생물학적 몸을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면 스캔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슷한 길이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군요.」

 

“지구 따위, 가 본 적 없어요. 제 고향도 아니고. 제 눈으로 본 적도 없고. 이젠 정말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여기가 제 세상이에요. 혼자 지구에 갈 바엔 여기 남겠어요.”
“마야. 지구는 너의 고향이 아니야. 네가 구할 수 있는, 구해야 하는 세상이지. 넌 그 세상의 구세주가 될 거야.”

 

짧은 소음. 반응이 왔다. 직선거리로 시간을 계산한다면 태양계 세 번째 행성에서 온 것이 틀림없다고 과학자는 판단했다.
석판의 표면이 다시 빛났다. 이번에 나타난 건 그림도 문자도 아니었다. 석판의 색깔이 빠르게 변했다. 춤추는 무지개 같았다. 마치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과학자는 생각했다. 석판에 감정이라도 있는 걸까? 거인들은 아직 살아 있고 석판도 사실은 그들의 신체 일부인 걸까?
석판의 빛이 어두워지고 전체가 다시 검게 변했다. 그리고 중앙에 한 줄의 문자가 나타났다. 과학자는 그 글을 읽을 수 없었지만, 형태를 기록해 두기로 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지구 바다는 그렇겠지.”
「지구 바다 무시하지 마요.」


안전가옥의 스타일이 세련되고 멋있고 동시에 혁신적이고 파격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후로, 안전가옥 SNS를 구독하고 있었는데(ㅋㅋ). 신간이 출간된다는 이야기에 바로 읽고 싶은 책으로 저장해놨던 책이다.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은 책 표지부터 저 넓은 우주를 바라보는 갇혀있는 인간의 시선임을 보여준다. 귀엽고 앙증맞은 일러스트임에도 저 멀리 빛나는 우주가 멀리 펼쳐져 있음이 느껴진다. 나는 안전가옥의 이런 스타일을 좋아한다.

 

우주를 동경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항상 하늘을 바라보고, 저 먼 우주 너머의 행성을 꿈꾼다. 수많은 영화들이 개척되지 않은 먼 우주의 땅을 카메라에 담고, 수많은 노래들이 별이 된 당신과 내 사랑의 크기가 저 우주만함을 노래하며, 수많은 책들이 우주를 꿈꾸고 미래에 은하계를 떠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글로 적는다. 까만 밤하늘의 하얗고 노란 별을 점으로 찍어 그리고, 네 눈이 아름답다며 눈에 반짝이는 별을 그리기도 한다. 우주의 거대함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이 책에는 두 개의 소설이 담겨있다. 하나는 '위대한 침묵'이며, 다른 하나는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이다. 그리고 외전격으로 하여 '여담, 혹은 이어지는 이야기'가 포함된다. 이후 작가와 프로듀서의 말을 읽어보니, 원래는 '위대한 침묵'으로서 출판되었던 책인데, 계약이 종료되면서 안전가옥의 담당자가 빠르게 연락하여 재계약을 하며 <위그드라실의 여신들>로서 재출판 된 소설이라고 한다. 책을 다 읽은 후 알아보니 작가님은 천문학 박사이고 동시에 현재 관련 연구원으로 종사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이 모든 이야기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가장 과학적이면서도 가장 공상과학소설스러운 판타지적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다양한 과학용어나 과학현상, 과학자의 이름들이 언급된다. 어리둥절 하면서 읽으려다가도 각주가 바로 아래에 달려 단숨에 이해시켜준다. 그런 수많은 과학 용어를 이용해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위대한 침묵'은 단순한 마케팅 직원일 뿐인 미후에게 벌어지는 혼란스럽고 영웅적인 모험담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엄청나다고 느낀 것이(ㅋㅋ).. 나는 정말 천문학적인 용어들이나 우주과학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적은 사람이라서, 정말 미후의 입장으로서 "아니 무슨 소리야!! 이게 무슨일이야!!!!!" 하면서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만 그랬을지도... 너무나 흥미롭게 읽었다. 실재하지 않는 회사, 미래 기술, 생명, 종, 직업 들에 대해 하나하나 언급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가 미후가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위대한 침묵도 정말 좋았지만, 나는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고, 여담까지 모두 읽은 후에는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흡사 <인터스텔라>를 처음 봤을때의 기분이었다!(진짜로!) 나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소설들에서 공허를 느낀다. 텅 비고 허망한 감정이 아니라, 너무나도 넓고 거대해서 내가 이걸 다 담아내지 못할 것 같다는 공허이다. <인터스텔라>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공허를 느꼈다. 거대하고 광활한 우주의 저 너머, 끝이 아니지만 우리에게 가장 먼 한계까지 나아갔던 인간은 결국 가장 가까운 가족을 갈구하고 인간의 사랑과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며 끝난다. 우리는 왜 우주로 나아가려고 할까? 그건 인간이 우주를 사랑하기 때문일수도, 인간의 욕심이 거대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우주는 거대하고 공허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서로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인터스텔라>, , <패신저스>, <그래비티>, <마션>, <애드 아스트라>와 같은 영화들은 모두 어쨌거나 결론이 같다. 우리는 살아가고 싶어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돌아가고자 한다.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철학을 잘 모르고,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똑똑하지 않으니까...

 

SF소설은 가장 비현실적인 세상을 말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간사를 말하기에 적합한 장르인 것 같다. 세실리아, 수미, 마야라는 세명의 과학자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흔한 우주 배경의 과학 소설처럼 흘러간다. 그럼에도 후에는 서로를 갈망하고 서로를 원하며 함께하고자 한다. 사람은 결국 함께하고자 한다. 누구도 고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가장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면서, 그 우주를 다 채우지도 못할 인간은 혼자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독후감을 쓰면서 안전가옥의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을 소개하는 책 페이지를 보니 연결을 열망하는 존재, 인간이라는 내용의 소개와 근원적인 고독에서 벗어나려는 여정이라는 내용의 소개가 있다. 전문은 위의 '책 페이지'에 링크를 첨부해두었으니 궁금하시다면 읽어보시기를... 이중 일부를 따왔는데 이는 '위그드라실'에 대한 설명이다: 표제작의 제목에 등장하는 위그드라실은 북유럽신화 속의 거대한 물푸레나무다. 지하 세계, 인간 세계, 신들의 세계를 잇는다. 서로 다른 세계가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개념은 고대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인류에게 익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부족한 신체 능력을 사회적 기술로 메꾸며 번성한 생물이다. 다양한 존재가 소통함으로써 만들어 내는 힘을 이용해 고도의 문명을 이끌었다. 연결을 생존 수단이자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 온 인간은 홀로 존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ㅋㅋ 나는 SNS에 이 책에 대해서 몇마디 적었는데 작가님이 리트윗을 해주셔서 뭔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보시게 될 줄 몰라서 대충 적었는데..!

 
 

사실 초반에 위대한 침묵이 조금 어렵게 느껴져서 읽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서 책을 20일정도 못읽고 있었던 터라, 책을 다시 잡기가 힘들었다는 이유도 있다. 그런데 한번 술술 읽히기 시작하니 우주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소설에 푹 빠져서 하루만에 완독하게 되었다.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같은 영화가 국내에서 큰 인기가 있었는데, 이 두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위그드라실의 여신>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정말 강추...!